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연재 초보라 저장 실수로 다른 곳에 발행 후 뒤늦게 같은 내용을 게재합니다. 널리 양해 바랍니다.)
첫 번째 직장에서 한참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 비슷한 이유로 퇴사를 고민하던 동료 언니가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각자 최적의 탈출 타이밍을 보며 매일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버전으로 반복했다. 그런 시기가 한 3주 정도는 됐던 것 같은데 동병상련을 이유로 급격히 친해졌는지 퇴사를 마무리하고서도 드문드문 만나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때까지도 퇴사의 열기와 흥분상태가 이어졌는지 전 직장상사 험담이나 ‘제대로 된 휴식’ 은 무엇인가 같은 하나마나 한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하루는 그렇게 술을 마시던 중 언니 왈. ‘나가야겠다 싶을 때는 어떻게 그렇게 아다리가 딱딱 맞는지 말이야!’ 평소 언니가 쓰지 않던 리얼한 표현이 재밌기도 했지만 그 표현과 의미에 적극 공감하며 한참을 깔깔댔다. 실로 그러하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스멀스멀 어찌 저찌 알게 모르게 시작되(버리)지만 한 시기를 마무리 짓거나 어느 곳을 벗어나는 데는 반드시 일정 양 이상의 내적, 외적 계기가 필요하다. 특히 나 같이 게으르고 낭창한 스타일에게는. 새로운 것이라면 일단 움츠리고 보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우리도 (어쩔 수 없는)변화의 때가 왔다는 것은 바로 그냥! 딱 알게 된다. 더 이상 망설임이나 고민의 영역이 아님을 직감하는 것이다.
최근 몸담고 있는 곳에서 몇 차례 반복되던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이전과 같은 종류의 문제가 이전보다 조금 낮은 강도로 발생했는데 강도나 복잡성을 떠나 이제는 내 능력이나 의지를 초과하는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미 일어났던 일이며 관리를 해본다고 한들 조만간 또 비슷하게 실패할 것임을 알아버렸다고나 할까. 아니다. 사실 능력이니 관리니 이런 말은 나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말일뿐 그냥 질려버린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감각+감정의 영역. 지리멸렬함+α 악취나 비위 상함과 비슷한 상태인데 정확히 표현할 길은 없다. 어쨌든 그런 기분, 감각이 들고 나면 그 문제는 더 이상 이전과는 같지 않다. 어떤 이에게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그야말로 각자 자기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것. 마음속 손상된 어떤 것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버튼처럼 켜져 버렸으니 끌 수 없는 감각. 턴온 상태로 계속된다. 같은 문제를 대하되 내 상태가 달라진 셈인데 개인적 피로도는 높아졌지만 일은 돌아가야 한다. 이전과 비슷한 절차, 비슷한 과정을 거쳐 공문을 띄우고 서류를 만들고 대면 회의를 하고, 확인 작업과 보완 보충을 거쳤다. 그리고 일단락은 지어졌으나 내 속은 너덜거린다. 피하고 싶은 마음에 허무함이 섞였다. 스스로의 나약함이 싫고 역시 직장일이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내 의지와 무관함을 또 한 번 확인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씨름했던 문제 거리가 예측보다 강적임을, 지긋지긋한 존재임을 인정했다. 징그러워져 버렸다. 터닝 포인트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터닝포인트에는 또 다른 몇 가지가 뭉쳐 빌드업되던 차였다. 하기 싫은 일들이 전보다 늘어나는 것. 초반에는 무슨 일이든 약간은 프레시한 감각으로 할 수 있었다면 만 1년이 지나고부터는 같은 곳에서의 같은 일이 급격히 지루해진다. 연간 예산으로 연간 일정을 (철저히)따라 시행하는 관공서 특성상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이해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일을 마주하는 한 개인 태도의 문제만이 남는다. 특별한 이슈나 이유가 없다면 소속된 곳은 다른 의미를 갖기 힘들고 일은 그저 일일 뿐이며 각자 자신의 내면과 발전 가능성을 가늠해 하루하루 출퇴근을 반복하는 것이다. 1년이 지나고도 또 1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개인적 발전 가능성이 거의 없고 주변마저 이리저리 번잡스러워지고 있어 나에게는 변화가 필요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동뿐인데 어쩌면 가장 힘든 일이다. 갈 길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손을 내미는 곳도, 이야기를 해 볼 곳도 마땅치 않다.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마음속에서 더 강력히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터닝포인트라고.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