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에게는 지긋지긋한 일상이었을 풍경이, 그것을 처음 본 사람에게는 잊지 못할 황홀한 정경이 되어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추수를 하기 전이면 우리나라 농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황금빛 너른 벌판.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질리도록 볼 수 있는 그 흔한 광경이 제게는 이맘때면 떠오르는 추억의 사진이 되었습니다.
한로와 상강 절기 어느 무렵쯤이면,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유아들을 데리고 '산계뜰'이라는 곳으로 들살이를 다녀왔습니다. 어느 해는 하룻밤, 또 어느 해는 이틀밤을 함께 지내며 온 들판을 신나게 뛰어다녔지요. 높지 않은 마을 뒷산에 올라가 도토리를 줍기도 하고,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도 했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추수가 막 이루어지는 논두렁이었습니다.
화학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어온 곳이라 그랬을까요, 산계뜰에는 유난히 벼메뚜기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눈만 뜨면 손에 양파망 하나씩 들고 벼메뚜기를 잡으러 다녔지요. 처음에는 주저하던 아이들도 손맛을 보고 나면 온몸을 던져 메뚜기를 잡았습니다. 펄떡거리는 곤충에 약했던 저도, 땀만 삐질삐질 흘리던 신입교사 시절을 지내고 난 뒤에는 제법 빠르게 메뚜기를 낚아챌 수 있었습니다.
해가 올라와 날개가 마르면 메뚜기가 빨라진다는 농부님 말에, 아이들이 새벽잠에 빠져 있는 동안 살그머니 문을 열고 나가곤 했습니다. 안개인지 이슬인지, 몽환적인 분위기에 휩싸인 들녘에서 아이들처럼 볏잎에서 단잠을 자고 있는 메뚜기를 잡는 건 사냥이 아니라 채집에 가까웠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찾지 않아도, 볏잎을 훑으면 타다닥 여기저기서 튀어 올랐습니다. 양파망이 묵직해지는 재미에 바짓가랑이가 젖는 줄도 몰랐습니다. 비록 양파망의 입구를 야무지게 묶지 못해 밤새 탈출한 메뚜기들이 있다 해도, 아이들이 낮동안 잡아 놓은 것들에 합하면 새우깡보다 고소한 볶은 메뚜기는 양껏 먹여줄 수 있었습니다.
퇴직한 뒤로 저는 가지 않았지만 올해도 들살이는 다녀왔나 봅니다. 잠을 자고 오지 않으니 들살이라기보다는 조금 긴 나들이를 다녀온 느낌일 겁니다. 어쨌거나 몇 해 동안 다녀온 적이 있던 교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렇게 말하네요.
"메뚜기가 없어, 진짜 없어요. 한 망이나 겨우 채울까 말까예요!"
아, 그 많던 메뚜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카메라 탓일까요, 올해 받아본 사진에는 꿈에 그리던 황금 들녘이 보이지 않습니다. 황량하게만 보이는 들녘이 마음을 서늘하게 합니다.
학교에 다니느라 가을 들살이를 가지 못하는 초등 아이들은 텃밭에서 자라는 배추를 보며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 뚫렸어도 배추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솔직히 자랑은 아니지만 내 배추가 제일 커 보였다"는 수인이 글을 보며 "자랑 맞네!"라고 깔깔 웃습니다. 주연이는 "레인아, 보우야, 언니가 관심 많이 줄게."라며 배추 언니를 자청합니다. '모름'이니 '돼지'니 '리코더'니 하는 엉뚱한 이름을 붙인 것은 역시나 장난기 가득한 남자아이들이고요. 아이들의 귀한 배춧잎을 갉아먹는 메뚜기는 벼메뚜기가 아니라 섬서구메뚜기입니다. 아마 벼메뚜기가 그렇게 많았다면, 아이들은 아마도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텃밭을 샅샅이 뒤질지도 모르겠네요. 잡아서 볶아먹자고요.
십 년 전 한로 절기. 방아깨비, 베짱이, 사마귀, 송충이 등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곤충이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환경문제 때문에 봄과 가을이 사라지나 보다" 메뚜기가 사라진 것도 같은 이유겠지요.
사라지는 것이 메뚜기뿐은 아니지요. 어릴 적 저희 집 처마에 둥지를 틀고 살던 제비도 보기 힘들어졌고, 봄이 오기를 기다려 피운 매화꽃에 어김없이 모여 오던 꿀벌도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보던 것들, 제 곁에 있던 것들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사라짐을 아쉽게 바라보던 저 자신이 사라지는 날도 머잖아 오겠지요. 그날이 오더라도, 메뚜기만큼이나 신났던 추억을 누군가에게 심어 놓고 사라질 수 있다면, 사라지는 발걸음이 덜 무거우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