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 원

by 맑은하늘

뭐? 내 월급이 300도 안 된다고? 말도 안 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좋다는 대기업에 왔는데 어떻게 월급이 300도 안 돼? 그렇다. 대기업이라고 해도 신입사원 월급 실수령액이 300을 넘기는 힘들었다. 적어도 내가 신입사원이던 시절에는 말이다.


중학교 음악 시간에 악기 연주 수행평가를 해마다 봤다. 중2 때 수행평가를 준비하려는데 집에서 피아노가 사라졌다. 늘 방구석을 차지하던 듬직한 피아노증발했을리는 만무해서 엄마한테 행방을 여쭤봤다. 수행평가를 2주 앞둔 지금, 엄마는 굳이 그 큰 피아노를 교회에 갖다 주셨다고 했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뭐라도 연주해야 해서 멜로디언을 꺼내 음악 교과서에 있는 곡 하나를 연습했다. 두 옥타브 남짓한 건반으로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소리를 거듭 연습했다. 드디어 평가받는 날에 쑥스럽게 앞에 나가 힘차게 연주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려오는데 선생님이 베토벤을 연주하는 사람도 있는데 누구는 초등학생이 연주할 곡을 친다고 비웃으셨다. 기분이 너무 나빠서 집에 와서 엄마한테 나의 수치감을 쏟아냈다.


엄마도 충격이셨는지 갑자기 오랫동안 쉬던 가야금 레슨을 다시 받으라고 하셨다. 마지못해 10살부터 연을 맺다가 잠시 이별했던 가야금을 깨웠다. 감을 잡자 실력은 껑충껑충 날아올랐다. 이번에는 음악선생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고 다짐하며 가야금 대표 독주곡인 <침향무>를 거듭 연습했다. 맹연습 끝에 대망의 수행평가 날이 다가왔다. 모두 가야금 생김새에 놀라고 처음 듣는 소리에 취했다. 가야금에 매료된 선생님이 학교 축제에서 연주해 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미웠지만 중학교 마지막 축제에 가야금 독주를 한다니 신나서 하겠다고 했다.


계속된 연습에 물집 터진 자리는 스치기만 해도 손끝이 아파왔다. 물집이 생기고 터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내 손가락에도 단단한 굳은살이 겼다. 연습은 생각보다 고됐지만 하고 나면 뿌듯했다. 대학원생 언니, 오빠들이 연주하는 연습실에서 같이 연습도 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검지에 굳은살도 배기고, 일곱 쪽의 <침향무>도 다 외웠으며 어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나는 가야금 장인으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드디어 축제날이 다가왔다. 한복을 입으려는 나에게 선생님이 검은색 목티와 치마를 입고 화려한 목걸이를 차라고 하셨다. 까맣게 차려입은 나에게 엄마가 얼마 전에 여행 갔다 사 오신 진주 목걸이를 채워주셨다.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목걸이가 좋아 보이는데 얼마냐고 물었다. 아무 생각 없는 나는 300만 원이라고 했다. 그 순간부터 아이들이 가야금 말고 300만 원짜리 목걸이 이야기만 했다. 당시에 나는 300만 원이 뭐라고 저리 난리인지 이해 못했다.


중학교 때 나를 빛내준 목걸이가 300만 원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받은 나의 첫 월급이 300만 원도 안 됐다. 어떻게 내 월급이 목걸이보다 적지? 이해가 안 갔다. 대리진급 후에 실수령액이 300만 원을 넘었던 것 같다. 작고 귀여운 월급을 생각하면 짠한데 뉴스를 보면 마음이 싸하다. 집값은 학창 시절 대비 10배 이상 오른 곳이 많다. 반면에 아직도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도 월급 300만 원을 못 받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어둠이 빛을 조용히 삼키듯이 서서히 양극화되는 우리의 미래가 걱정된다. 누군가는 쉽게 소비하는 돈이 누군가는 한 달 내내 일해도 손에 닿지 않는 돈일 수도 있다.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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