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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Oct 18. 2024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하루 종일 회사 일과 사람들에 시달리다 집에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된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고, 집에 와서도 일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오늘 있었던 일과 내일 해야 할 일을 곱씹다 보면, 내 몸이 회사에 있지 않은 시간에도 마음은 여전히 일에 매여 있는 것이다. 퇴근 후에는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은 쉽게 흘려보내지지 않는다.


그 대부분은 단지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다. 그저 바보처럼 불안해하며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리지만, 사실 이런 고민들은 내 능력치를 드라마틱하게 바꿔주진 않는 듯하다. 오히려 생각의 무게에 짓눌려 점점 더 피로해질 뿐이다. 나는 이 유쾌하지 않은 생각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다.


집에 돌아오면 딱 저녁 먹을 시간이 되는데, 특히 감정이 좋지 않은 날이나 유난히 피곤한 날에는 부모님께 다정한 말을 건네는 게 쉽지 않다. 사랑이 묻어나는 말투나 메시지, 따뜻한 눈빛, 작은 제스처조차도 결국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마치 돈을 벌어오는 내가 부모님 앞에서 유세를 떠는 듯한 모양새다. ‘내가 돈을 벌어오니까, 이 정도 짜증은 받아줘도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얄팍한 마음. 그러나 부모님께서 주무시는 밤이 되면, 홀로 내 방에서 그 순간들을 되돌아보며 후회할 뿐이다. 내가 했던 말들, 내비쳤던 차가운 태도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우리가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훗날 엄마가 매일 싸주던 도시락이 얼마나 그리울지, 부모님과 함께하는 이 당연한 일상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았던 것인지,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진정으로 내가 사실을 알게되는 날이 올까 무섭다. 지금 내 옆에 항상 있던 사람들이 어느 날 사라질까 봐. 사람이 항상 있던 자리에서 그 존재가 사라지고 남은 빈자리가 주는 공허함이 두렵다. 이 일상의 소중함을 지금부터 더 많이 느끼고 싶다, 그들이 내 곁에 있을 때.


요즘 들어 부모님이 많이 쇠하셨다는 게 부쩍 느껴진다. 한때 그분들은 당차고, 건강하고, 빠릿빠릿하고, 총명함의 대명사였는데, 이제는 행동도, 말도, 생각도 느려지셨다. 오늘 아빠와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는 나이가 들면 예전에는 재미있었던 것들이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고 했다. 몸의 건강과 마음은 서로 이어져 있어서,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마음도 따라 무거워진다고. 그래서 요즘 삶이 그다지 즐겁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사람이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슬프다. 그분들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에서 느끼는 변화가 때로는 무력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늙어가는 것이 단지 슬픔만을 의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안에도 어떤 좋은 점이 있었으면 한다. 누군가가 나이 들어가면서 느낄 수 있는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다고 알려주면 좋겠다.


우리는 각자 처음 겪는 나이 듦에 어리둥절할 뿐이라, 어쩌면 아직 ‘익어감’이 주는 좋은 면들 즉 순기능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지금은 알지 못하는 어떤 ‘좋은 점’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그리고 결국 그 좋은 것은 ‘사랑’이어야만 할 것 같다. 그것 말고는 이 고단한 인생을 바꿀 길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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