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출국할 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호기롭던 이전의 내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만 남았다. 두려움은 늘 눈물과 같이 오곤 했던지라 난 씻다가도 울고 밥 먹다가도 울고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다가도 울곤 했다. 눈물은 이미 내 의지로 틀어막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내 마음도 모르는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어느덧 출국 전날 밤. 노량진 단골 술집에서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만났다. 조금의 빈틈도 없이 늘 붙어 다녔던 친구들과 떨어져 나 혼자 외국을 간다고 생각하니까 괜스레 코 끝이 시큰해졌다. 중국은 연락도 잘 안된다는 어학연수 후기를 봤다며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나보다 더 크게 울었다. 밤새 짜낸 우리들의 눈물즙을 닦느라 노량진에 있는 휴지들이 다 희생되기 직전에 간신히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서 부모님과 함께 바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항상 밀리던 공항 가는 길은 새벽이라 밀리지도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7시였다. 그리고 내 비행기는 오전 8시 40분 출발. '커피 한잔 마시고 여유롭게 들어가면 되겠지' 했던 생각은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성격이 급한 아빠를 간과한 생각이었다. 아빠는 공항에 발을 들이자마자 말했다.
"도희야, 어서어서 들어가! 아빠 출근해야 해”
비상등도 키지 않고 훅 들어온 아빠의 그 말에 급작스럽게 눈물 버튼이 딸깍 눌린 엄마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니, 당신 먼저 차에 가 있으면 되지 왜 애를 재촉해?”
엄마의 눈물은 점점 격해져 감당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가 보면 내가 이민이라도 가는 줄 알았을 것이다. '대체 저 여자는 왜 저렇게 울까?' 관심 가득한 주변의 눈빛에 떠밀려 대충 손 몇 번 흔들고 서둘러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한국에 와서 알게 된 거지만 엄마는 내가 중국으로 떠난 이후 해외에서 혼자 사는 딸이 걱정되어 꼬박 한 달 동안 내 방에서 울었다고 한다.
"삐! 삐! 삐! 삐"
그렇게 얼떨결에 수속을 밟던 중 갑자기 우렁찬 경고음이 울렸다. 그 경고음이 나에게 향한 걸 알고 나서는 너무 놀란 나머지 눈물도 쏙 들어갔다. 캐리어를 볼 수 있겠냐는 친절한 공항직원의 말에 난 얼른 사람들 앞에서 내 캐리어를 와르르 다 엎었다. 알고 보니 바보같이 기내용 캐리어 안에 카레를 왕창 들고 타려 했던 거다. 비행기를 몇 번 타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더 억울한 건 나는 카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주변에서 '타국 생활에는 한국 인스턴트 카레가 한줄기 빛' 이라길래 마트에서 있는 카레 없는 카레 다 긁어 모아 바리바리 쌌더니... 역시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공항 오기 전에 급하게 캐리어 구석에 욱여넣은 향수도 문제였다. 난 왜 하필 쓰다 남은 향수를 굳이 캐리어에 넣었을까?
"인터넷에서 향수 50ml는 된다고 봤는데 버리기 전에 한 번만 더 확인해주시면 안 될까요...?"
다행히 간절했던 나의 마음이 통한 건지 조금 남은 향수를 허용해주셨다. 자비로우신 공항 직원님 덕분에 향수라도 겨우 들고 탈 수 있었다. 출발부터 험난했다. 거기다 잠도 제대로 못 잔 터라 물을 흠뻑 머금은 솜처럼 몸이 축축 쳐져서 면세점을 둘러볼 기분도 나지 않았다. 간신히 찾은 게이트 앞 의자에 앉고 나서야 이제부터는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내야만 한다는 게 실감이 났다. 부적처럼 주머니에 꼭 챙겨 온 친구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조용히 또르르 눈물만 흘렸다. 이쯤 되면 내 눈물샘은 남들보다 훨씬 넓은 게 확실했다. 비행기에 타면서도 자꾸만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을 손등으로 대충 쓱쓱 닦았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간신히 자리를 찾고 앉고 보니 내 옆자리 창가 좌석에 어떤 여자가 먼저 앉아있었다. 비행기는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창문 밖 풍경을 핸드폰으로 계속 찍었다. 체감상 100장은 찍었을까, 갑자기 ‘악! 내 립스틱!!’ 이러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내 자리 주변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곧 출발해야 하는데 그녀는 승무원에게 면세점에서 산 립스틱을 어딘가에 두고 온 것 같다며 상황을 설명하곤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얼마 안 돼서 누가 봐도 등껍질을 잃어버린 거북이 같은 표정을 하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그 여자가 보였다. '빨리 출발해야 하는데 진짜 왜 저러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초라도 더 한국에 있고 싶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당장이라도 출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의 자리를 봤는데, 옆 좌석 발 밑에 돌돌 말린 면세점 봉투가 보였다. 나는 퉁퉁 불어 마카롱이 돼버린 눈에 간신히 힘을 주고 소리쳤다.
“여기 있어요, 립스틱!”
그녀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보다 더 빠르게 뛰어 왔다.
“우와 정말 고마워요!!! 진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중국을 간다는 설렘으로 가득 찬 그 언니는 북경에 가는 비행기 안에서 2시간 내내 내가 중간중간 우는 건 상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나보다 두 살이 더 많고 울산에 사는 언니였고, 같은 유학원을 통해 같은 대학인 북경 제2외대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다. 그게 내 소울메이트 하경 언니와의 첫 만남이다.
김도희
Ps. '눈물'이라는 단어가 총 몇 번 나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