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루브라고도, 좌우정열이라고도 -
눈앞에 한 잔의 술이 있다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있을 뿐이다. 마시는 사람과 마시지 않는 사람. 마실 수 있다 없다는 능력치와는 다른 문제다. 마실 수 있음에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있고, 마실 수 없음에도 부득부득 마셔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아무튼 마시냐 마시지 않느냐로 본다면 나는 전자에 속(하긴)한다. 다만 때와 장소, 상황 등을 가리는 다소 샤이한 면이 있을 뿐. 세월이 갈수록 익숙한 모든 것과 결별이 어려워짐을 느끼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중 하나가 음주다. 휴일 전날 밤이면 일종의 전야제처럼 마시게 되는 것이 술이라 할 수 있는데 시작은 육아 휴직 후 복직 시점부터다. 임신, 출산에 모유수유 기간까지. 출산을 경험한 여성이라면 본의 아닌 금주 기간이 1년 이상씩은 생긴다. 나 역시 덕분에 그전까지는 크게 즐기지도, 필요한지도 몰랐던 음주라는 것을 아쉬워하게 되었고(맥주 없는 치킨이 얼마나 맥 빠지는 것인지 출산 여성이라면 아실 듯) 거기에 복직에서 오는 각종 스트레스가 겹쳐 뒤늦은 음주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가지고 태어난 해독 능력은 보잘것없으나 마땅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없으니 술과 안주가 대상이 된 셈인데 사람과 장소를 가리는 편이라 자연스레 집 술이 되었다. 주량이라고 할 것도 없는 주량을 가지고 마신다 어쩐다 운운하는 것이 주당님들께는 송구하나 적당히 손쉽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최적의 방법, 나아가 수고한 스스로에게 빠른 위로를 주는 수단으로 뒤늦게나마 그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주말, 휴일이라는 말은 (정규) 음주일로 바꿔 말해도 무방하다. 그런 만큼 주말 with알코올이 없다면 삶은 무척 퍽퍽할 것 같고 무색, 무취, 장마 같은 것이 될 것만 같다. 제법 길었던 이번 명절을 지내는 동안에도 소소한 음주생활이 이어졌다. 첫날은 연휴 시작이니 기쁘게, 둘째 날은 집 정리하고 고단하니 가볍게, 셋째 날은 비가 너무 왔으니 자연스레, 넷째 날은 동생이 왔으니 반갑게, 마셨고 다섯째 날이 되어서야 겨우 하루 쉬고 다음날 긴 연휴 마무리로 간단히 하는 식이었다. 이래저래 잔잔하게 기분 좋은 위로와 휴식이 되었다.
좋은 점은 거기까지. 알코올은 종종 한 사람의 인격과 숨겨진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기분이 좋아지면 오히려 더는 나아가지 않으려 하는데 안타깝게도 최적의 타이밍이란 것은 인지하기가 어렵다. 긴장이 풀리고 세상만사로부터 놓여나는 상태가 매우 나른한 기분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뭐랄까 물 밖에서 반신욕을 하는 기분, 숨은 가빠지지만 신체 모든 기관과 세포들은 이완되다 못해 풀려가는 수제비 덩어리가 된 느낌이다. 이래도 될까 싶은 불안이 남아 있다면 아직 술기운이 덜 오른 것이고, 그 판단이 흐려진 순간부터는 알코올 효과가 제대로 발효된 것이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타고 난 주량이 약해 그 순간이 너무 밭게 찾아오고 그렇구나 싶은 시점부터 기분이 급강하, 또는 주변 모든 것에 극예민으로 바뀌는 것이다. 신체 피로도와 당일 기분에 따라 타이밍은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음주 시작점부터 90~120분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안타깝다 못해 안쓰러운 주량인 것은 분명하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 시점이 어떻게, 또 언제쯤 찾아오는 것일까. 가족을 포함 가까운 이들의 음주 습관은 잘 알고 있으니 대략의 시점과 발현 방식, 예상 범위 등을 충분히 알 수 있지만 낯선 이의 경우 퍽 뜬금없는 타이밍, 뜬금없는 방식으로 나타나 우리를 당혹게 한다. 그중 몇몇 기억에 남는 장면은 십 수년이 지나서도 뇌리에서 남아 절대, 절대 잊히지를 않는다. 그중 하나가 늘 다소곳이 머리를 넘겨 빗어두던 한 과장님과 그분의 그루브였다.
사실 공공기관 종사자로서의 내가 경험해 본 음주 경험은 빈약하다 못해 일천하다. 재직기간이 길지 않은 탓인지, 일이 바빠 그랬는지, 거쳐 온 부서들은 다행히 회식문화가 거의 없었다. 거기에 코로나 팬데믹 후 단체 모임 자체가 거의 사라졌고 공직사회 전반적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현장방문이나 기관 방문 후, 저녁 시간이 걸릴 경우 당일 부서장의지와 재량에 따라 같이 식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마치고 나면 자연스레 고생한 이들과 목을 축이기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목격했던 가장 신기했던 광경도 십 년 전 현장방문 후의 일이다.
