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의 밤은 길고, 내 눈은 말똥말똥

자려고 누웠는데… 왜 갑자기 15년 전 창피한 일이 생각나지?

by 김보민

□ “잠들고 싶은데, 내 뇌는 회전목마 중…”

갱년기가 오면, 진짜로 ‘수면장애’가 남의 일이 아니다. 나는 45살 전까진 불면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커피를 밤에 마셔도,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도, 누우면 바로 숙면. 그렇게 잠을 잘 자는 DNA를 타고났다고 믿었다.

그런데 마법처럼(혹은 저주처럼) 45세가 되던 해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낮엔 졸리고 무기력한데, 밤에는 눈이 말똥말똥. 겨우 잠이 든 줄 알았는데 두 시간 만에 번쩍 깨고, 다시 잠드는 데는 또 한세월. 결국 새벽 두 시, 나는 누운 채로 “하루 복습 + 내일 걱정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 애들 숙제 검사 안 했지…”

“내일 환자 예약 스케줄 조정했나…”

“어제 그 환자 설명을 조금 더 해드렸어야 했나…”

침대 위는 조용했지만, 내 머릿속은 고속도로였다. 몸은 침대 위에 있지만, 마음은 4차원 우주로 여행 중이었다.


□ 수면장애의 중심엔 ‘호르몬의 지휘자’ 에스트로겐이 있다

갱년기 수면장애는 단순히 ‘잠이 안 온다’의 문제가 아니다. 호르몬, 체온, 신경전달물질이 모두 얽혀 있는 복합적인 생리적 현상이다.

에스트로겐 감소 → 체온 조절이 어려워져서 밤에 열감(안면홍조, 식은땀) 발생¹

프로게스테론 감소 → 진정 작용이 줄어 숙면 유지 어려움²

멜라토닌 분비 저하 → 수면 리듬이 깨져 쉽게 깨고, 깊은 잠 진입 감소³

결국, *“뇌는 쉬고 싶은데 몸은 계속 깨어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태가 반복되면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식욕 조절이 어려워지고, 우울감이나 폭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⁴. 즉, 갱년기의 불면은 단순히 ‘잘 자고 싶다’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남고 싶다”**의 문제다.


□ “나도 한때 맥주 없인 잠을 못 잤어요”

나는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 늘 “난 스트레스 잘 안 받아요~” 하고 살았다.

그런데 셋을 키우고, 병원 운영하고, 진료하며, 집안일까지 챙기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지 맥주 한 캔 없이는 잠이 오질 않았다. 처음엔 “이 정도쯤이야” 하고 넘겼다.

그런데 하루 한 캔 → 두 캔으로 늘더니, 어느새

✔식도염이 생기고,

✔아침 배가 볼록,

✔피부는 푸석,

✔기분은 다운,

✔잠은 더 나빠졌다.

왜일까?

알코올은 입면을 도와주지만⁵, 수면의 ‘질’을 망가뜨린다. 밤중 각성(자다 깨기), 얕은 수면, 렘수면 감소로 인해 결국 “잠은 잤는데 쉰 느낌이 없는” 상태가 된다⁶.

그래서 큰 결심을 했다.

“맥주를 끊고, 운동을 시작하자!”

□ 운동은 최고의 수면 보약

운동을 꾸준히 하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운동을 하면 근육에서 마이오카인(Myokines) 이라는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게 항염증 작용을 하고, 뇌 기능과 기분 조절에까지 영향을 준다⁷. 또한 운동 중에는 세로토닌, 도파민,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기분이 안정되고 숙면이 촉진된다⁸.

하버드 의대 연구에 따르면, 주 3회,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16주 지속했을 때 가벼운 우울증 환자에게 약물치료와 비슷한 수면 개선 효과가 있었다⁹.

다만, 운동은 자기 직전엔 금물! 격렬한 운동은 아드레날린을 자극해 오히려 잠을 깨우므로 오후 5~6시 이전에 끝내는 것이 좋다.


□ 갱년기 수면장애, 이렇게 대응해보세요!

✔ 낮에는 햇빛, 밤에는 어둠

멜라토닌은 낮 동안 얼마나 빛을 받았는지에 따라 밤에 얼마나 분비될지가 결정된다¹⁰.

→ 점심시간 20분 산책, 출근길 햇빛 쬐기

→ 밤엔 조명 최소화, 스마트폰 멀리

✔ 저녁 루틴 만들기

반신욕 or 따뜻한 샤워

가벼운 스트레칭

향초, 수면 유도 음악(α파 음악 추천)

✔ 술 대신 허브티

카모마일, 라벤더, 루이보스티는 GABA 작용을 도와 수면을 유도¹¹.

“맥주 대신 허브티로도 충분히 숙면 가능하더라구요.”

✔ 커피는 오후 2시 이전에 끝내기

카페인은 반감기가 6~8시간이라, 오후 늦게 마시면 밤까지 남아 수면을 방해¹².


□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현명한 선택’

수면제나 항우울제, 인지행동치료는 갱년기 수면장애에 효과적¹³이다.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말자.


“잠은 인생의 3분의 1, 나머지 3분의 2를 버티게 하는 힘”

갱년기의 수면장애는 단순히 불편한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내게 보내는 경고등이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 몸을 움직이고, 햇빛을 쬐고, 술 대신 허브티를 마시고, 조금만 루틴을 바꾸면, 다시 ‘깊은 잠’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다.

나는 이제 안다. 잠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다.

그리고 잘 자야 —

감정이 안정되고,

식욕이 조절되고,

다이어트도 성공하고,

무너진 내가 다시 살아난다.


**각주

1) Baker FC, de Zambotti M. “Sleep and sleep disturbances associated with the menopausal transition.” Sleep Med Clin. 2017.

2) Shaver JL et al. “Progesterone, sleep, and menopause.” Sleep. 2011.

3) Brun J et al. “Melatonin levels during the menstrual cycle and after menopause.” Sleep. 1995.

4) Freeman EW et al. “Associations of hormones and menopausal status with depressed mood in women.” Am J Med. 2004.

5) Roehrs T, Roth T. “Alcohol and sleep.” Alcohol Res Health. 2001.

6) Ebrahim IO et al. “Alcohol and sleep I: effects on normal sleep.” Alcohol Clin Exp Res. 2013.

7) Pedersen BK, Febbraio MA. “Muscle as an endocrine organ: focus on myokines.” Nat Rev Endocrinol. 2012.

8) Meeusen R, De Meirleir K. “Exercise and brain neurotransmission.” Sports Med. 1995.

9) Blumenthal JA et al. “Exercise and pharmacotherapy in the treatment of major depressive disorder.” Psychosom Med. 2007.

10) Wyatt JK et al. “Circadian temperature and melatonin rhythms in the sleep–wake cycle.” J Clin Endocrinol Metab. 2006.

11) Chang SM et al. “Effects of chamomile tea on sleep quality.” J Adv Nurs. 2011.

Drake C et al. “Caffeine effects on sleep taken 0, 3, or 6 hours before bedtime.” J Clin Sleep Med. 2013.

12) Kravitz HM, Joffe H. “Sleep during the perimenopause: a SWAN story.” Obstet Gynecol Clin North Am. 2018.

keyword
이전 26화갱년기, ‘덜’ 먹는 게 아니라 ‘잘’ 먹는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