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행복 방법을 쓰면서 웬 뚱딴지 같이

by 김현정

나만의 행복 기술을 소개하는 것은 나름의 의미를 두고 싶다.

It ended well (잘 끝났다)

의 의미는 결코 아니다.


상처, 아픔, 트라우마의 막이 잘 끝났다. 그런 의미보다는 상처, 아픔, 트라우마를 잘 다스렸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듯하다.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다. 처음은 모든 게 서툴고 실패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오는 시행착오, 실패의 끊임없는 연속적인 반복으로 재탄생한 것이 "잘 다스렸다, 다스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없이 반복된 방법들 그리고 시행착오, 실패의 이유는 왜 그런 일이 생기게 되었는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건과 사건의 연속선상에서 나는 멘붕이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방법을 알 수가 있고, 나 혼자만이라면 또 잘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아닌 남, 타인, 그리고 타인들끼리의 새끼줄 꼬듯이 꼬여 있는 경우라면 결코 쉽지가 않다. 똑바로 다시 원래대로 해놓는 것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려면 함께 깨우치고 함께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인들끼리의 관계선상에서도 해결해야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또 다양한(비슷한 의미의 반복적인 말을 쓰는 이유가 : 정말 반복적인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썼기 때문입니다.) 방법들 그리고 시행착오들, 실패들,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우고 설명하고 달래고 잘해보기로 합의하고 노력해 보고 또 반복하고, 또 노력하고.


그런 세월을 보냈었다. 4년은 결코 짧지 않다. 긴 날이다. 긴 날동안 서로에게 지치고 서로에게 실망하고 서로에게 아픔을 주고 서로에게 상처가 된 세월이었다. 나만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나에게 자신도 트라우마가 있다고 말한 적은 없다. 단지 그는 자신도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사업을 처음 시작한 초청기에. 어떤 상처냐고 물어도 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4년 후, 우리가 좋아지기 시작할 무렵에 자신이 그렇게 나쁜 사람인 줄은 몰랐다고 말한 이후로는 상처,라는 단어를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정확히 그 상처라는 단어는 1년쯤 지났을 때부터 못 들었는 것 같다. 처음으로 들었던 말, 내가 잘못했다,라고 나를 안고서 말을 했었다. 그렇다고 똑같은 반복되는 잘못들을 쉽게 금방 잘라낸 것이 아니었다. 빵처럼 부풀어지기만 했었다. 순간순간 논리적인 근거, 논리적인 반박에 자신이 잘못했음을 시인한 것 같았다. 어떨 때는 피하고 싶어서 잘못했다,라고 말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이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한 것은 두 사람이 초창기에 느꼈던 어떤 서늘한 기운이었다.

"누군가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서로 싸우게 해 놓고, 어떻게 보고 있는 것 같아."

내가 한 말이다.

또 어떤 날, 크게 싸운 날, 남편이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서 출발하기 전에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우리 두 사람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것 같아."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지독하게 싸울 줄은 서로가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잉꼬부부였었다. 자의 반 타의 반 인정이 되었다. 남들은 우리를 잉꼬부부로 알았다.

그런데 그는 왜 그랬을까? 우리는 왜 그랬을까?



우리는 또 신기하고 기이한 부부였었다. 그렇게 싸우고도 밥을 같이 먹고, 차를 같이 마시고, 함께 다니고 어울리고 또 지독하게 싸우고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코뿔소같이 씩, 씩, 대며 싸웠지만 또 손을 잡고 다녔었다.


교회도 같이 다니고 찬송도 같이 부르고 기도도 같이 하고 그랬다. 어느 날 기도 시간 후에 물었다.

"무슨 기도를 했어요."

"당신과 잘 지냈으면 하는 기도를 했어요."

교회에서 기도를 했을 때, 집에서 우리 두 사람이 출근 전에 기도를 했을 때 나는 그의 기도 내용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럴 때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와 잘 지내는 것, 행복하게 지내는 것 그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몇 달 동안 그가 말한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당신의 사랑을 다시 얻는 게 가장 큰 소원이다라는 말이다.


나는 처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처음이라는 말은 소중하고 멋진 말이다. 처음이 있기 때문에 다음이 있는 거다. 처음은 다 새롭다. 첫사랑, 이라는 말을 그래서 좋아한다. 나는 그가 첫사랑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도 내가 첫사랑이라고 늘 말한다. 내가 물었을 때 늘 그는 그렇게 말했다. 믿고 싶은 이야기지만 왠지 나는 그 말이 좋게 들리지만 왠지 그 말이 다 진짜 같지는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유를 골똘히 생각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단지 그 말이 좋고, 그 말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내 자식들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편으로 있다. 누가 그렇게 말했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좀 편해지기는 했지만 남편은 남의 편이 되면 안 된다. 남편은 항상 아내 편이어야 한다. 아내가 틀렸을 때라도 기분 좋게 난, 언제나 당신 편이야, 그렇게 말해주는 게 맞다.


나는 좀 지독한 아픔의 4년을 보냈다. 그래서 그런가, 쉽게 잊혀지지는 않는다. 최근 5개월(3월~7월 중순) 동안은 나는 그 4년을 사실 좀 잊고 살았다. 배우는 데 바빴다. 새로운 걸 배우고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시간을 익히다 보니 그 과거의 아픈 기억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글쓰기를 하면서 생각이 나기 시작했는데, 특히 연재브런치북을 쓰면서 사실 고뇌를 많이 했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 나의 작가정체성(어디까지 노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주관)을 어디까지 노출해야 할까? 남편에 대해서는 어떻게 써야 하나? 지금은 남편과 아무 문제도 없는데 그 과거의 노출로 남편과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나는 남편의 어떤 부분까지는 노출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막연한 "용서에 관한 글", "인간적인 도리"에 관한 글, "종교적인 성찰"의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좀 불편했었다. 사람은 똑같은 상황, 똑같은 아픔을 겪어보지 않으면 그 아픔과 트라우마를 전부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유퀴즈에서 게스트로 나온 박사님이 이런 말을 했었다. 과학적인 논문이었는데 한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그게 뇌로 입력이 되어서 그 큰 사건, 큰 충격이 모든 사물의 기준이 된다고 한다.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뇌에 행복한 기억으로 채워야 그 입력된 기억에서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최근 얼마 전에 우연히 보았는데, 남편은 그때서야 내가 그 사건과 그 말과 행동의 키워드에서 나올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4년 동안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왜 다 그 사건으로 나를 잣대하는 거야."

나한테는 <바로 갈게요>가 중요했었다. 그게 그를 바라보는 잣대였었고, <저, 차 태워주세요. 저, 버스 타고 왔어요>가 세상을 보는 창이었다. <저>라는 말을 여직원이 그렇게 쉽게 사용할 수 있을까? <저>라는 말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나한테는 아직도 그렇다.


나는 지금 트라우마에서 다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 4년 동안에 하루도 한시도 잠깐이라도 순간이라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꿈속에서도 편하지 못한 잠을 잘 때가 더 많았었다. 나는 평생 이 기억의 감옥에서 숨도 못 쉬고 아프게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터득했다.


나는 내 트라우마를 조절하게 되었다. 꺼낼 수도 있고 넣어놓을 수도 있고 내버려둘 수도 있게 되었다. 트라우마가 없었던 그 4년 전의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도 4년이 걸렸다. 그냥 트라우마는 트라우마로 놔두고 싶다. 그 트라우마를 이겨먹은 나로 기억하고 싶다.

keyword
이전 10화그건 그 사람이 나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