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계도 하루 두 번은 정확히 맞는다는데, 일 년 중 이틀은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인 추분(秋分)이 올해는 지난 22일에 들었습니다. 시계야 바늘이 움직이지도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있으니 시간이 흐르다 보면 하루 두 번 그 시간을 지나쳐 간다지만, 해님 달님 지구님은 한순간 멈추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한 해에 꼭 이틀씩 따박따박 그 길이를 맞춰가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더욱이 올해는 추분 아침이 되었을 때 기온이 확 내려갔지요. '여름은 어제까지로 끝. 오늘부터는 가을로 계절이 나뉘는 거야.'라고 알려주는 듯, 괜히 절기 이름이 가을 추(秋), 나눌 분(分)이 아닌 줄 말해주는 듯.
기후 위기로 절기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지구는 이렇게 망해가고 있다고 절망하는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같기도 했습니다.
몸무게가 비슷한 아이가 양쪽에 앉은 시소처럼,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천칭처럼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지만 정반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밤과 낮, 삶과 죽음, 봄과 가을, 음과 양, 남과 여 같은 것들입니다. 정확한 반쪽이들지만 다른 반쪽이가 있어야 온전한 반쪽, 또는 완성된 한쪽이 되는 신비로운 관계입니다.
밤이 오면 낮이 가듯, 봄이 가면 가을이 오고삶이 가면 죽음이 옵니다. 밤이 와서 낮의 빈자리를 채우고, 가을이 와서 봄을 거두어들이고, 죽음이 와서 삶은 완성됩니다. 그렇게 다른 것 둘이 꾸준히 맞물려 돌아가야 온전한 '하나'가 되는 걸 알기에 우리는 캄캄한 밤에도 환한 낮을 잊지 못하며, 가을의 열매를 상상하면서 봄에 씨앗을 뿌립니다. 삶이 끝나야 오는 죽음이지만, 죽음은 또 다른 형태의 '현존'임을, 고통을 겪으면서 알아가는 거지요. 그러니 밤낮이 똑같은 추분은 춘분을 향한 첫걸음이고, 아직 긴 겨울을 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벌써봄을 예측할 수 있는 겁니다.
아침 바람은제법 선선하지만 산길을 걷다 보면 아직은 땀이 많이 납니다. 차림새도 다리에 휘감기는 긴 바지보다 반바지 반팔 차림이 좋습니다. 그러나 여름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저뿐이고, 숲은 어느새 가을 속으로 성큼 들어가 있네요. 참나무에서 떨어진도토리가 발 밑으로 굴러오고, 내 가시맛 좀 봐라 하며 느닷없이 떨어지는 밤송이에 깜짝 놀랍니다. 하늘은 높고 말을 살찐다는데, 민달팽이도 입맛이 도는지 살이 통통하게 올랐습니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알밤으로 주머니 하나는 금세 채울 수 있어 채집 본능이 발휘되기 쉬운 계절입니다만, 밤 하나를 입에 문 청설모와 눈을 맞추고 나니 일부러 찾아다니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다니는 길까지 또르르 굴러와 있는 반짝거리는 알밤 하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청설모와 같이 먹자고 그 자리에서 이로 물어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아드득 깨물 수 있던 알밤이지만, 이젠 제 이가 그리 단단하지 않네요. 나무 오르는 것도, 밤 까먹는 것도 청설모의 재주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더는 숲 속의 알밤을 탐내지 않기로 합니다.
논에 자라는 벼는 알곡을 품고 고개를 숙여갑니다. 황금빛으로 출렁거리려면 가을의 햇볕이 더 필요합니다. 벼는 습지에서 자라는 작물이지만 지금은 물이 아니라 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키가 자라는 데 필요한 것과 알차게 영그는 데 필요한 게 다릅니다. 인생의 가을날을 하루하루 걷고 있는 제게도 물이 아닌 볕이 필요하겠지요. 오늘은 공짜로 충만히 내려주시는 볕을 누릴 수 있는 은혜로운 날입니다. 그 귀한 볕을쬐러 나가야겠습니다.
[또 하나의 달력 / 전례력]
국가적으로도 국군의 날, 개천절 등 징검다리 공휴일이 있고, '세계 차 없는 날'부터 시작해서 절기 내내 이런저런 날도 많다. 전례력도 마찬가지. 오상을 받으신 성 비오 사제부터 시작하여 고스마와 다미아노, 빈첸시오 드 폴, 예로니모, 소화 데레사,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까지 기억하고 기념할 성인들의 축일이 줄줄이 이어진다. 마치 잔잔하게 핀 들국화나 코스모스를 보는 것 같다. 하나만 우뚝 서 있기보다는 고만고만하게 어울려 더 아름다운 가을꽃들 같은 성인들이다. 수호천사 기념일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그림자처럼 나를 앞서거나 뒤서면서 지켜주는 수호천사들을 기억한다니, 동화 속 한 장면 같지 않은가. 그러나 백미는 9월 30일이다. 순교자 성월의 마지막 날이자 소화 데레사가 영면한 그날은 전례력에는 나오지도 않지만, 내가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부터 환갑을 넘긴 오늘까지 내 이름이 되어 나를 지켜주고 있는, 가장 오랜 벗'성녀 소피아' 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