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황선녀 오늘이]라는 우리 신화가 있습니다. 오늘이가 부모를 만나러 찾아간 원천강은 사계절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입니다. 각각의 문을 열면 다른 계절이 펼쳐지지요. 추분 절기를 지내고 있는 요즘, 우리가 사는 이곳이 원천강 같습니다.
에어컨과 선풍기는 아직도 필요한데, 어제는 딸내미 등교하는 차량에 히터를 틀었습니다. 더위를 잘 타는 저는 아직도 반팔과 반바지 차림으로 산책을 갑니다만, 딸내미는 겨울 머플러를 둘렀더군요. 한점 구름 없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하루가 다르게 황금빛이 되어가는 들판을 보면서 집을 나섰는데, 들어오는 길에는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하, 고놈의 날씨 참 버라이어티합니다.
배춧값이 금값입니다. 작년에 담근 김장 김치는 딱 한 달 분량의 묵은지만 남았습니다. 우리 식구들도 김치를 잘 먹는 편이지만, 두어 군데 제 김장 김치를 기다리는 곳이 있으니 벌써부터 값싸고 질 좋은 배추를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텃밭에 배추를 심어 기르는 분들은 이런 염려는 좀 덜 하시겠네요. 내년에는 저도 주말농장에 심어볼까 궁리 중이지만, 직접 키우려면 사 먹는 것에 비길 수 없는 노고과 노동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텃밭에도 배추가 자라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자주 들여다보아도 나비의 산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나 봅니다. 배춧속 생장점이 다 녹아 속이 비었다, 벌레를 잡아도 알을 많이 까놓아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고 한숨을 쉬십니다. 아이들도 하교 후에는 텃밭에 나와 벌레를 잡습니다. 허수아비처럼 두 팔을 벌리고 서서 훠이훠이 나비를 쫓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벌레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방아깨비도, 톡톡 튀어 다니는 개구리도, 재빠른 장지뱀도, 힘 좋은 메뚜기도 척척 잡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곤충을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교사의 면이 서지 않아 저도 어지간한 곤충은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배우는 게 많지요.
그런데 소중한 배춧잎을 갉아먹는 벌레들을 잡아 없애는 아이들이 그 중 토실토실하고 마음에 드는 애벌레를 만나면 소중하게 통에 담아 들고 들어온다네요. 나비로 탈바꿈하는 걸 보겠다고요. 텃밭에서는 두 눈 부릅뜨고 잡아 없애야 할 적군인데, 안으로 모셔오고 나면 귀여운 애완충 대접을 해준다나요. 이 말을 들으니, 언젠가 편찮으신 할머니께 보양식을 대접하러 식당에 같이 간 아들내미 품 안에 귀여운 강아지 인형이 안겨 있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강아지를 집에 키우고 싶다고 조르느라 인형을 안고 다니면서도, 보신탕을 잘도 받아먹던 모습이요.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것이 아이들의 '유연성'이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깁니다.
십 년 전 아이들 곁에는 까마중과 명자나무 열매, 뚱딴지 꽃과 쑥부쟁이 꽃이 있었네요. 밤 쭉정이로 숟가락을 만들어 놀던 아이들이 지금은 얼마나 컸을지 궁금합니다.
다시 읽어보니까 작년 5학년 아이들도 버라이어티한 날씨를 느끼고 있었네요. 바람이 불고, 너무 춥고, 어제까지는 더웠고, 곧 눈이 오겠고...
3학년 아이들의 그림에서는 색색의 꽃을 보여주고 있는 메리골드, 하루초 등이 눈에 띕니다. 농사 걱정은 역시나 어른들의 몫이지요.
간간이 태풍 소식이 들려옵니다. 올 겨울은 혹한이 다가올 거라는 예보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도 11월까지 여름 기온이 지속될 거라고 예측하는 기사도 뜹니다. 옥황선녀 오늘이는 사계절이 함께 있던 원천강을 보고 나서도 자신이 살던 지상계로 되돌아와 살았다지요. 그러다가 훗날 원천강의 사계절을 세상에 전하며 시간을 다스리는 신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사계절을 다스리는 옥황궁 선녀의 이름이 '오늘'이라고 지어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고 오직 현재만 존재하듯이, 어제는 가버렸고 내일은 모르고 오직 오늘만 살아가라는 뜻을 다시 마음에 담습니다. 그리 생각하니 사계절이 공존하는 듯한 버라이어티한 오늘 날씨도 꽤 신비롭게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