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소리 잘하시는 편이신지. 이 나이쯤 되고 보면 싫은 소리라는 것을 듣기는 어렵고(해 줄 사람 사라지는 것이 서글프다) 해야 할 기회는 늘어난다. 직급이 없는 나 같은 입장에서는 아랫사람보다는 돈을 드려야 하는 용역 업체가 주로 그런 대상이 된다. 사적 관계에서는 누구보다 가열 차게, 비판적으로 싫은 소리를 해주(=대)는 편이지만 공적 관계에서는 영 소질이 없다. 집 안에서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퍼부을 수 있지만 사무실 pc를 부팅하는 순간, 쌓아두는 것인 8~90%요,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것은 10%에 불과하다. 그뿐인가. 어찌 그리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기만 하는 건지. 오늘 통화한 세 개 업체 담당자도 하나 같이 조금만 크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라며 거듭 요청했다. 타고난 저음에 왠지 모를 위축감이라니. 싫은 소리를 하기에는 태생적으로 부적합하다.
여하튼 아무리 싫은 소리 하는 것이 싫다, 어렵다 해도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이상, 그리고 업무 담당자라면 그 역시 해야만 하는 제대로 된 “일”이다. 공공기관 종사자 특성상 이런저런 업무들을 모두 직접 할 수는 없다. 특히나 전문적인 일들은 대행기관을 통해야만 하는데 그런 경우 담당자에게는 오롯이 관리감독 의무만 남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자의 책임이니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불안한 상황이다. 모르면 몰랐지 문제시될 무언가를 알(아버리)고 나서는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 이 입장이다.
오늘은 그 모든 것이 쌓이고 쌓여 쏠려 있는 날이었다. 얼마 전부터 묵혀둔 싫은 소리들을 기필코 해보자고 업무 수첩 스케줄로 적어 두며 해결과제로 삼았다. 떠올리니 출근길부터 약간은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이 시대 공공기관 종사자 입장이라는 것이 절대 편치 않은 것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갑질 신고 당할 수 있으며 언론에 잘못 나가기라도 하면 대응하는 것이 새로운 업무가 될 만큼 피곤해진다. 각종 신고며 제보 방법, 매체가 다양화 초발달된 사회라 어떤 창구로 어떻게 민원이 들어올지 알 수 없다. 개별 공공기관들은 선제적으로 취할 것은 교육밖에 없다는 듯 연간 공직자 윤리 교육시간을 의무화하고 월간 공직자 교육까지 별도 시행한다. 각종 신고센터며 시스템의 존재도 수시로 상기시켜 주고 각성 요청 공문도 정기적으로 시행한다. 이런 분위기이니 싫은 소리를 하더라도 문젯거리가 되지 않도록,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에 포인트를 맞추는 편이다. 첫 번째로 근거를 분명히 한다. 상식선에서도 당연한 것인데 근거 없이 싫은 소리를 할 수는 없다. 두 번째는 싫은 소리지만 돌리고 돌려 되도록 부드럽게 완화하려고 애쓴다. 대략 이런 식이다.
… 지난번 우리가 요청했던 이런 저러한 일들은 계약서와 사전 계획에도 명시된 분명히 하기로 하셨던 일이다.(주지), 그런데 지난번에 보니 이런저런 부분이 이행되지 않고 있었고(확인, 지적) 그러니 앞으로도 이런저런 부분들은 상당히 우려가 된다(전망).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저런 부분들은 부디부디 신경 써주셔서 제대로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주시라(간곡히) 개인적으로는 이런저런 방법들을 통해 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디 꼼꼼히 수행해 주시기를 바란다….
쓰고 보니 새삼 눈물겹다. 오늘 하루만도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세 군데 수행처와 이런 통화를 했다. 끊고 나면 왠지 좀 허하면서 착잡한 기분. 일방적으로 공격적인 언사를 듣고 요구사항에 방어적으로 말해야 하는 민원성 전화들이 기빨리는 느낌이라면 싫은 소리 통화는 좀 부질없게 느껴지는 통화다. 아무리 요청해도 결국 할지 말지, 즉 개선될지 아닐지는 듣는 이들이 정하는 것이니. 그저 할 것을 다했다는 약간의 안도감, 그리고 불안과 착잡함이 섞일 뿐이다. 결국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은 나의 의무, 실현 여부는 너의 마음이다.(^^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