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정 Oct 12. 2024

나이의 제한에 막힘에도 추억을 새기려 한다

나이가 주는 무게감, 억눌림, 결코 가볍지가 않다. 

나이가 뭔 대수냐? 마음먹기 나름이지.

큰소리를 이따금 치지만, 사실 나이에 갇히게 될 때가 훨씬 많다. 일단은 체력이 예전 같지가(30대, 40대에 비해서) 않고, 열정이 쉽게 타오르지 않는다. 저절로 되는 열정이 아니다. 억지로 힘을 내려고 짜야만 되는 열정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그런 열정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 좀 그렇다. 


50대는 좀 어정쩡한 것 같다. 40대보다 젊지 않고 에너지가 나지 않고 60대보다는 젊고 힘이 있지만 애매한 나이, 그런 50대를 보내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 경우에는 운이 좋은 것 같다. 지난 4년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해보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아직은 늙는 것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직 70대는, 아직 80대는 훨씬 많이 남았으니까, 실감이 안 나니깐. 그때 가서야 뭘 하고 살지? 고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9월 초에 대구역에 갔었다.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려고 하였지만 사실 내가 앉을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표를 예매하는 창구 앞, 대합실에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합실 중간에 큰 텔레비전이 있었고, 그 앞의 의자들에는 중년 같아 보이는 머리가 희끄무레한 나이가 든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대합실은 유리문으로 차단되어 있고, 적당히 시원했다.) 이른바 노인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역과 이어져 있는 롯데백화점에도 나이가 드신 분들이 더 많이 다녔다. 기차를 기다리는 간이 휴게실에도 어르신 몇 분이 김밥을 먹고 있었다. (그 간이 휴게실도 유리문으로 되어 있고, 안은 시원했다.)


심심한 나머지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나중에는 호기심 반으로 기웃거리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시간이 다 되어서 기차를 타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생각들로 꽉 차서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날 본 장면들이 꽤 오랫동안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남편한테도 이야기했었고, 헤어숍에서도 내 헤어디자이너와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젊은 노인들이 갈 데가 마땅치가 않는 것 같아."라고. 


나는 내가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게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제일 행운이라고 여기는 것은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년 외롭고 아픈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수십 년의 세월을 어떻게 보내야 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10년~15년 정도는 더 오래 사는 것 같았다. 여자 7~8명에, 남자는 1~2명 정도. 좀 그런 비율이었다. 


나이가 들면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침침해진다. 모든 감각이 둔해지고 힘이 빠진다. 그런데 옆에는 자식도 없고 배우자도 없다. 그럴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될까? 나는 추억으로 사는 재미를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움직이기가 어렵고, 마음은 외로움으로 천근만근의 무게를 짊어질지언정 행복한 추억이 있다면 훨씬 덜 고단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사실 많이 했었다. 


그래서 나는 행운이라고 여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으려고 한다. 그리고 덜 후회되게 아직 열정이 남아 있을 때, 아직 꿈꾸는 게 있을 때, 아직 이룰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 그래도 한 번은 꿈을 두드려보려고 한다. 그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꿈을 꾸고 있다.


5월에는 남편이 가자고 해서 복싱 경기장에 갔었다. 남편도 처음이라고 했다. 입구에서부터 복도에서 복싱 연습을 하는 선수들이 보였다. 발스텝이 중요한 것 같았다. 눈앞에서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니 아찔했다. 공격하는 선수, 방어하는 선수, 응원하는 함성 소리 그리고 피가 나는 선수, 풀이 죽은 선수, 자기 차례가 되기 전에 황소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면서 화이팅하는 선수, 모든 것이 신기했다.


현장감이 있었다.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이 재미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경기 장면만 보게 되는데, 역시 현장은 달랐다.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품은 선수가 내려가지 않자 "니 혼자 다 해라!"라는 말도 들렸다. 그리고 그 선수가 식당 휴게실 가는 복도에서 혼자 풀 죽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는데 무척 마음이 안 되었다. 그 선수가 더 잘 싸우는 것 같았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나도 이상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 보니 경기하면서 매겨지는 각 심판들의 점수가 우리들도 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공격만 잘한다고 점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경기 전 여자 권투 선수들의 연습과 준비하는 것들(여자 선수들이 예뻤다. 머리도 길었다. 몸매도 제법 날씬했었다. 그날은 우락부락한 여자 선수가 없었다.)도 보였다. 손에 붕대를 감는 모습이 남아 있다. 여자 선수들의 경기는 남자 선수들에 비해서 보폭도 작았고 움직임도 그다지 날쌔지는 않았다. 나는 예쁜 여자들이 왜 권투를 좋아할까? 내 옆으로 지나가기도 해서 묻고 싶었지만 실례가 되는 것 같아서 물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몹시 궁금했다. 그 위험한 복싱을 왜 좋아할까? 맞으면 아플 텐데.


화이팅! 응원을 많이 했는데, 열심히 잘 싸웠는데 지고 내려온 선수가 아쉬워하면서 지나갈 때 "잘 싸웠어요."

나는 그 선수에게 미소를 보내주었다. 꾸벅,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주면서 옆의 선수에게 "한 달만 더 연습했으면 좋았을 덴테." 하는 말을 하면서 지나갔을 때도 뭔가 좋았었다. 잘 싸운 선수와 말을 한 번 해봤다는 게 좋았을까? 


복싱 경기를 보고 온 그 며칠 후 저녁에, 복싱 영화도 남편과 신나게 보았다. 그 영화는 실화인데, 제목이 지금 안 떠오른다. 영화를 본 그다음 날 아침에 남편과 거실에서 복싱 발 스텝을 흉내 내면서 복싱은 발스텝이 중요해! 그 말을 나는 연신 했다. 복싱기초스텝 영상을 켜놓았는데 남편은 오늘부터 나도 한번 몸짱 만든다! 


그런데 후훗, 작심삼일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그때 그 경기장에서 남편과 함께 응원을 힘껏 했었다. 그런 추억이 좋다. 그런 추억을 생각할 때는 추억이 살아서 나풀거린다. 그런 추억들이 내게는 소중하다. 언젠가 나 혼자 남았을 때(내가 남편보다 더 오래 산다면) "복싱"은 남편과 함께 한 어느 날로 나를 돌아가게 해 줄 것이다. 살짝 미소 짓는 늙은 내가 상상이 된다.

이전 07화 한강 작가의 파급 효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