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물 잡기 02화

물을 잡으면 2

by 호인

시조카 아이가 우리 집에 온 건 이 년 전, 그러니까 재작년 가을이었다. 툭하면 사람을 패고 다니는 시동생이 또 사고를 치고, 동서가 죽는다고 소동을 벌인 때문이었다. 부부가 동시에 일을 저질렀으니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시동생이 말썽을 부릴 때마다 우리 부부는 돈을 대고 동서의 친정 오빠가 수습을 해 왔다. 무슨 조폭 중간 보스 찌끄레기쯤 되는 그는 그런 일에 전문가라고 했다. 나는 내 작업실을 아이에게 내줘야 했다. 전문가라는 분께서 실탄이 부족하다며 일을 질질 끌고 있으니 당분간 나는 거실과 주방을 떠돌며 비즈공예 작업을 해야 할 참이었다.

작업실에서 꺼내 온 비즈 재료들을 거실 탁자에 차곡차곡 정리하는데 현관이 떠들썩해졌다. 조카아이는 큰엄마인 내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냉장고를 벌컥 열어 가지런히 놓인 음료들을 뒤지며 콜라가 없다고 툴툴댔다. 짧은 욕이 추임새처럼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딱 제 아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유기농 주스 병을 꺼내 입을 대고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 그대로 토해 냈다. 남편은 얼굴을 찡그릴 뿐 아무 말 하지 않았고, 한솔이가 사촌 동생을 거실로 데려갔다. 사방에 튄 주스를 닦는데 울 엄만 맨날 그래, 맨날 죽는 척하다가 좀비처럼 살아나, 조카아이가 떠드는 소리에 이어 한솔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실을 뛰어다니던 조카아이가 급기야는 탁자 위의 비즈 재료들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한솔이가 사촌 동생을 붙잡아 겜방 갔다 올게요, 하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한솔이에게 주었다. 몇 장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내 쪽을 돌아보고 멋쩍게 웃었다. 순간 조카애가 어지럽힌 물건들을 정리하려던 생각이 싹 사라져 버렸다. 나는 지갑을 챙겨 들고 저녁거리를 핑계로 집을 나왔다.

그날 마트의 동물병원에는 고양이를 무료 분양한다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남편과 한솔이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짐승을 돌볼 시간에 한솔이 공부를 봐주거나, 비즈 작품을 만들거나, 청소를 한 번 더 하는 게 백번 낫다는 게 내 신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은 남의 새끼가 내 집으로 밀고 들어오는 판에 내 새끼가 원하는 고양이 한 마리 못 키울까, 오기 같은 것이 들었던 거였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털이 제법 긴 흑백의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이름 없는 잡종 유기묘겠지만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다. 분양은 무료지만 예방접종을 하는 조건. 나는 고양이에게 주사를 맞히고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고양이는 내 새끼가 아닌 조카애 차지가 되었다. 한참 신이 났던 조카애가 제 옷이 희고 검은 털로 범벅이 된 걸 깨닫고 고양이를 집어 던진 후에야 한솔이에게 차례가 왔다. 한솔이의 새 티셔츠에도 털이 달라붙었다. 검정색 소파와 흰 쿠션이라고 무사할 리는 없었다. 검은 소파에는 흰 털이, 흰 쿠션에는 검은 털이 엉겨 붙었다. 조카애는 사방에 붙은 털을 뜯어내 바닥에 눈처럼 뿌리며 놀았다. 나는 홧김에 고양이를 사 온 걸 후회했다. 나는 하루 종일 집안 곳곳에서 고양이 털을 떼어내야 했다. 고양이 냄새인지 잘 씻지 않은 조카아이 냄새인지 부지런히 환기를 해도 집안에는 미묘하게 악취가 났다. 평소에는 절대 쓰지 않는 인공방향제까지 뿌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하지만 나만 빼고 모두가 만족했다. 한솔이는 속도 없이 사촌동생이 먹을 콜라를 사 들고 왔고 남편은 한솔이가 외동이라 외롭더니 동생이 와서 신났네, 하며 매일 일찍 집에 왔다.

그렇게 엿새가 지나 동서가 퇴원을 했고, 조카아이는 올 때보다 더 요란하게 현관을 나섰다. 남편은 어린애에게 지폐를 꽤 두둑이 쥐여 주었다. 한솔이도 아끼던 피규어를 선물로 내밀었다. 그걸 본 순간 뱃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었다. 발치에 있던 고양이를 답삭 들어 조카아이에게 내밀었다. 나는 좋은 큰엄마가 되고 더 이상 고양이 털이나 냄새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한솔이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날 퇴근길 남편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한솔이를 위한 선물이었다. 털 날리고 냄새나는 건 질색이라는 나를 생각한 절충안이었는지,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물이 가득 담긴 투명한 비닐봉지가 들어 있고, 그 안에는 빨간 바탕에 흰 무늬가 있는 전형적인 금붕어 세 마리와 눈이 툭 튀어나온 까만 금붕어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마트표 막금붕어, 한 마리 천 원짜리야. 관리는 내가 알아서 할게,


내 눈치를 보는 남편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농담처럼 눙쳤다.


-오올, 싸구려라 잘 살겠네.


남편 말에 의하면 싸구려 금붕어라고 해서 비싼 금붕어보다 더 잘 산다는 법은 없다고 했다. 값이 비싼 것들은 그만큼 선별 과정을 거쳐 값이 매겨진 거고 이렇게 싸게 팔리는 놈들은 질병이나 기형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은 놈들이라나. 초보자인 남편은 그날 저녁 내내 어항에 매달렸다. 수질정화제, 박테리아제, 설명서를 읽어 가며 조심조심 약을 넣었다.


-박테리아를 일부러 넣어?


-물잡이라고,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 깨끗하다고 좋은 게 아니거든.

물고기가 살기 시작하면 배설물에서 여러 가지 독성 물질이 생기는데 그 물질들을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박테리아를 미리 만들어 주어야 물고기가 적응하기 쉽다나.


-대충 살라고 하지, 천 원짜리 금붕어에 약값이 더 들겠네.


남편은 부정하지 않았다. 금붕어들은 열대어처럼 까다롭지 않고 잘 산다고 했다. 남편은 금붕어와 물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통째로 새 어항에 담갔다.


-하지만 물이 갑자기 달라지면 아무리 금붕어라도 충격 먹어. 온도라도 맞춰 줘야지.


그리고 삼십 분 간격으로 봉지의 물을 조금씩 덜어 내고 어항의 물로 바꿔 주다가 마침내 금붕어들을 어항으로 풀어놓았다. 진짜 물잡이 과정은 금붕어를 넣은 이후에 시작되었다. 한동안 어항의 물은 뿌옇게 흐려졌다. 어항을 깨끗이 소독하고 물을 싹 갈아주고 싶었지만 그냥 기다리는 게 낫다고 했다. 물잡이에 필요한 박테리아 종류들이 적당량 번식하는 데 최소한 보름 이상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남편은 어항 관리를 도맡았다. 중간에 몇 마리가 죽는 일은 있었지만 그 후 꽤 오랫동안 금붕어들은 잘 살았다. 남편이 집을 나간 후에도 잘 살던 금붕어가 지난 보름 사이 네 마리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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