당일 참석자는 나를 포함 실무자 둘, 팀과장님까지 총넷이었다. 행사참석과 현장방문까지 오후 내내 출장이었는데, 관내 출장이라 해도 네다섯 시간 동안 상사를 모시고 다닌다는 것은 상당히 지치는 일이었다. 어찌어찌 당일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는데 초가을날 제법 따가운 볕에 시달리며 긴 시간을 돌아다녔으니 서로 피곤한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과장님 나름대로는 애쓴 실무자들을 좀 치하를 하고 싶으셨던지 저녁을 먹자고 하셨고 시간이 늦은 터라 그대로 복귀를 하기도 애매하여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찬물에 밥을 말아먹더라도 한시바삐 귀가하고 싶은 심정뿐이었지만 넷 중 가장 말단으로 그럴 수는 없었다. 현장 방문지는 각종 문화 공간 밀집 지역이었는데 지하철역과 작은 공원을 중심으로 반경 300미터 내에 백여 개의 크고 작은 공연장을 비롯해 각종 갤러리며 도서관, 사립대 부속 시설까지 각종 문화 시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공연장을 중심으로 문화적 향취가 물씬한 현장 특성상 식당들도 재즈클럽이나 공연장을 겸하는 레스토랑들이 상당수였는데 과장님이 앞장서 들어간 곳도 그중 하나였다. 들어가니 안은 어두컴컴했고 작은 무대 앞쪽으로 동그란 테이블들이 마름모 형태의 널찍한 공간 안에 규칙 없이 놓여있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인지 테이블들은 모두 비어 있었는데 미소를 띤 직원 둘이 우리를 향해 직진하고 있어 돌아 나갈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가장 구석인 대형 금관악기(나중에 수자폰이라는 걸 알았다) 거치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어딘가 스멀스멀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느새 함박스테이크인가 돈가스인가 하는 정식세트 네 개를 (일괄) 주문해 모두들 묵묵히 먹고 있었다. 어차피 어두컴컴해 음식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다들 너무 지쳐 뭐가 나왔다 한들 상관없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한동안 접시 위에 놓인 것을 가열 차게 썰고 씹어 접시가 비어갈 무렵 과장님께서 다들 고생했고 목도 칼칼하니 맥주도 한잔씩 하자고 하셨다. 개인적으로는 좀 신기했는데, 그때껏 과장님이 술을 마신다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고 이름도 세례자 성인과 같아 다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만 추정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그렇게 제안하셨으니 다 같이 수용하였고 어느새 또 각자 앞에는 500cc 정도의 맥주 한 잔씩이 놓여있었다. 개인 적으는 귀가만을 원했지만 막상 잔 위에 가득한 거품을 보니 또 입술을 담가 보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다들 한 모금씩 목을 축이며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나도 묵묵히 잔을 비워내며 물결 맺힌 잔을 매만지다 하나씩 음반 커버들을 읽어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새듯 보내는 사이 어느새 재즈음악이 홀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일정 시간이 되었는지 음악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는데 그런가 보다 하는 사이 과장님이 스멀스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찬물이라도 필요하신가 해 엉덩이를 떼려는 찰나, 일어나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적인, 그야말로 본능적인 기분이 들었다.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과장님은 천천히 일어나시더니 좌우로 몸을 흔들고 계셨다. 너무나…(과장님이 아닌 내가) 어색하고 너무나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은 왜 늘 나의 몫인가 하는 딱 그런 심정자체였다. 어찌, 왜… 여기서. 지금? 더 놀라운 것은 팀장님이었다. 우리 둘의 눈치를 살피던 팀장님도 시차를 두고 일어나시더니 거의 흡사한 몸짓으로 몸을 대각선 방향으로 흔들기 시작하셨다. 다행히 두 분 다 제자리에서였다. 아무리, 아무리 승진심사를 앞둔 시점이었다 해도 거기에 동참하기까지 해야 하는지. 물론 철저히 개인적인 판단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저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는 것인지. 그런 산발적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갔던 것 같다. 과장님은 계속해서 몸을 좌우로 흐느적거리셨는데 만면에는 시종일관 웃음을 띠고 계셨다. 흥이… 제대로 돋으셨구나. 기분이 꽤… 좋으시구나….
다행히 그 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고 맥주도 정확히 각자 한 잔씩으로 마무리되었는데 나중 생각해 보니 그 또한 신기한 일이었다. 다들 당시 나와 주량이 같았던 것인가. 아니면 지나친 피로는 사람을 좀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다음날 전국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 나는 아무렇지 않게 출장결과 보고를 올렸고 또 과장님은 아무렇지 않게 결재를 해주셨다. 당시 과장님 방은 우리 팀 바로 옆 공간이었는데 묘하게도 내 자리에서만 파티션 너머 과장님 그림자가 보였다. 다음날 오후의 그림자, 그리고 얼핏 거울에 비치던 단정히 한쪽으로 빗어 모은 소중한 머리칼, 그런 것들을 보며 우리가 보는 일상 속의 바로 저분에게도 또 다른 무언가가 있겠구나 같은 것을 생각해보기는 했다.(^^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