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환자들이 나를 건강하게 만든다

“의사가 먼저 웃으면, 환자도 웃는다.”

by 김보민

진료실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한다. 수십 명의 사람을 만나는 일. 그건 생각보다 감정 소모가 큰 일이다.

누군가는 슬픈 이야기를, 누군가는 억울한 사연을, 또 누군가는 단지 “너무 피곤하다”는 말을 하고 간다.

어떤 날은 헷갈린다. 내가 사람을 보고 있는 건지, 증상을 보고 있는 건지.

가끔은 병이 아니라 ‘마음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일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환자들이 나를 살게 만들 때다.

“선생님, 요즘 살 빠지셨어요?”

진료실에 앉아 있는데, 환자 한 분이 웃으며 건넨다.

“선생님, 더 예뻐지셨어요.”

그 한마디에 자세가 반듯해진다.

“어머, 아니에요~”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이미 팡파레가 울리고 불꽃놀이가 터진다.

그 말 한마디가 내게는 에스프레소 세 잔 분량의 에너지다.


“선생님, 저 요즘 운동해요!”

며칠 전만 해도 “운동이 너무 귀찮다”고 하던 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선생님 말 듣고 걷기 시작했어요. 혈압도 내려가고, 살도 빠졌어요.”

그 말에 속으로는 이미 박수를 치며 외친다.

‘그렇지! 그게 정답이에요!’

겉으로는 차분하게, 전문가처럼 말한다.

“아, 잘하셨어요. 계속 이어가셔야 해요.”하지만 혼자 남은 순간엔 꼭 내 성적표를 받은 것처럼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진료가 끝날 무렵, 조용히 건네는 그 한마디.

“선생님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 말이 나를 다음 날 다시 출근하게 만든다.

진료비보다 더 큰 보상. 진짜 진료비는, 어쩌면 그 말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일은 늘 밝기만 한 건 아니다.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질리듯, 매일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일은 지치는 일이다.

환자들의 얼굴에는 대체로 어둠이 깔려 있다. 그 마음이 이해되기에, 나도 같이 무거워진다.

의사라는 직업은 단순히 병을 보는 일이 아니다. 감정까지 함께 돌보는 일이다. 그래서 더 힘들다.

요즘은 의료도 서비스업처럼 인식된다. 사람들은 병의 치료뿐 아니라, “친절함”을 원한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지만, 하루 수십 명의 환자를 만나며 늘 따뜻한 마음을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다.


나도 결국 사람이다. 한계가 있고, 피로가 쌓인다. 그래서 때로는 ‘이 일의 본질’이 흔들릴 때도 있다.

“나는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인가, 감정을 관리하는 사람인가.”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이 일이 내 마음을 갉아먹기도 하지만,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환자들이라는 사실을.


내가 건강한 말을 하려면, 나 자신도 건강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 더 자제하고, 조금 더 걸으려 하고, 조금 더 잘 먹으려 노력한다.

그들을 위해 건강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건강해지고 있다.

나는 환자에게 건강을 나누고, 환자는 내게 생기를 나눠준다.

그게 내가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다.


『Q. 의사는 누가 건강하게 하나요?

A. 환자가 “살 빠지셨어요~”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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