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참 이상하다. 어제는 냉장고 속 시원한 수박이 간절했는데 오늘은 차가운 수박에 이가 시리다. 또 어떤 날은 땀이 이마를 흠뻑 적시는데 다음 날은 비가 옷을 적신다. 날씨를 보면 꼭 변덕스러운 내 마음 같아서 어딘가 불편하다. 지난주는 내 삶이 완벽해서 감사가 넘쳤는데 이번 주는 생각 없이 폰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변화무쌍한 날씨만큼 내 마음도 예측불허하다.
나에게 아이들이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무기력하거나 걱정을 한가득 풀어놓고 하나씩 집어 들며 한숨 쉬는 순간들은 언제나 아이들을 데리러 가며 끝이 난다. 아이들과 함께할 때는 마음속에 어둠이 사라지고 행복의 등불이 켜진다.
아이들이 하교 후 그날 있었던 재미있는 일에 대해 재잘거릴 때는 마치 짹짹거리는 참새 같다. 축구에 진심인 첫째가 어제 방과 후 축구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골을 넣었다. 5학년 오빠가 코너킥에서 찬 공이 자기 앞으로 굴러오길래 발로 빵 찼더니 들어갔다고 한다. 그동안 발리슛을 비롯한 기술을 연마하더니 찰나의 순간에 발이 먼저 나갔나 보다. 둘째는 갑자기 영어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무의미했던 암호들이 하나 둘 의미 있는 글자로 다가오니 신기한가 보다. 언니 학교가 끝나기 전에 30분 정도 시간이 남는 요일에는 자기만 간식 사달라며 떼쓰던 아이가 요즘에는 집에 가서 시원한 수박 먹으며 영어책을 편다. 영어라면 질색하던 아이가 맞나 싶다. 이처럼 아이들은 매일 자라고, 달라진다.
나는 우리가 함께하는 순간들을 남기고 싶어 블로그에 기록했었다. 글들을 보면 아이들의 유년시절 추억을 알록달록 칠한 한 폭의 그림 같다. 2년 전에 관둔 게 아쉽지만 아이들도 나중에 이 블로그를 보며 엄마와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나의 하루는 정말 바쁘다.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아이들을 깨운다. 예쁜 치마만 입겠다고 하던 꼬마들은 어느덧 검은색과 흰색 바지만 입겠다는 어린이로 자랐다.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밥상에 앉아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는 아이들에게 "빨리 먹어!"를 한참 동안 외치면 학교에 간다. 모두 집을 나가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바쁜 하루 중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오전이 찾아온다.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빨래 돌리고 아침을 먹은 후 수업에 갈 준비를 한다. 아침에 듣는 수업은 마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잠시 더위를 피해 먹는 시원한 아이스크림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감사하다.
나는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했었다. 이른 출근만큼 빠른 퇴근을 한 후에는 중국어와 운동같이 나를 더 발전시킬만한 것들을 배우러 다녔다. 30여 년간 끝없이 갈고닦은 덕에 내가 원하던 곳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다. 드디어 내가 꿈꾸던 멋진 여성이 되리라는 생각에 들떴을 때 고개를 돌려보니 큰 애가 7살이었다. 내가 목표하는 위치까지 올라가려면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15년 이상을 일해야 할 텐데 아이와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12년밖에 없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매일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루하루 나를 옥죄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사회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에 스스로 그 불을 껐다.
가끔은 사회생활 안 하는 내가 쇼케이스에 진열된 빛바랜 트로피 같다. "진짜 일 안 할 거냐", "아깝지 않냐"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면 가끔 공허함이 나를 집어삼킨다. 이렇게 빨리 관둘 줄 알았다면 무얼 위해 그리 열심히 살았던가! 내가 꿈꾸던 삶을 이루지 못한 패배감에 무너지기 전에 오늘 아침도 나는 집을 나선다. 지금 나에게는 과거를 돌아보며 미련을 갖는 대신 불확실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할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상징하던 든든한 회사를 떠나자 나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학벌, 회사, 직급이 아닌 진짜 내 모습 말이다. 치열하게 자아성찰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알을 깨고 나와 털을 말리는 병아리가 되었다. 세상이 알아주는 '나'말고 내면 깊숙이 있는 '나'를 찾게 된 것이다.
내 마음의 토양에 엄마가 되고 새롭게 생긴 꿈인 그림책 작가라는 씨앗을 심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어린 때로 돌아가 그림을 배우고,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 흙 속에 꼭꼭 숨어있는 씨앗에 수업을 들으며 햇빛을 아낌없이 쬐어주고 있다. 햇빛만 쬐면 씨앗이 메마를 수도 있으니 시간을 내어 혼자 그림을 그려보고 글도 써보며 물을 준다. 아직은 미약한 내 꿈 씨앗이 물과 햇빛만으로는 충분히 성장하지 못할까 봐 내가 지치지 않도록 좋아하는 간식을 내 꿈씨앗에 영양제로 선물한다.
나도 내가 꽃을 피울지 궁금하다. 지금 내 마음이 꽃피우기 알맞은 옥토인지 꽃이 자랄 수 없는 자갈밭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갈밭이어도 괜찮다. 자갈은 골라내고, 물과 영양제를 주며 햇빛도 쬐어주면 다시 비옥해질 수 있으리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이 땅 깊은 곳부터 표면까지 영양이 가득해져서 씨앗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래서 꼭 나만의 향기가 나는 꽃을 피워 아름다운 향기를 세상에 퍼트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