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철학자가 던진 한마디
부산의 어느 여자중학교 나른한 5교시 <도덕>시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꼬맹이들! 너희들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순간 조용해 지는 교실. 한 학생이 조용히 손을 든다.선생님은 그 아이를 보며 얘기한다. “응, 김무송 발표해봐.”무송이는 담담하게 발표를 한다.
“저는 <행복>을 그림자 라고 생각합니다.” 잠깐 반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있다가 멈춘다.선생님은 다시 질문을 한다. “무송이는 왜 행복이 그림자 라고 생각하니?”무송이는 답을 한다.“행복은 우리 그림자처럼 항상 붙어 있는데 잘보지 않으면, 잘 몰라요.”
처음엔 웃음이 나왔다. 15살 아이가 무슨 철학자인 양 거창하게...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이 꼬마가 던진 말에는 어른들도 놓치고 사는 진리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햇빛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니는 충실한 동반자. 그런데 정작 우리는 언제 자신의 그림자를 의식하며 살까? 아마 바닥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어? 내가 이렇게 생겼나?" 하고 신기해하는 순간 정도일 것이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순간, 좋아하는 음악이 우연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순간, 길에서 만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순간... 이런 소소한 일상이 바로 행복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아, 지금 내가 행복하구나"라고 의식하지 못한다.
대신 우리는 어디서 배웠는지 "미래형 행복론"에 빠져 산다. "대학만 들어가면 행복할 거야", "취업만 하면 행복할 거야", "결혼만 하면 행복할 거야", "집만 사면 행복할 거야"... 마치 행복이 쿠팡에서 주문하면 내일 택배로 도착하는 상품인 것처럼 말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이런 "조건부 행복론"의 천국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면 행복해진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하면 행복할 거야"라는 주문을 외우며 산다. 마치 행복이 보상처럼 주어지는 것인 양.
하지만 정말 웃긴 건, 그 조건들을 달성해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은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행복할 거야"라고 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간 직장인은 "승진해야 행복할 거야"라고 한다. 마치 행복이 당근을 쫓는 당나귀 앞의 당근 같다.
무송이의 그림자 비유가 천재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림자는 우리가 움직이는 곳마다 함께 움직인다. 앞으로 뛰어가도, 뒤로 물러서도, 제자리에서 뱅뱅 돌아도 그림자는 항상 거기 있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미래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그림자가 항상 보이는 건 아니다. 흐린 날엔 희미하고, 실내에선 잘 안 보이고, 밤엔 아예 사라진다. 행복도 그렇다. 힘든 시기엔 잘 안 보이고, 바쁠 땐 놓치기 쉽고, 우울할 땐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림자가 없어진 건 아니듯, 행복도 사라진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의식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의식하는 것. 커피 한 잔의 향, 창밖으로 들리는 새소리, 친구의 안부 메시지... 이런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아, 좋다"라고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
15살 무송이가 깨달은 것을 40, 50이 되어서야 깨닫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가. 행복은 성취의 보상이 아니라 삶의 과정 자체다. 그림자처럼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지만, 고개를 들고 먼 곳만 바라보느라 발밑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오늘 한 번쯤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작은 행복들을 의식해보자. 15살 철학자 무송이가 던진 깨달음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