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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 Apr 20. 2021

나 다시 돌아갈래!

     드디어 중국 북경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만 해도 이곳이 정말 중국이 맞긴 한 건가 실감이 나지가 않았다. 공항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간신히 잡은 뒤 핸드폰을 두드려 봤을 때야 비로소 중국에 도착했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한국에서 숨 쉬듯이 사용했던 앱들이 완전히 먹통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앱들이 아예 안 되겠어? 속도가 느린 정도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과거의 나를 이제 와서 원망해봤자 무슨 소용일까? 앱이 되지 않는 휴대폰은 내게 쓸모가 없는 쇳덩이일 뿐이었다. 쇳덩이를 우악스럽게 주머니에 쑤셔 넣고 같은 연수생들을 따라 정신없이 고속버스에 탔다. 우리들을 태운 버스는 바로 출발하고 얼마 안 돼서 고속도로로 보이는 길로 들어섰다. 그때 내가 본 도로의 풍경은 거의 첩보 영화와 다름없이 박진감 넘쳤다. 하지만 그 풍경을 마냥 영화 보듯이 흥미롭게만 볼 수는 없었다. 바로 그 도로 위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영화 속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  오토바이는 역주행하고, 쌩쌩 달리는 신호위반 차들 사이로 사람들은 막 돌아다니고…. 중국에 대한 내 첫인상은 ‘무질서’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존심이고 뭐고 당장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타고 있는 이 버스가 안전하긴 한 건지, 아니 이 나라가 안전하긴 한 건지 모든 게 의심스러워졌다.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휙휙 바뀌는 바깥의 낯선 풍경을 초점 없는 눈으로 넘기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기숙사 배정이 이루어졌다. 엄마의 지나친 걱정을 100% 반영하여 난 통금이 있고 교수님이라도 남자라면 절대 출입 불가인 여자 기숙사를 선택했다. 방을 배정받은 뒤 낑낑거리며 캐리어를 들고 간신히 내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확 들어온 것은 바로 화장실이었다. 왜냐하면 화장실 천장에 거대한 물탱크가 달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뜬금없는 위치에 달려있는 그 물탱크의 용도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저게 대체 뭐지…?` 하며 서둘러 나가서 옆방에 물어보니 그 물탱크는 물을 데우는 용도로 쓰인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얼음 같은 찬물(심지어 석회수였다)로 씻고 싶지 않다면 샤워 한 시간 전에는 물탱크에 물을 미리 데워야만 했다. 심지어 그건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머리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바로 극락 하이패스 예약이었다. 그 물탱크를 보자마자 앞으로 펼쳐질 내 중국 생활이 안 봐도 비디오인 듯했다.


    놀란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기숙사에 있는 식당으로 연수생들과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나를 꽁꽁 싸매고 있던 긴장이 맛있는 밥 냄새를 맡고 약간 풀리는 듯했다. 곧이어 갈증이 물밀듯 밀려왔다. 눈치를 슬슬 보다가 용기를 내어 제일 친절해 보이는 식당 직원을 부른 후 손짓, 발짓을 동원해서 말했다. 중국어를 몰라도 우리에겐 만국 공통어 ‘바디랭귀지’가 있으니까!     


“물 주실 수 있나요? 슈, 슈웨이…?”     


“!@#$%^&!?”     


    직원이 엄청나게 화가 난 표정으로 나에게 강한 어투로 무언가 말을 했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소리 지르듯이 말하는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한국에서는 물 따르는 동작이 중국에서는 욕인 걸까?

    바싹 얼어버린 동태처럼 입을 벌리고 굳어버린 내가 많이도 안쓰러웠던지 옆에서 밥을 먹던 다른 연수생이 통역을 해줬다. 알고 보니 찬물은 없고 뜨거운 물만 있는데 괜찮으냐는 배려심 가득한 말이었다. 그 통역을 듣자 갑자기 내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으면서 이 식당은 이제 내 마음속 단골 1위 저장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차례 작은 소동이 지나간 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던 북경에서의 첫 식사가 끝났다. 혼자 방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가 밝게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여자는 내 룸메이트였고 나보다 한 살 많은 본과 2학년 Y 언니였다. Y 언니는 이 곳에서 대학을 1학년까지 다니다가 휴학하고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갔다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다. 남동생만 2명 있는 나에게는 누군가와 방을 같이 쓰는 게 처음이었다. 거기다 원래 주변에 언니가 별로 없던 터라 난 Y 언니가 룸메이트여서 너무 좋았다. 그 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와이파이를 잡아서 톡을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앱은 켜지질 않았다. 중국에서는 VPN이라는 IP 우회 접속 앱을 깔아야만 느린 속도라도 SNS를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일단 휴대폰 유심을 서둘러 바꾼 후에 연수생 대상으로 모집하고 있던 유료 VPN에 가입했다. 그런 뒤에 간신히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VPN은 자주 끊겨서 10분마다 다시 켜야만 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시간이라도 한국과 연결이 된다는 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종교도 없던 나는 이름만 들어봤던 모든 신들에게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읊조렸다.     


    방을 다 정리한 뒤 누워서 이불속에 몸을 푹 파묻었더니 긴장이 풀렸는지 돌연 왈칵 겁이 났다. 곧이어 눈물이 비집고 나오면서 눈이 간질거렸다. 내 앞에서 곤히 자고 있는 룸메이트 언니가 이 사실을 알면 나를 나약한 사람으로 볼 것만 같아서 뒤척이는 척하며 또르르 굴러간 눈물을 살짝 쳐냈다. 나 정말 잘할 수 있을까?



김도희


Ps. 저 식당은 나중에 귀국날까지도 방문한 내 최애 단골 식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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