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하나가 걸려버렸다. 얼마 전 소속 부서의 종합감사가 있었다. 종합감사는 기관별로 다르나 3~5년 주기로 있어 인사이동 시기와 비껴갈 확률이 높고 근속 기간이 길어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이가 많다. 나 역시 처음이었는데 시작 전부터 각종 관리 대장이며 자료 대출 목록 등 사소한 것까지 탈탈 털어 낸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들렸다. 그러라고 있는 것이 종합감사이니 예상되는 바였다. 타 기관은 어떤지 모르지만 소속 기관은 몇 년간 전국 지자체 기준 청렴지수 선두를 자랑하며 자체적으로도 꽤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한다. 적어도 문서나 시스템상으로는 비리나 부정을 감행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과는 무관한 것이 종합감사. 무언가는 반드시 적발해야만 하는 감사관측 입장도 있으니 경미한 사항을 지적하는 것이 서로 간에 모양새가 좋을 수밖에 없다. 한편 그러자면 더욱 사소한 것까지 온갖 자료를 뒤지고 제출해야만 한다. 아무튼 별도 공간에 감사장을 설치, 이런저런 자료들을 제출, 또 제출하고 현장 감사와 확인 검토까지 받는 한 달여 감사 기간이 끝났다. 그리고 깔때기와 같은 여과 과정을 거쳐 몇 개 부서 몇 건을 적발, 확인했는데 그중 하나가 내 담당 업무였다.
굳이 감사 지적 사항을 명명하자면 장비 관리 소홀쯤이 되겠다. 감사 보고서 주요 내용은 아니니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감사 보고서의 주요 내용들이란 대체로 사업범위나 집행 금액이 큰 것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부정하거나 잘못된 과정을 거쳐 집행한 경우 심각한 문제로 적시되고 예산 낭비, 효과·효율 저조 등도 문제시될 수 있다. 다른 예민한 사항은 채용, 선발 과정. 누가 왜 채용되었냐는 정규·비정규직을 막론하고 중요한 사항이므로 최종 선발에 이르게 된 절차와 과정은 무엇보다 중요한 감사 사항이다. 그 외 몇 년간 문제점으로 누적, 지적되고 있으나 시정 조치 되지 않는 것들도 주요 대상이니 최소한 보완 대책이라도 수립해 둬야 면피가 가능하겠다. 그 외 사항들은 기타로 볼 수 있을 텐데 공공기관별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수익이 발생될 수 있는 자산활용 관련, 기록물이나 보유 물품 등이 현행 관리 규정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지도 주요 감사대상이 되는 것 같다. 공공기관 종사자로서 사실 각종 관리 대상들은 무궁무진하다.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 것도 많으니 제대로 따르자면 부담이 적지 않다. 게다가 기준들은 현실을 반영해 바뀌고 갱신되기 마련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고 있으니 당연하며 공공기관 종사자로서 몰랐다는 말은 전혀 변명이 될 수 없다. 그저 관리 소홀, 심하면 업무 태만으로 요약될 뿐이다. 결국 하나가 걸려 버렸고 확인, 소명의 기회가 있었으나 이미 제출자료와 현실 데이터로 확인된 상황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심각한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지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상황. 확인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서러운 것은 그 서명 제출 과정이었다. 평상시에는 하루 몇 번씩 각종 서류에 수기든 전자든 날인하면서 이런 종류의 확인 서류는 참으로 꺼려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경험인데 서명자는 둘, 담당자와 관리자다. 팀장님까지 서명을 시켜드려야 하니 송구하기도 하고 미뤄두면 더더욱 하기 싫어질 것이 뻔해 서둘러 날인하고 문서를 보내버렸다. 웬걸. 며칠 뒤 감사 보고서에 나란히 지적된 옆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두 부서가 나란히 날인해야 하니 주관 부서인 자기네가 먼저 서명하여 공유해 주겠단다. 그것을 받아 서명하고 같이 내자는 것이었다. 알겠다고 하고 문서를 받아 또 한 번 서명, 다시 제출했다. 그런데 이틀 뒤 이번에는 감사 담당 쪽에서 연락이 왔다. 왜 주무 부서에서 먼저 서명을 했냐며, 우리 측이 먼저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다시 해서 보내란다. 같은 잘못을 했어도 최종 주무 부서에서 취합해야 한다는 말인 것 같은데 순간 귀찮음과 피로함에 서러움이 또 한 번 겹쳐 들었다. 네…암요. 보내드려야죠. 결국 세 번째 보기도 싫은 같은 문서에 한 번 더 날인, 마지막으로 다시 보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저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한 것. 내용도 잠 못 이룰 정도는 아닌, 비교적 단순하고 경미한 지적일 뿐인 이런 확인서조차 서명을 하기 싫은데, 이 이상 건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직원 대상 강의 중 들었던 말, 공공기관 종사자 일이란 폭탄 돌리기 하는 것과 같단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지만 해가 갈수록 맞는 말 같다. 전국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을 접하면 곧 그 뒤 일선이나 현장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누군가가 떠오른다. 인사이동을 한다면 언제든 내가 맞닥뜨릴 수도 있는 상황들. 그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며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알 수 없는 미래의 것들에 무채색이 점점 더 많이 끼어든다. 청년을 지나 장년으로 향한다는 싸인, 뭐 그런 것이 아닐까. 오늘 하루부터라도 밝은 쪽, 밝은 것을 향하고 떠올리려 애써본다. 종이 한 장 따위 뒤로 뒤로 넘겨 버리잣!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