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수 없던 나

이제는 기다릴 수 있는 나

by 맑은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던 나


대학을 졸업하며 운 좋게도 내가 가고 싶던 회사에 입사했다. 250명의 신입사원 중 한 명이었던 나는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대며 통통 튀는 버터처럼 249명보다 돋보이려고 애썼다. 신입사원 시절에 각 담당별로 임원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직장인 냄새나는 정장을 갖추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부터 신뢰를 줬다. 외적인 것은 합격인 상태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앞으로 더 멋진 일을 해낼 거라는 포부를 당당하게 밝혔다. 발표가 끝난 후 한 팀장님으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회사 생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생각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오래 생각할 수 없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누구든지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질문하신 팀장님을 비롯한 임원분들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았다. 대답을 잘한 것 같아 안도했다. 모두 그 말을 듣고 나는 참 대인배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또한 내가 간장 종지대신 냉면 그릇만큼 넓은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첫발을 내디딘 사회는 냉혹했다. 동기들은 사수가 다 일을 가르쳐주며 매일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에 내 사수는 정시퇴근을 하기 위해 나에게 가르쳐주면 시간이 더 걸리니 혼자 일했다. 동기들은 뭐라도 하는데 혼자 오도카니 앉아서 모니터만 보고 있으려니 민망해서 매일이 곤혹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몇 달은 놀아도 되는데 당시의 나는 너무 조급해서 입사하고 얼마 안 돼 부서 이동을 신청했다. 나에게는 바쁜 사수가 나한테 관심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줄 넉넉한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입사할 때 나는 누구보다 여유 있게 잘 지낼 자신이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아름다운 꽃밭을 가꾸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매일을 초조하게 지냈다. 꽃밭이 될 줄 알았던 비옥한 땅은 가뭄에 메말라갔다.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1분 1초를 허투루 쓰면 그만큼 뒤처진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내 손을 잡아주며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는 기다릴 수 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시간 속에서 많이 부딪히고 배우며 다행히 예전보다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상황이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가면 초조해하기보다는 '다 이유가 있겠지'하며 기다린다. 이제는 더 이상 뒤쳐질까 봐 불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를 키우며 스스로 도태되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젊었던 내가 집에 있는 아기와 씨름하느라 애쓰는 부인을 생각하며 빨리 일을 처리하려던 사수를 기다려줬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영원히 아기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걸 왜 몰랐을까? 그 시절에는 나에게 무관심한 사수가 야속하기만 했었는데 나도 아이를 낳아보니 이해가 간다.


아이를 키우며 조건 없는 사랑, 인내, 배려, 희생을 배우며 내 마음에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희미하게 피어나는 여유가 내 마음 그릇도 조금씩 넓혀줘서 나를 마음이 부자인 사람으로 성장시켜 준다. 나는 오늘도 넉넉한 마음으로 어제보다 여유롭게 하루를 즐길 수 있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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