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진이 엄마 축하해요~ 수재고 수석 합격이라니 상진이는 당연히 붙을 줄 알았지만 정말 대단하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우리 아들 상진이는 내 인생의 트로피다. 아빠를 닮아 키가 크고 나를 닮아 얼굴은 작은데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외모에 공부까지 잘하니 아들 생각만 하면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최고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최고대를 가기 위해 부모님은 그들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완벽한 조건 속에 12년 동안 즐겁게 공부했다. 아무 걱정 없이 해맑기만 한 나에게 선생님들은 온실 안의 화초 같다고 했다. 또 어떤 이들은 뇌가 맑아서 좋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은 뜻일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의 권유로 한 남자를 만났다. 아버지가 병원장이시고 아이비리그에서 박사한 남자였다. 완벽한 조건에서 자란 우리는 이만하면 괜찮은 조건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이끈 건지 머리가 이끈 건지 빠르게 빠져들었다. 서로의 괜찮은 방패가 된 우리는 모두의 부러움과 축하 속에 가정을 이뤘다. 결혼 후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기보다는 각자 사회에서 더 빛나는데 몰두했다. 30대에 임원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나는 하루 종일 회사에 관한 것만 머리에 가득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회사 이야기만 나눴고 서로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서로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정말 사랑이 뭔지 알기는 했는지 의문이다.
하루하루를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던 중에 상진이가 태어났다. 꼼지락거리는 아기와 함께하는 매일이 새로웠다. 그 새로움 덕에 하루아침을 싱그럽게 열 수 있었다. 내 삶에 처음으로 온전히 하루를 누리는 쉼표의 시간이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내 미래도 중요했기에 나는 휴직하는 동안 마음에 폭풍이 일고 파도쳤다. 행복과 불안이 뒤엉킨 날들을 보내다 마침내 상진이가 6개월이 됐을 때 복직했다. 나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여유가 어색해서 스스로 버리고 다시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나로 돌아갔다.
상진이는 시간을 먹고 쑥쑥 자랐다. 분유 먹고 내 품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잠든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키가 나만큼 컸다. 부모의 유전자덕인지 지능도 높다. 14개월부터 "엄마 맘마 주세요" 같이 문장으로 말하고 48개월에는 혼자 책도 읽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상진이는 오목조목한 얼굴과 야무진 성격,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는 완벽한 아들로 자랐다. 이런 아들은 나와 남편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어제가 내 생일이었다.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고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곳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다. 남편은 나에게 한국에 단 1개 들어오는 한정판 가방을 선물했다.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옷과 가방을 걸치고 우아하게 앉아 우리는 흠 없는 이야기만 했다. 우리가 사회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 상진이를 짓누르는 학업의 무게 등은 서로에게 꼭꼭 숨긴 채 내 앞에 놓인 접시처럼 완벽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밤을 꽉 채웠다.
남들은 우리를 완벽한 집안의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30대에 임원 되는 꿈도 이루고, 남편과 아들도 있는데 요즘 나는 뭔가 허전하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가장 하기 쉬운 것을 하러 나간다. 내 손끝이 옷에 닿을 때마다 직원들은 입어보라며 아우성이다. 못 이기는 척 어릴 때 하던 인형놀이의 인형이 되어본다. 새로 나온 옷들로 나를 치장하고 거울 앞에 선다.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어도 내 마음을 환하게 밝히지 못한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 의문이 들었다. 그 생각이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나를 잡아 삼키려고 한다. 완벽했던 나의 삶에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 모든 것을 이뤄 기뻐야 할 지금, 나는 왜 슬픈 걸까? 구멍이 생긴 순간으로 돌아가 지우개로 지우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때가 언제일까? 내가 최고대를 갔을 때일까? 아니면 완벽한 조건의 남편을 만났을 때? 어쩌면 상진이를 안고 처음으로 쉼을 누릴 때 나는 계속 쉬어야 했을까? 나를 빛내주던 화려한 수식어가 지금은 쓴웃음만 안긴다. 어쩌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화려한 옷보다 창밖에 흘러내리는 빗물이 나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