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는 왜 요즘 더 힘들게 느껴질까?

100세 시대, 여성호르몬 없이 살아야 하는 반백 년

by 김보민

요즘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얼마나 잘 사느냐’가 중요한 시대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 그러다 보니 갱년기는 이제 그저 거쳐 가는 시기가 아니라, 인생 후반부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상하게, 갱년기를 더 힘들게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 나 역시 진료실에서 그런 분들을 매일 만난다. 이건 단순히 “요즘 사람들이 유난을 떨어서”가 아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예전엔 그냥 지나갔는데, 요즘은 너무 힘들어요”

예전 세대는 갱년기를 그저 ‘나이 들면 오는 자연스러운 일’로 여겼다. 그때는 평균 수명도 짧았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여성의 평균수명이 60세가 채 안 됐으니까¹. 그 말인즉슨, 완경이 오고 몇 년 지나면 인생의 끝이 보였다는 뜻이다. 갱년기를 겪는 기간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100세 시대.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86세를 훌쩍 넘겼다².

“이제 반은 더 살아야 합니다.”

50세 전후에 완경을 맞이한 여성은 그 이후로 무려 40~50년을 여성호르몬 없이 살아가야 한다. 이건 말 그대로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호르몬 없이 살아야 하는 반백 년의 시대다.


진료실에서 만난 80대의 ‘갱년기’

내 환자 중에 80대 할머니 한 분이 있다. 이분은 지금까지도 여성호르몬제를 못 끊고 계신다.몇 번이나 “이제 그만 드셔도 될 것 같아요” 하고 시도해봤지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잠이 안 오고, 감정이 요동치면서 결국 다시 복용을 시작하셨다.

“선생님, 나 이 나이에도 아직 갱년기라니, 남들한테 얘기하기도 민망해. 호르몬이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어.”

그분의 말에 나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진심으로 공감했다.

이제 갱년기는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다. 과거에는 ‘조금 힘들다가 지나가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삶의 절반을 좌우하는 중대한 시기가 되어버렸다.


왜 요즘 여성들은 갱년기를 더 힘들게 느낄까?

갱년기의 증상 자체는 사실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안면홍조, 불면, 우울감, 체중 증가, 피로감... 이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하지만 그걸 느끼는 강도와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 세대의 여성들은 ‘아이 키우고, 가족 챙기고, 내 역할을 다했다’는 성취감 속에서 갱년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지금의 여성들은 육아와 일, 자기관리, 사회적 역할을 모두 감당해온 세대다. ‘이제야 나를 돌볼 수 있겠다’ 싶은 시점에 몸이 급격히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삶의 질이 중요해진 지금, 단순히 “참으면 된다”로는 이 변화를 견디기가 어렵다.

열이 오르고, 잠은 안 오고, 살은 찌고, 감정은 오르락내리락... 그 모든 게 “내 몸이 낯설어지는 경험”으로 다가오니까.


갱년기는 ‘병’은 아니지만, ‘관리해야 할 변화’

갱년기는 자연스러운 생리적 과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두면 안 된다.

심지어 WHO의 국제질병분류(ICD-10)에서는 ‘폐경 관련 증후군(N95.1)’으로 질병 코드가 부여되어 있다⁴.

즉, 이건 “참으면 되는 일”이 아니라, 관리하고 준비해야 하는 의학적 변화다. 요즘 여성들이 갱년기를 더 힘들게 느끼는 이유는, 이제는 단순히 살아남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삶의 질이 중요해진 만큼, 그걸 위협하는 변화에 민감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갱년기는 ‘끝’이 아니라 ‘리셋의 시작’

나는 갱년기를 **“늙음의 신호”가 아니라 “인생의 리셋 버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다 키워놓고, 일에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비로소 나 자신에게 시간을 쓸 수 있는 시기. 그러니까 갱년기는 오히려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업그레이드의 기회다.

이 시기를 잘 보내려면, 몸과 마음을 새롭게 세팅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운동, 영양, 수면, 스트레스 관리, 그리고 필요하다면 호르몬 요법의 도움까지.


중요한 건,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괜찮은 척”보다, “나를 돌보는 용기”가 훨씬 건강하다.


『 완경 = 끝 아님.

갱년기 = 새로운 인생 미션의 시작.

이제는 참는 대신, 나답게 살아야 할 시간. 』


**각주

1) Roser M, Ortiz-Ospina E, Ritchie H. “Life Expectancy.” Our World in Data, 2023.2

2)통계청. 「2023 한국인 기대수명 통계」 – 여성 평균 기대수명 86.6세.

3)Avis NE, et al. “Menopausal symptoms and quality of life.” Obstet Gynecol Clin North Am. 2018;45(4):679–686.

4)World Health Organization. ICD-10: N95.1 — Menopausal and other perimenopausal disor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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