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을 들여놓고 반 년쯤 지난 작년 여름, 시동생이 또다시 폭행 사고를 저지르고 잠적해 버렸다. 동서마저 가출했다는 연락을 들은 남편은 식탁에서 일어섰다.
-저녁이나 마저 먹고 가. 그 애 외삼촌이 돌보고 있을 텐데.
남편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서둘러 집을 나갔다.
남편은 세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현관문이 열리고 조카아이가 먼저 들어왔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자기 방에서 공부하던 한솔이가 튀어나왔다. 어, 스테이크, 졸라 맛있어, 조카아이는 한솔이에게 자랑부터 했고 한솔이는 정말? 어디서 먹었어? 속도 없이 장단을 맞췄다. 식탁 위에서 물리지 못하고 세 시간을 기다린 저녁 밥상이 처량해 보였다. 쟤 며칠 있어야 하는데, 웅얼거리면서 남편이 나를 쳐다봤다. 내가 작업실로 쓰는 작은 방을 치워 달라는 뜻이었다. 내가 인상을 쓰든 말든 조카아이는 와우, 금붕어다! 외치면서 어항으로 달려갔다.
-하나 둘 셋 넷, 네 마리네, 저 까만 붕어는 눈깔이 툭 튀어나왔어, 우헤헤.
-출목금이라고 해. 눈이 돌출한 금붕어라는 뜻이지. 우리말로는 툭눈이 금붕어라고……
남편은 기회에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나 본데 설명 같은 걸 들을 아이가 아니었다. 큰아빠 설명충! 하고 버릇없이 말을 막은 후 제멋대로 외쳤다.
-그거 나 할래! 까만 건 나! 빨간 거 세 마리는 큰아빠, 큰엄마, 한솔이 형!
-전에 가져간 고양이는 어떻게 하고 왔니?
나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는 어항을 두드리며 붕어들을 괴롭히느라 내 질문을 듣지 못한 듯했다. 몇 번을 되풀이 물은 끝에 무성의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줙써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줬어요’로 들렸다.
-누구 줬어?
몇 번을 다시 물은 끝에 짜증스러운 반응이 돌아왔다.
-아우, 죽었다고요!
아이는 계속 붕어들을 괴롭히며 어항 주변을 뱅뱅 돌았다.
나는 작업실로 가서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작업대 위에는 구슬 백을 짜던 직조기가 놓여 있었다. 다음 달 아트페어에 내려고 공들여 만드는 작품이었다. 가지런히 날줄이 걸린 직조기에 구슬을 끼운 씨줄이 드나들며 무늬를 짜내고 있었다. 실로 베를 짜듯 잘디잔 구슬을 이용해 직조를 하는 것이다. 비즈 직조는 손이 많이 가고 집중력이 필요해서 대개들 지겨워하지만 나는 좋아한다. 제작 키트를 사서 만드는 것보다 스스로 디자인하고 구슬을 준비해 큰 작품을 만드는 걸 더 좋아한다. 단순 공예가 아닌 예술작품을 만드는 뿌듯함이 좋다. 직조기에 걸린 작품에 반쯤 그려진 연꽃무늬가 내 눈에도 예뻤다. 아쉽지만 할 수 없었다. 직조작품을 식탁에서 하기는 무리였다. 색깔별로 나누어놓은 구슬들을 삼각접시들에 나눠 담고 조심조심 작업대를 구석으로 밀었다. 소파베드를 펼쳐 잠자리를 꾸며주고 한솔이 방에서 작은 잠옷을 가져와 베개 위에 올려놓았다. 지저분한 조카애에게 과분한 잠자리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서슴없이 방으로 쳐들어왔다. 저 작은 책상 위에 있는 건 큰엄마 작품 만드는 거니까, 절대 건드리면 안 돼, 라고 말해주고 방을 나서기도 전에 엄마야, 비명과 함께 우당탕 작업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직조기에 팽팽히 걸려있던 줄 몇 개가 끊어져 구슬들이 스르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재료함도 바닥에 팽개쳐져 색색가지 구슬 수천 개가 떼구루루 끝도 없이 굴러가 방구석 곳곳으로 숨어들었다. 조카애는 아씨발 좆됐다 욕설을 중얼거리며 서 있었다.
구슬들을 쓸어 담아 거실로 나왔다. 한솔이와 조카아이가 함께 떠들다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조용해진 후에도 나는 그 많은 구슬들을 분류하고 있었다. 식탁에서 직경 2 밀리미터짜리 구슬들을 종류별로 모으면서 머리가 띵하고 눈이 뻐근해졌다. 양손으로 눈두덩을 지그시 눌렀다. 두 눈이 단단하게 만져졌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내가 한 마리 출목금이 되는 것 같은 기괴한 상상이 떠올랐다. 그놈의 까만 툭눈이 금붕어가 있는 한 결코 좋아지지 않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조급해졌다.
