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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May 26. 2024

다 채우지 않아도 괜찮아

소만(小滿), 채움과 비움의 이중주

귀리 이삭이 팼습니다.

작은 마당 한쪽에 귀리를 뿌린 것은 수확을 기대해서도 아니고, 이웃집과 차별화된 색다른 가드닝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어요.

목에 걸린 헤어볼을 토해내느라 가끔 잔디를 뜯는 고양이들이 잔디보다 귀리를 좋아한다고 해서 밥에 섞어 먹던 귀리를 집사 손에 한 움큼 쥐어 주었더랬지요.

밀이나 보리, 양파나 마늘처럼 겨울을 나는 작물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지난 해 초겨울 그렇게 뿌린 귀리는 땅속에서 겨울과 봄을 나더니, 드디어 소만 절기가 된 요즘 작은 이삭들을 매달았습니다.


재작년까지 다닥다닥 열리던 앵두나무는 해걸이를 이 년 연속하려나 봅니다. 작년에도 꽃만 피었지 앵두는 한 알도 따먹지 못했는데, 올해도 나뭇잎 사이를 아무리 뒤져도 앵두는 보이지가 않네요. 단오 무렵 앵두화채를 만들어 먹으려던 마음은 일찌감치 접어야겠어요.


검붉게 익은 버찌는 바닥에 떨어집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려온 것처럼 말릴 새도 없이 입으로 쏙쏙 집어넣던 아이들은 지천에 널린 버찌를 물감 삼아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고양이로 변신합니다. 야옹야옹 손톱을 세우며 놀던 고양이 놀이는 어느새 입가와 손을 물들인 귀신 놀이로 바뀌기도 하고요. 많이 먹지는 않지만, 그나마 몇 알씩 따먹어 보는 열매에 부디 해충방지용 살충제 성분이 남아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자연에 널린 열매로 배를 채워 보고 싶은 마음은 아이들보다 옛 조상들이 더했을 거예요. 지난해 거둔 쌀은 겨울과 봄을 지내며 똑 떨어지고, 아직 밀과 보리는 거둘 시기가 되지 않는 요맘때가 말로만 듣던 보릿고개였다고 하는 걸 보면요.

만물이 자라 조금씩 차오른다는 뜻의 소만과 기아에 허덕이는 보릿고개 사이에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충만과 결핍의 상반되는 이미지가 동시에 펼쳐지는 시공간이 바로 소만 즈음이다. 언뜻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으나 둘은 알고 보면 한 쌍이다. 채워야 덜어낼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무엇이든 먹어야 했던 옛사람들은 산야의 나물을 캤다. 옛 기록에는 소만의 첫 5일 동안에 씀바귀가 뻗어 오른다(苦菜秀)고 한다. 쓰디쓴 씀바귀를 밥알 대신 질겅질겅 씹으며 태산보다 높다는 보릿고개를 오른다. 허기에 아랑곳없이 이때 농사일은 무척 바쁘다. 당장 먹을 것은 없지만, 앞으로 생길 먹거리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중략) 이처럼 소만의 충만함은 보릿고개의 결핍에서 비롯한다. 결국 만(滿)은 공(空)과 짝을 이뤄야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이 음양의 이치다. [절기서당] 김동철, 송혜경/ 북드라망/ 100-101

아직 여물지 못했어도, 비록 수효가 많지 않다고 해도 이삭이 패고 몸에 살이 오르는 것을 보노라면, 희망도 함께 부풀어 오릅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힘이 들어도 일할 기운을 얻게 되고요. 열매가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은 앞으로 더 채워 가라고 응원하는 햇볕과 바람의 자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이 피었다 지고 열매가 맺었다 떨어지는 한해살이는 부단히 이어지는 채움과 비움의 이중주인 듯합니다.


교재 삼아 여러 번 줄 그으며 읽고 있는 [절기서당]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소만(小滿)이 아니라 '대만(大滿)'을 지나 '과만(過滿)'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제 삶만 봐도 그렇습니다. 부족해서 어렵다기보다는 차고 넘쳐서 괴로운 상황이 되었어요.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고, 부단히 쟁여 놓습니다. 물건들 틈에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야 비로소 '미니멀리즘'이니 '단식'이니 하는 구토를 시작하게 된 거지요.


그러므로 소만 절기는 풍성히 채워지지 않았다고 불안해하기보다는 작게라도 채워진 것에 감사하면서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성실하게 하라는 배움의 시기로 받아들여 봅니다. 그래야 끝내 다 채워지지 않는다고 해도 제 삶에 후회도, 원망도 없을 것 같아서요.

꽃을 준비하는 해바라기와 꽃이 진 매발톱. 필 준비를 하는 얼굴과 지고 난 뒷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네요.

[또 하나의 달력 / 전례력]

5월 20일 전후부터 6월 초까지 이어지는 소만 절기와  맞게 연관된 듯한 축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은 부활 승천을 하시고 바야흐로 성령의 시대를 살기 시작한 시기.

아하, 눈에 보이고 함께 지내던 예수의 시대가 가고 성령이 오시어 그 빈 부분을 충만히 채워 주시는 성령의 시대가 열린 것 자체가 비움과 채움의 이중주였구나.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요한 16,7)는 예수님의 말씀도 그런 뜻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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