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있는 세면대에 손을 씻으며 창 밖을 보았다.
한 여인이 제법 큰 아이를 등에 업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가 아들의 재활치료를 위해 버스를 타고 병원에 오가는 것을 안다.
그 여인의 표정은 편안하고 밝았지만,
두 모자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급속히 어두워졌다.
한의사로 산 세월만큼 내 안의 서랍장에는 어두운 기록들도 더러 있고,
이 모자의 일도 그중 하나다.
그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어도 해소되지 않는 번뇌가 내 안에 있다.
때는 2000년 초,
두 여인이 버스에서 내려 고개를 돌리다가
우연히 우리 한의원 간판을 보고 들어왔다.
동생인 여인의 나이는 마흔에 가까웠고, 이번까지 벌써 일곱 번이나 유산을 반복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계류유산을 세 번 거듭한 후에 네 번째 임신에서 건강한 아이를 낳은 산모를 보긴 했지만...
일곱 번이나 유산을 한 임산부는 처음 봤다.
그 여인은 조금 전 모산부인과 병원에서 유산 판정을 받고, 친정언니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인의 언니는 동생을 위해 유산 후 조리하는 한약을 지어주고 싶어 했다.
“원장님. 저는 정말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없는 건가요? 네?”
나는 아무 대답 없이 서럽게 우는 여인의 손을 끌어 진맥을 했다.
그런데 맥이 임신 맥으로 나왔다.
나는 임신이 아닌 맥과 임신 맥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안다.
물론 오늘 유산했다 하여 즉시 임신 전의 몸 상태로 바뀌는 건 아니다.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 해도 그녀의 맥은 현재 임신 중으로 나왔다. 그건 너무나 분명했다.
그래서 내가 되물었다.
“유산된 게 확실하다고 산부인과에서 말하던가요?”
옆에 섰던 이 여인의 언니가 대신 답했다.
“네, 동생이 지난번처럼 또 하혈을 해서 갔는데요. 유산이라고 하더라고요.”
태아는 심장도 뛰지 않는 상태로 있다가 그대로 유산됐다고 했다.
나는 진맥 한 결과로는 여전히 임신 중이니
유산 후에 복용하는 조리 약이 아니라
원하면 지금이라도 유산 억제 처방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여인과 언니는 깜짝 놀라며 또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유산 억제 처방을 받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5일분의 유산방지 한약을 처방했다.
그 후 여인의 언니에게서 출산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 여인도 그 여인이 낳은 아이도 본 적이 없다.
그러다 어느 날 길가에서 그 여인이 두 돌이 더 지난 아이를 업고 있는 걸 봤다.
그녀의 언니에게 물어보니
조카에게 선천적인 장애가 있다고 했다.
내가 손을 씻으며 봤던 모습은 그 아이의 나이가 네 살 즈음됐을 때였다.
여인이 낳은 유일한 아이고, 모든 걸 다 헌신해서 돌보는 아들이다.
버스를 타고 재활치료실에 다니는 걸 보면 형편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표정은 늘 편안하고 밝다.
다정한 모자의 모습임에도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그때 진맥결과에 대한 확신이 덜했더라면,
그래서 유산 억제 처방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일곱 번째는 유산됐더라도 여덟 번째 임신에선 평범한 아이를 낳아 기를 기회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또 설령 아이를 낳을 기회를 영원히 갖지 못했더라도
그게 더 나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 나로선 판단할 수 없다.
나는 그 여인이 너무 많이 하혈해버린 상태인 걸 간과했고,
또 당시 의료 수준에서는 밝히기 어려웠겠지만 부부의 염색체에 원인이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아직 아이의 생명을 건질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만 생각했다.
나로 인해 겪고 있을지도 모르는 타인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속 그림자가 짙어진다.
그래서 때때로 우울하다.
A대학병원 흉부외과에 B교수님의 직속 후배 C교수님이 있다.
B교수가 아버지 같다면 C교수는 어머니 같은 성품이다.
B교수님은 종종 C교수님을 걱정하셨는데 그 이유가
생명을 구하지 못한 환자들을 잊지 않고 C교수가 마음속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살기 때문이었다.
인공장기 연구실로 가는 오솔길에서
나는 C교수님과 우연히 이 얘길 나누며 잠시 동병상련의 심정이 되었다.
C교수님은 며칠에 한번 집에 들어갈 정도로 병원에서 주로 살았다.
아들이 아버지 얼굴을 낯설어할 정도였다.
오랜 기간 흉부외과는 인턴 지원을 별로 하지 않는 과였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구할 수 없었던 환자들의 생명이 있었고, 그 일들이 그분의 서랍 깊은데 쌓여 있다.
의료인의 숙명인지 개인적인 기질 차이인지 모르겠으나
어떤 이들에겐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속 서랍에 그림자로 남은 사연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