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는 간수치가 아니라 인생이 쌓여서 생깁니다”
내과 진료실에 앉아 있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가 피곤하다고 말한다.
“요즘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어요.”
“선생님, 혹시 간이 안 좋은 건 아닐까요?”
그럴 때 나는 아주 전문가스럽게 대답한다.
“피로는요, 간수치가 문제가 아니라 스트레스, 수면, 영양, 활동량 등 복합적인 원인이 많아요. 정기적으로 식사하고, 잠 푹 자고, 운동도 조금씩 해보세요.”
그리고 속으로 되뇐다.
‘그 말, 나한테도 해줘야 하는데…’
피로는 주관적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피곤하다’는 말만큼 흔한 증상도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의사 입장에서는 가장 어려운 증상 중 하나다.
왜냐하면 피로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혈압처럼 재볼 수도 없고, 체온처럼 눈으로 확인되지도 않는다.
“얼마나 피곤하신가요?”라고 물으면
대답은 늘 비슷하다.
“그냥... 너무요.”
물론 내과적으로 피로를 유발하는 원인들은 많다. 빈혈, 갑상선 기능 이상, 간·신장 기능 저하, 당뇨, 수면무호흡 등등. 하지만 정작 검사를 다 해도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를 흔히 ‘만성 피로 증후군’이라 부른다.
명확한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효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몸과 마음이 복합적으로 지쳐버린 상태.
그래서 피로는 “진단보다 해석이 더 어려운 증상”이다.¹
‘피로’의 근본 처방, 결국은 생활이다
사실, 정답은 너무 단순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움직이는 것.
운동을 하면 근육에서 ‘마이오카인(myokine)’이라는 물질이 분비된다. 이건 우리 몸의 염증을 줄이고, 에너지 대사를 도와주며, 심지어 기분까지 좋게 만든다.²
적절한 수면은 호르몬 밸런스를 조절하고, 면역 기능을 회복시켜 준다.³
영양은 말할 것도 없다. 아침을 거르는 사람일수록 피로감이 더 크고, 식사 리듬이 깨질수록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이 오르며 회복력이 떨어진다.⁴
결국, 피로는 약보다 습관의 문제다.
커피로 버티고, 야근으로 잠을 줄이고, 운동 대신 SNS를 스크롤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이런 생활이 쌓이면 피로는 만성화된다.
의사도 인간이라, 실천은 어렵다
나는 매일 환자들에게 말한다.
“아침은 꼭 드세요.”
“수면이 부족하면 면역력 떨어져요.”
“주말에도 가벼운 산책은 하셔야죠.”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마세요.”
그러고 퇴근길 내 상태는?
✓아침: 못 먹음
✓점심: 라떼로 때움
✓저녁: 컵라면
✓수면: 5시간
✓운동: 숨쉬기 운동
✓스트레스: 만렙
언젠가 한 환자가 물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피곤하실 땐 어떻게 하세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히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버팁니다. 커피와 맥주에 의지하면서요.”
그 말에 환자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건강하셔야 해요. 선생님 아프시면 저는 어떡해요?”
그 순간, 웃음 반, 죄책감 반. 그리고 마음 한구석이 뜨끔했다.
‘그래, 나도 이제 내 환자가 아닌 내 몸의 주치의가 되어야겠구나.’
‘피로’를 대하는 새로운 태도
피로는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피로와 공존하는 방법은 배울 수 있다.
충분히 자고, 꾸준히 움직이고, 잘 먹는 것.
그건 지루하고 평범하지만,그 평범함 속에서 몸은 조금씩 회복된다.
결국 피로란, 병이 아니라 삶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제 좀 쉬어가자.”
“너무 오래 참고 있다.”
『의사 경고문!
내과의사에게 ‘피로를 이겨내는 법’을 묻지 마세요.
대답은 알지만... 실천은 못 합니다.』
**각주 및 참고문헌
1.Afari N, Buchwald D. Chronic Fatigue Syndrome: A Review. Am J Psychiatry. 2003;160(2):221–236.
2.Pedersen BK, Febbraio MA. Muscle-Derived Myokines and Their Role in Health and Disease. Nat Rev Endocrinol. 2012;8(8):457–465.
3.Irwin MR. Sleep and Inflammation: Partners in Sickness and in Health. Nat Rev Immunol. 2019;19(11):702–715.
4.St-Onge MP, et al. Sleep Restriction, Nutrition, and Metabolism. Annu Rev Nutr. 2016;36:21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