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차를 기억하시나요?

by 맑은하늘

"어린이가 커피 마시면 안 돼. 머리 빠져."


엄마는 커피 마실 때마다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차피 나는 커피에 관심도 없는데. 엄마는 다 아는 것 같으면서도 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거무튀튀한 커피 조각이 아니라 영롱한 빛을 내뿜는 프리마다. 프리마가 어찌나 맛있는지 나는 엄마 몰래 괜히 주방에 어슬렁거리며 한 숟갈씩 입에 털어 넣는다. 아! 달콤하고 고소한 이 맛. 오늘도 입에 넣자마자 행복한 미소가 절로 새어난다.


"엄마 아빠 다녀오세요."


엄마랑 아빠가 잠깐 장보러 나가셨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 우리는 그 사이에 물을 팔팔 끓이고 거기에 곱디고운 프리마를 마구 섞어 프리마차를 마실 것이다.


"언니! 나 한 숟갈만 더 넣어 줘."


나는 빛나는 눈으로 언니를 애절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엄마가 안 계실 때 프리마를 원 없이 손으로 찍어 먹고 물에 타먹는다. 이렇게 맛있는 프리마를 엄마는 왜 먹지 말라고 하시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언니가 타준 뜨거운 차를 동생하고 나란히 부엌에 앉아 후후 불며 홀짝홀짝 마신다. 엄마가 나가신지 벌써 15분이 됐다. 우리가 빨리 다 마셔야 언니가 설거지까지 하는데 너무 뜨거워서 큰일이다. 작고 귀여운 입으로 호호 부는 동생을 보며 나는 어서 마시라고 다그친다. 동생이 한모금 마시더니 혓바닥이 데었다고 운다. 나는 얼른 찬물을 주며 동생의 혓바닥을 달래보지만 이미 돋은 혓바늘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프리마차는 나의 추억 속에 지상 최고의 맛이었다. 몇 년 전에 추억의 자판기 우유차가 유행했는데 그 맛도 어릴 적 프리마차를 따라오지 못한다. 프리마차가 진짜 그렇게 맛있던 걸까? 엄마 몰래 언니가 타주던 게 재미있어서였을까? 나는 가끔 추억 여행을 훌쩍 떠나곤 한다. 얼마전에 내가 좋아하는 콩국수집에 오랜만에 갔는데 추억 속의 맛과 내가 느끼는 맛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음식이 변한 걸까? 내 입맛이 변한 걸까?


추억은 판도라의 상자다.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 열어보면 내 기억과 달라 실망을 안긴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야 한다. 추억의 프리마차도 복작복작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영원히 간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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