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거대도시다.
그리고 숨은 그림 찾기처럼 곳곳에 간판 없는 가게들이 숨어 있다.
20년 전 즈음의 일이다.
나는 직장까지 대부분 걸어서 출근을 했는데,
가는 길에는 내가 임대해있는 건물의 지하처럼 간판 없는 업소가 어쩌다 하나씩 있었다.
간판이 없으니 처음엔 인식조차 못했다.
어느 날 밤늦게 퇴근하다가
건물 지하로 들어가는 몇 명의 남자들을 봤다.
다음날 관리실장에게 '지하 1층이 뭐하는 곳이에요?' 물어봤다.
관리실장은 전직이 뭐였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건물 어느 누구에게든 공평하고 일관되게 불친절했다.
뭘 물어보면 '모르시는 게 나아요.'라거나 '그런 거 몰라요'라 하기 일쑤였다.
반말이나 욕설을 내뱉진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대부분 띱띠름했다.
그래도 가끔은 츤데레 같이 몇 마디 길게 대답을 해주기도 했다.
하여간 그래서 나는
지하 1. 2층이 간판 없는 술집이란 걸 알게 됐다.
관리실장의 말로는 여기 일대에 이런 곳이 몇 군데 더 있다고 했다.
주로 모처에서 연락이 올 때만
대학생인지 직업여성인지 모를 여성들이 둘셋 모이고 술상이 차려진다고 했다.
그리고 한쪽에는 안마방이 따로 있었다.
그 안마방도 간판이 없긴 마찬가지였고,
누가 출입하는지 도통 알 수 없게끔 주출입구의 반대쪽에 쥐구멍 같은 계단이 따로 있었다.
언젠가 어쩔 수 없이 두세 번 그곳을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진짜 암흑세계로 들어가는 문처럼 음침하며 비밀스러웠다.
그곳에서 창백한 피부를 가진 사람 둘과 마주쳤을 때 그들은 황급히 내 시선을 피했다.
지하층의 영업은 관리실장님 말대로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진 않았다.
어느 날 느닷없이 저녁 6-8시 즈음
화장한 젊은 여성 두세 명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얼굴을 머리카락이나 손가방으로 가리고 계단을 내려가야
'오늘이 그날이구나'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 건물은 큰 회사에 팔렸는데,
옆의 건물과 함께 사들여진 후 부서졌고
새로 큰 건물이 올라갔다.
세 들어 살던 임차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하여간 그 시절 서울에는 간판 없는 술집이 있었고, 그들이 상대하는 이들은 평범한 회사원들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