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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Oct 10. 2024

돌아와 거울 앞에 서야 할 시간

한로는 국화가 제철

새벽 기온이 제법 떨어졌습니다. 학교에 가기 싫어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는 딸내미처럼 아침 햇살도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눈 뜨기 힘들어하는 아이의 이불을 들춰 잠을 쫓아주듯, 창문을 가리고 있던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며 떠오르는 해님을 맞습니다. 그런데 블라인드만 걷어서는 잠을 깨울 수가 없네요, 창밖의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요.


재작년, 집 앞 나대지에 코스모스 씨앗을 뿌렸습니다. 작년에는 씨앗을 뿌렸던 자리에서 꽃을 피우더니, 올해는 두어 걸음씩 옮겨간 자리에 꽃이 만발합니다. 코스모스가 이사를 갔어요! 식물은 한 번 심으면 그 자리에서 살다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들 하지만 길게 보면 그건 틀린 말입니다. 꽃 핀 자리를 보면서 올해는 북서쪽 바람이 코스모스의 이사를 도왔구나 짐작합니다.


안개와 코스모스, 갈색으로 바랜 강아지풀이 어우러진 광경이 요즘 절기에 알마춤한 사진이라고 대문에 올렸으면서도, 소제목은 '한로는 국화가 제철'이라고 씁니다.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읊기에 딱 좋은 절기, 소쩍새 울던 봄부터 정성껏 키워온 국화로 화려한 축제를 열기에 딱 좋은 절기, 작은 꽃송이를 모셔다 덖어 차를 만들기에도, 그 꽃송이를 얹은 국화전을 만들어 먹기에좋은 절기! 그러니 국화가 제철이지요. 선조들도 한로 절기에 든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국화전, 국화주로 가을의 정취를 즐겼다지요.


제게는 국화와 함께 떠오르는, 국화를 닮은 두 친구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사제가 되어 가장 가난한 본당을 자청해 부임했고, 해마다 국화를 키웠던 故 전숭규 신부님입니다. 제게는 젊은 시절의 모습만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하느님을 향한 깊은 믿음과 가난한 사람을 향한 관심이 남달랐던 것은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곁에 한 송이 흰 국화로 피어나신 지 벌써 십 년이 더 지났네요.


또 한 사람은 '국화 옆에서'를 쓰신 시인과 이름이 같았던 친구 정주, 수도자가 되고 싶었던 젊은 시절 마음을 나누던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한국 순교자의 영성을 따르는 수녀원에, 저는 사도 바오로의 딸로 살아가려는 수녀원을 지원했더랬죠. 친구도 저도 그 길을 끝까지 걷지는 못했습니다만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읽으면 늘 그 친구가 함께 떠오릅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노랫말 때문에 일 년에 하루는 꼭 부르게 되는 노래 '잊혀진 계절'처럼, 일 년에 한두 번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이 시는 시인이 33살 때 쓴 시라고 합니다. 마치 제게는 이런 나이가 없었던 듯 아득하게 느껴지는 나이 서른세 살. 젊은 시인에게는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은 꽃이겠으나, 서른세 살이라는 나이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제 입장에서는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라고 말을 거는, 저 같은 또는 또래의 친구 같은 꽃으로 보이는 거지요. 그래서 잊고 있던 국화 같은 친구들도 하나둘 떠올리게 되나 봅니다.


파란 하늘 아래 벼들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숲에는 마른 낙엽 닮은 버섯들이 송이송이 돋아나는 가을. 아름다워서 더 짧게 느껴질 가을. 내 생명의 주관자인 분 앞에 갈 때 빈 손으로 서지 않을까, 바삐 움직이며 수확할 거리를 찾아야 할 가을. 오늘도 그 귀한 하루 안에서 감사하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또 하나의 달력 / 전례력]

10월은 묵주기도 성월이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외우며 바치는 묵주기도는 다소 지루한 염경기도지만 각각의 신비를 묵상하다 보면 신비로운 관상기도가 된다. 묵상이 지루해지면 묵주알을 돌리다 잠들기도 쉬운 기도. 몸이나 가방에 묵주가 없으면 괜스레 허둥댄다. 가톨릭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을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장미꽃으로 비유하곤 하는데, 묵주기도 성월에 바치는 기도는 국화로 비유하면 어떨까. 장미는 5월 성모성월에 바치기로 하고.


한로 절기 중에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축일도 맞게 되는데, 성녀가 남긴 '그 무엇에도'로 시작되는 기도문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붙들게 도와준다.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잘 구별하고 '모두'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함만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는 국화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한 과정과 어찌 이리 닮았는지.

그 무엇에도
너 마음 설레지 마라
그 무엇도
너 무서워하지 마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
인내함이 모두를 얻느니라
님을 모시는 이
아쉬울 무엇이 없나니
님 하나시면
그저 흐뭇할 따름이니라.
-성녀 예수의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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