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머 무지개

by 맑은하늘

비가 온다. 전국을 빨갛게 불태워 전국민의 가슴을 태우던 때도 안 오던 비가 요즘은 참 자주 온다. 화마에 삶의 터전을 잃고 희망을 빼앗긴 많은 이들의 눈물이 비가 되어 전국을 적신다. 그들의 삶에도 곧 비가 걷히고 무지개가 떠서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비는 다양한 추억을 선사한 내 인생의 오랜 친구이다. 어릴 때부터 이사하는 날에 비가 자주 왔다. 큰 방에 싱글 침대 3개를 붙여놓고 언니들하고 같이 자던 백설공주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가던 날은 하필이면 태풍이 왔다. 오늘처럼 기분좋은 이슬비면 좋으련만 장대비를 맞으며 짐들이 사다리차타고 올라갔다. 큰 집으로 이사간다고 새로 장만한 가구들이 비에 덜 젖기를 애타게 바라보시던 부모님이 기억난다.


비가 갑자기 찾아오는 날들은 우리 인생에 참 많다. 학교끝나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릴 때면 친구랑 실내화 주머니로 머리에 떨어지는 비를 막으며 뛰었다. 비때문에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도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비맞고 뛰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참 맑고 순순해서 꺼내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다.


고등학교 때는 야간 자율학습을 하느라 학교에 밤 늦게까지 있었다. 갑자기 비가 오는 날에는 딸이 행여나 비맞을까봐 걱정하시던 부모님께서 학교로 우산을 가져다 주셨다. 학교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딸에게 전하는 부모님의 가장 따뜻한 사랑이었다. 비덕분에 우산 하나에도 사랑과 추억을 꽃피울 수 있어 참 고맙다.


어른이 되어 마주한 비는 차가웠다. 가끔 비바람에 옷이 젖기도 하지만 이제 더는 비를 막아줄 사람이 없다. 차가운 비를 온전히 맞으며 나는 조금씩 한명의 인격체로 성장해간다. 누군가는 비를 안 맞기 위해 평생을 온실 속에서 보내기도 한다. 허나 시간이 지나니 비바람이 바닷물을 섞어 영양을 풍부하게 해주듯이 적당한 시련은 나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비를 그냥 맞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를 받아들이자 이 비도 언젠가는 멈출 것이기에 느긋하게 무지개를 기다리는 여유도 생겼다.


나는 가끔 아이들과 비를 맞는다.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고 밖으로 나와서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어본다. 토독 토도독 토도도독독 때로는 빗소리가 포근해서 잠이 오기도 하고, 노래가 떠오르기도 한다. 아이들은 비가 좋아지면 우산을 집어던지고 빗속으로 뛰어들어 신나게 논다. 옷이 젖을까봐 차마 우산을 놓지 못하는 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부럽다.


어릴 때는 비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왜 커갈 수록 두려워지는 것일까? 머리가 커질 수록 두려움과 걱정이 내 마음 속에도 자라난다. 비맞으면 옷이 다 젖을까봐, 감기걸릴까봐, 찝찝할까봐 등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비맞는 것이 두려워진다. 하지만 이제 이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용기를 내보려 한다. 비가 온 후에 꽃과 식물에 생기가 돌듯이 내 인생도 비가 온 후에 더 단단해지리라. 아름다운 사랑의 향기를 퍼트리는 그날까지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성장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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