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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May 31. 2024

이건 텃밭 테러라고요

과(過)하면 모자람만 못함을 소만에 배운다

지난 절기를 지내는 동안 수현이의 텃밭에 테러범이 다녀갔습니다.

수현이는 모둠 친구들과 함께 시금치를 키웠습니다. 다른 모둠보다 씨를 일찍 뿌려서 싹도 일찍 났던 수현이는 일찍 솎아주기도 하면서 시금치가 무럭무럭 자랄 날을 기다렸습니다.


사교육이라는 거름을 과하게 주지 않아도 튼실하게 자라는 자기들처럼 작물들도 지켜만 보아주면 잘 자라리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어린 농부들은 텃밭에서도 농사일에 전념하기보다는 곤충들과 놀고, 달콤한 꽃술에서 꿀 빨아먹기에 더 바빴습니다.


그렇게 농부들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잘 자라던 시금치에는 어느새 꽃대가 올라왔나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사를 잘 짓는 어느 어른이 아이들이 없는 때에 수현이네 시금치를 뽑아 버렸다고 하네요. 그 자리에는 고구마 줄기를 묻어두고 갔고요. 그 사람은 아이들 몰래 농사일을 도와주는 우렁각시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아니요, 아닙니다. 이건 테러였습니다!


저는 그 일을 듣고 무척 화가 났습니다. 시들었어도, 꽃대가 올라와서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해도 주인인 아이들이 결정할 일이었어요. 아이들이 아무리 어려도, 또 아이들과 지내는 교사들이 아무리 '농알못'이어도 당연히 먼저 물어봤어야지요. 수확을 많이 내는 농사꾼 눈에는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혹은 어차피 못 먹어 시들을 것들이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게 아무리 비효율적으로 보였을지라도,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뽑고 새 작물을 심어 놓고 가는 건 횡포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지간한 땅에는 잘 뿌리를 내렸을 고구마였지만 아이들의 실망감 때문이었는지 고구마도 말라죽었습니다. 수현이는 그 자리에 다시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저는 제 분노보다 더 클 수현이의 속상함을 글로 표현해 보라고 했어요.


나는 처음에 시금치를 심었다.
그런데 시금치가 꽃 펴서 다 뽑았다. 아쉬웠다.
고구마를 심었다. 고구마가 또 말라죽어서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옥수수를 심었는데 잘 자라면 좋겠다.

수현이는 글도, 마음도 참 담박합니다. 누구도 원망하는 기색이 없어요. 시금치에 쏟았던 정성도, 꽃이 펴서 뽑힌 것도, 말라죽은 것도 다 '아쉬웠'을 뿐, 저처럼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그저 다시 심은 옥수수가 잘 자라기만을 바라고 있네요. 아이들의 마음은 이리도 곱고, 이리도 넓습니다. 수현이를, 수현이의 옥수수를 격하게 응원합니다!


이 아이들이 일곱 살 때 있었던 일도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앞에 있던 상자텃밭에 씨감자를 하나씩 심었더랬습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심은 감자가 어느 것인지 알고 있었지요. 나들이를 가면서 감자가 싹을 내고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아침, 아이를 등원시킨 어느 엄마가 제게 말했습니다. 그 집 아이가 심은 감자가 싹이 나지 않아서 주말에 농장에서 키워 온 것을 아이 몰래 심었다고요. 저는 솔직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심은 씨감자가 싹을 틔우지 않으니 아이가 속상해할까 봐 그렇게 했던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씨앗이 다 싹을 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러지 않는 게 자연의 이치요 순리입니다.

싹이 나지 않는 씨앗을 심은 사람이 '나'나 '내 자식'일 수도 있지요. 마찬가지로, 인생사가 언제나 성공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해마다 풍년이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 설령 흉년이 온다고 해도 배울 점이 없었겠습니까.


오히려 배움은 실패를 통해 더 자신의 것으로 다져집니다. 고통을 당하고 나면 내공이 더 쌓이고 단단해지는 것처럼요. 그러기에 꽃대가 올라왔다고 시금치를 말없이 뽑아 버린다거나, 싹이 나지 않았다고 바꿔치기를 하는 어른의 행동은 아이가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할 것들을 가로막는 과잉보호, 과잉친절입니다.


이름까지 붙여주면서 애정을 쏟는 아이들. 감자가 엄청 컸으니 곧 캘 때가 왔다는 걸 배우고 있겠지요.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살아 있는 벌 나비, 하늘소만 있는 게 아니고, 삶과 죽음이 공존함을 알아갑니다. 성공과 실패 모두가 선생님이죠.
십 년 전만 해도 훨씬 더 많은 생명들을 곁에서 볼 수 있었는데...

제가 심은 고추와 가지가 자라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 좋습니다.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낼 만큼 좋지 못한 땅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앵두나무 가지 때문에 생각보다 햇볕을 덜 받는 곳인 줄도 몰랐습니다. 저 역시 실패가 싫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끝까지 최선은 다 해보겠으나,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고 해도 수현이처럼 화내지 않으려 해요. 아쉬운 마음만 살짝 남겨놓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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