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 탁탁 스윽스윽 보글보글보글
1년 365일, 언제나 눈을 뜨면 들리는 소리.
우리 집에는 요리의 신들이 산다. 눈감고도 딱 간을 맞추시는 우리 할머니! 그리고 싱싱한 재료를 구하러 하루 종일 운전해서 직접 사 오실 만큼 요리에 진심인 엄마다. 두 분의 요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한식은 물론이거니와 피자를 반죽부터 소스까지 직접 만드신다. 경단을 집에서 만든다는 말을 들어봤나? 찹쌀로 직접 떡을 찌고 오색의 고물을 입혀 경단도 뚝딱 만드신다. 물론 떡고물의 재료도 직접 공수해서 간 것이다. 지금부터 먹기만 좋아하는 먹보요정과 맛있는 요리를 해줄 때 힘이 나는 요리의 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먹보요정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때부터 할머니 바라기였다. 세상 어디든 할머니랑 같이 갔고 무엇이든 같이 먹었다. 먹보요정은 할머니랑 양푼에 밥과 된장찌개, 고추장, 아기상추를 뜯어 넣고 쓱쓱 비벼 먹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찐 양배추나 호박잎, 또는 상추에 싸 먹는 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할머니표 빨간 오징어채 볶음도, 김치참치볶음도, 장조림도, 궁중 떡볶이도, 감자볶음도, 닭볶음탕도, 멸칫국수도, 모두 완벽했다.
그런 음식의 신한테 먹보요정이 큰 시험에 들게 한 요리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오. 므. 라. 이. 스!" 어디서 맛봤는지 동생하고 무더운 여름날에 할머니한테 오므라이스를 해달라고 떼를 썼다.
"할머니~ 오므라이스 해줘~"
"뭐? 그게 뭐야?"
"달걀이불 덮은 볶음밥~ 볶음밥을 노란 달걀로 덮은 거야~"
"볶음밥을 달걀로 덮어?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봐~"
먹보요정과 동생은 불 앞에 선 할머니 옆에서 빨리해 달라고 계속 재촉했다.
"할머니 아직도 멀었어?"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짜잔! 드디어 요리의 신이 오므라이스를 완성했다. 하지만 그 음식을 보고 먹보요정은 시무룩해져 투덜댔다.
"할머니, 볶음밥이 큰 이불을 덮고 있어야지 왜 각자 덮고 있어~"
"이렇게 하는 게 아니야? 다음에는 크게 해 줄게~"
요리의 신은 한입 크기의 볶음밥에 일일이 달걀이불을 입혀주셨다. 작은 덩어리들을 보며 먹보요정은 입을 삐죽거렸다. 한입 먹어보라는 요리의 신의 성화에 마지못해 한입 먹은 순간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달걀이 입에 가득하자 더 부드러워서 살살 녹았다. 역시 할머니는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이 시대의 진정한 요리의 신이시다. 이때 먹은 오므라이스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미각을 깨우고 미소를 짓게 한다.
명실상부 우리 집 먹보요정인 나도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왜 나는 요리의 신들처럼 요리를 못하는 걸까? 할머니가 끓여주셨던 된장찌개처럼 맛있게 끓이고 싶으나 항상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정체불명의 국물이 된다. 엄마한테 여쭤봐도 맛있게 못 끓여서 지난번에는 직접 끓이는 것을 보여주셨다. 하지만 여전히 나 혼자 끓인 맛은 참담하다. 아이가 다음 주에 친구를 초대한다는데 당장 무슨 요리를 해줄지부터가 걱정이다. 엄마는 딸 생일에 친구들을 초대해 직접 수타면까지 만들어 자장면을 요리해 주셨다. 같은 엄마지만 나는 왜 여전히 먹는 것만 좋아하는 걸까?
요리의 신인 할머니는 또 다른 요리의 신을 낳으셨다. 그리고 먹보요정인 나는 또 다른 먹보요정을 낳았다. 요리의 신들한테 맛있는 음식을 받기만 하고 자기 아이들한테 맛있는 요리를 해주지 못해 먹보요정은 슬프다. 아이들도 나처럼 입맛은 살아있어서 내가 해주는 음식은 생존을 위해 먹는다. 요리에 대한 부담감에 외식을 많이 하지만 아무리 비싼 음식도 요리의 신만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이런 먹보요정들 때문에 요리의 신은 오늘도 주방을 지키신다. 엄마댁에서 밀키트처럼 녹여서 먹게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 먼 길을 달려와 직접 해주시기도 한다. 먹보요정한테 주눅 들지 말라고 따뜻한 말도 듬뿍 담아 주시면서.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달라~ 너는 애들을 잘 키우잖아~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은 없어~ 그러니 가진 것에 감사하면 돼. 그리고 요리는 자꾸 하면 늘어. 맛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