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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Oct 15. 2024

결국엔 후회를 낳는 회피

일요일 아침, 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갔다. 그러나 설교에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음은 자꾸 딴 곳을 헤매로, 설교의 내용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명하니 몽상에 빠져, 시간을 보내며 겨우 설교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설교가 끝난 후, 교회 언니와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신앙 이야기에 닿았지만, 솔직히 나는 그 대화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영적으로 침체된 상태라 나눌 이야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화를 이어가며, 나도 모르게 애써 신앙적으로 충만한 척하려고 노렸했다. 사실 내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는 거룩한척하는 것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가식적인 말들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스스로에게 약간의 현타가 왔다. 이 대화는 결국 나의 내면의 상태와 거리가 있었고, 내 안의 공허함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이 마음 상태가 곧 나에게 적신호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앞에 있는 이 언니는 속일 수 있을지 언정, 하나님은 속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왜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삶을 사는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자신감이 부족했다. 이건 지금까지도 사실이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은 나를 ”착한 애“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건 내가 진짜 착해서가 아니라, 말수가 적고 조용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반에서 유난히 눈에 띄지 않는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장난기 많은 아이들은 가끔 나에게 ”말해봐 “ ”욕해봐 “ 라며 장난을 걸었다.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나 보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말문이 막혔다. 하고 싶은 말이나, 해야 할 말이 있어도 그 말들이 목구멍에서 걸려 나오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후천적인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 이런 것들이 두려운 것을 보면 어린 시절 그 조용했던 나에서 겨우 몇 발자국 움직였을 뿐이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나는 스스로 문을 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적이 거의 없다. 상황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뛰어든 도전들은 있었지만, 내 의지로 선택한 도전은 드물다. 이 성향은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겉으로는 마치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면에는 상처받을까 두려운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패배를 두려워하는 이유도, 그 감정이 나에게 깊은 상처로 남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격당하는 것도 두렵고, 내가 누군가를 공격하는 상황도 무섭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나는 상대방이 원하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조용히 관계를 정리하는 쪽을 택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했다. 그 이별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평화롭게’ 끝났다. 언성도 높아지지 않았고, 얼굴 붉히지도 않았고, 비난도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깨달은 건,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나는 그저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 말라죽어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나는 한 번도 승부수를 던져본 적이 없다. 아마도 이런 성향은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어떤 패배나 비난에도 휘청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방어막을 쳐왔다. 더 후회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그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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