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갱년기 전인데요?

“갱년기는 남 얘기라고요? 저도 그랬어요.”

by 김보민

“선생님, 저는 아직 갱년기는 아니죠? 그쵸? 아직은요…?”

진료실에서 꽤 자주 듣는 질문이다. 눈은 동공 지진, 말투는 조심스럽고 약간 애처롭다. 그 말 안에는 '제발 아니라고 말해주세요'라는 간절한 마음이 섞여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살짝 웃음이 난다. 왜냐하면... 나도 정확히 그랬거든. 언젠간 올 걸 알지만, 지금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 사실 우리 모두 갱년기를 '먼 훗날 이야기'로 생각하며 산다. 심지어 의사인 나조차도 그랬다. 누가 보면 내가 갱년기 정의를 모르는 줄 알겠다.

“에이, 아직 생리도 하고 있으니까 멀었겠지 뭐~”

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문득, 이유 없이 땀이 줄줄 흐르고, 짜증이 폭풍처럼 몰려오며,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있었다.

‘아니, 이거 혹시 그...?’

부정하고 싶었지만, 몸은 이미 나보다 먼저 갱년기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은 ‘전’ 갱년기일 뿐?

갱년기는 대체 언제부터 시작되는 걸까? 교과서적으로는 “난소 기능이 점점 저하되며 생리가 끝나기 전후 약 10여년의 기간”이라고 되어 있다. 쉽게 말해, 40대 중후반부터는 예고 없이, 눈치 없이 찾아온다. 이때 우리는 갱년기와 갱년기 전, 즉 “전(前) 갱년기”를 구분하게 된다. 문제는 전 갱년기도 꽤나 얄밉게 증상이 많다는 점이다. “아직 아니라고 했잖아!” 라고 외치고 싶은데, 몸은 왜 이렇게 어수선한지. 피곤하고, 살이 찌고, 얼굴은 붉고, 감정은 롤러코스터. 그러니, ‘갱년기는 생리 끝나고 오는 것’이라는 단순한 공식은 과감히 버리자.


우리 몸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나이보다 빠르게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의사로서 말하자면, 갱년기의 출발점은 “생리의 끝”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미묘한 신호”에서 시작된다.

의사이자 여성으로서 느낀 건, 이 시기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할 시기’라는 것.

“나 아직 괜찮아.”

“나 그 정도는 아니야.”

라고 계속 부정하면, 몸도 마음도 지쳐버리기 십상이다.


나는 갱년기를 ‘늙음의 시작’이 아니라 ‘나를 다시 배우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식욕이 변하고, 감정이 예민해지고, 생각보다 이유 없이 울컥하고, 전에는 잘 넘기던 일에 지치고... 이 모든 건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내 몸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알려주는 메시지다.

“나, 갱년기인가요?”라고 묻는 순간 사실 그 질문을 한다는 건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그건 약하거나 나약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려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진료실에서 그 질문을 받으면 나는 항상 이렇게 답한다.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 변화를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사실, 갱년기라고 하면 다들 ‘여자로서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도 끝났구나…”

“꽃이 지면 남은 건 낙엽뿐이야…”

이런 식으로.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로서 수많은 여성들을 보고, 또 내 몸의 신호를 하나둘 느끼면서 확신하게 됐다. 갱년기는 끝이 아니라,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신호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가장 솔직한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어느 정도 커서 내 품을 떠나고,직장에서도 나를 증명하느라 몸부림치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나, 이제 좀 나로 살아도 되지 않아?”라는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시기.

그런데 마침 그때 몸이 “좋아, 이제 나도 좀 쉬어볼게” 하고 파업을 선언한다. 열은 오르고, 잠은 안 오고,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정말이지, 몸과 마음이 동시에 사춘기를 맞이한 느낌이다. 그래서 갱년기는 ‘여자로서의 끝’이 아니라 ‘인생 2막의 사춘기’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뒤의 30년이 완전히 달라진다.

아이들이 한창이던 시절엔 내 몸은 늘 뒷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나를 돌볼 시간이 생긴다. 경제적·시간적으로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이제야 비로소 나한테 투자할 수 있는 시기.

그걸 생각하면, 갱년기는 참 괜찮은 기회다. 물론 준비는 필요하다.


몸의 호르몬은 줄어들지만, 그 대신 우리가 채워 넣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운동, 단백질, 수면, 사람.

이 네 가지는 진짜 갱년기 생존 4대장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갱년기 증상이 40% 정도 줄고¹,

단백질과 칼슘을 충분히 먹으면 근육과 뼈를 지킬 수 있다².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친구를 많이 만나는 사람일수록 우울감이 훨씬 적다³.

결국 호르몬이 빠져나간 자리를 움직임과 음식, 관계가 메워주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생각한다.

“갱년기는 피할 수 없지만, 즐길 수는 있다.”

뜨거워지는 얼굴을 탓하지 않고, 그저 내 몸이 “나 아직 살아 있어!” 하고 신호 보내는 거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쩌면 이 시기는, 남편이나 아이가 아닌 **‘나 자신과 다시 연애하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 몸의 컨디션에 맞춰 먹고, 자고, 웃고, 진짜로 나한테 맞는 삶의 리듬을 만들어갈 때다.


『갱년기는 여자의 끝이 아니라, 여자로 사는 법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다.

꽃이 다시 피려면, 잠깐의 겨울이 꼭 필요하니까.』

『 갱년기는 안 오는 게 아니라, 안 온 척 하고 있는 중일 뿐이다. 』


**각주

1)Elavsky S, et al. "Physical activity and menopausal symptoms: A review." Menopause. 2012;19(11):1231–1242.

2)Messier V, et al. "Protein intake and muscle health during menopause." Nutrients. 2017;9(10):1101.

3)Li C, et al. "Social relationships and mental health during menopause: A cross-sectional study." Maturitas. 2018;107: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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