나는 어항 속으로 손을 넣었다. 두 손이 만들어낸 우묵한 공간을 뜰채처럼 이용해 놈을 떠올렸다. 탁자 위에 올려놓자 펄떡펄떡 튀어 오르며 제풀에 탁자 가장자리로 밀려갔다. 탁자 모서리에서 다시 한번 펄떡 꿈틀거리더니 한순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룻바닥에 누워 입을 뻐끔거리는 금붕어를 주워 다시 탁자에 올려놓았다. 내가 내려다보는 동안 놈은 입을 벌렸다 다물기를 반복했지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놈은 눈을 껌뻑이지도 않고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잠시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다가 섬뜩해졌다. 붕어는 어항으로 나는 침실로 돌아갔다.
-어어, 이거 떴어요. 까만 애, 죽었나 봐.
조카아이가 수선을 떠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눈이 뻑뻑해서 잘 떠지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비비는 손끝에 닿는 안구는 한결 부드러웠고 인공누액을 한 방울 넣자 상쾌해졌다. 머리를 대충 매만지고 거실로 나갔다.
-그러네. 빨간 붕어들 틈에서 까만 애 혼자 살기는 어려운가 보다.
그렇게 말하고 조카애가 보는 앞에서 죽은 금붕어를 건져 변기에 버렸다.
그리고 그날 마트에 가서 금붕어를 일곱 마리 더 샀다. 모두 빨간 놈들로. 조카애는 까만 붕어가 없다고 툴툴거리며 어항을 두드렸다. 남편이 그러면 붕어가 힘들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날 저녁, 어항의 물이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을 어항 앞으로 불렀다.
-어항 한 번 봐 봐.
남편은 침울하게 말했다.
-물이 깨졌어.
-왜 물이 깨졌을까? 어항은 그대론데 붕어가 많아져서 그런 거 아닐까?
내 질문에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튿날 커다란 어항을 사 왔다. 작은 어항은 버렸다. 담겨있던 물을 새 어항에 옮겨 부었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수돗물에는 소독약이 있다고 들은 것 같아 아깝지만 생수를 채워 주었다. 조카아이는 큰 어항 주변을 뱅뱅 돌면서 어항을 두드렸다. 붕어들은 조카아이를 피해 다녔고 한솔이는 어린 사촌 반대편에서 붕어들이 도망쳐 오기를 기다리다가 어항을 두드려댔다.
-저 애 온 후로 한솔이가 난폭해진 것 같지 않아?
대놓고 물어도 남편은 말이 없었다.
-저 애 외삼촌도 있는데 왜 항상 우리가 떠맡아?
목소리를 살짝 높였더니 남편이 웅얼댔다.
-조폭질 하는 인간에게 어린애를 보내야겠어?
어이가 없었다.
-저 애, 그 사람 조카야.
그러자 전혀 뜻밖의 질문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한솔이에게 사람 패고 다니는 폭력배 조카라고 하면 좋겠니?
-당신은 한솔이 아빠가 돼서, 그게 할 말이야!
시동생은 집안의 돌연변이였다. 남편과 형제지간이라고 믿을 수가 없을 정도의 인간 말종이었다. 동서는 한술 더 떴다. 집안에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한 사람이 없이 조폭, 사기꾼, 술집 여자만 수두룩했고, 동서 본인도 그중의 하나였다. 조카아이는 그런 유전자를 받아 그런 환경에서 키워진 그런 부모의 축소판이었지만, 한솔이는 전혀 달랐다. 한솔이는 성실한 부모 아래 청결한 집에서 유기농 건강식으로 키워진, 유전적으로 환경적으로 완벽한 모범생. 조카아이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아이였다. 내가 화를 내자 남편은 쪼그라든 소리로 말했다.
-어린애잖아.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없어?
그 이튿날 아침 어항에는 금붕어가 세 마리나 떠 있었다.
-비싼 생수 넣는다고 되는 게 아니야. 이렇게 갑자기 어항을 바꾸고 물을 갈면 물이 깨져. 금붕어가 견디지 못한다고.
작은 목소리였지만 남편의 말에는 비난이 섞여 있었다. 원칙을 무시하고 새 어항에 털어 넣었으니 아무리 생존력이 강한 금붕어라도 죽는 건 당연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눈을 반짝이는 조카아이를 보자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쳐 돌아서 까만 금붕어에게 하던 짓을 저 아이가 빨간 금붕어들에게 하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어? 고양이가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앤데?
남편은 뜰채로 죽은 금붕어를 건지려 했으나 붕어는 수류를 따라 흐르며 뜰채를 비켜났다. 남편은 몇 번이나 헛손질을 했다. 조카아이가 킥 웃었다. 내가 노려보자 한솔이가 제 사촌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두 아이 모두 고개를 숙였지만 입가를 비죽거리며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