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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Oct 25. 2024

사랑이 속삭여줘요, 일어나요라고

이게 뭘까?


작은아들이 사놓은 다리를 접었다 펼 수 있는 6명이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직사각형 테이블 위에 수저통 같은 게 2개 있었다. 정 중간에 나란히 잘 놓여 있었다. 거실에 들어오면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나는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열어보았다. 시계였다. 회색과 파란색. 회색줄은 아주 가늘었다. 시계 안은 하얀색, 테두리는 금색이고, 파란색줄은 그 줄보다는 약간 넓지만 일반적인 보통 시계줄에 비해서는 가늘었다. 시계 안은 흑색이고 테두리는 금색이다. 회색줄은 시계테두리가 둥그렇게 되어 있고, 파란색줄은 시계테두리가 각져 있지만 모서리는 곡선으로 부드럽게 되어 있었다. 한눈에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여성적인 이미지가 돋보이는 시계였다. 


아, 하나도 아니고 둘이다. 

남편의 눈은 내 옆에서 나처럼 휘둥그레져 있었다. 남편 거 하나, 내 거 하나가 아니었다. 두 개 다 내 거였다.


나는 손에 차 보았다. 어쩌면 시간도 이미 다 맞추어 놓았다. 내 둘째는 원래 센스가 많았다. 

나는 두 개 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마음이 붕붕 떠올랐다. 


늦은 밤, 둘째가 귀가했다. 

"이게 뭐야?"

손목에 찬 회색시계를 보여주면서 물었다.

"응, 엄마 선물이야."

"두 개 다?"

"응, 두 개 다 엄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별로 안 비싼 거야. 편하게 쓰면 될 것 같아."


이런 횡재가? 남편은 선물이 없다. 나만 있다. 남편한테는 좀 안된 일이지만, 우리 둘째가 엄마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 좋았다. 비교하면 안 되는데, 그때 나는 그랬다.


그때는 2019년 11월 개원하고 한 일 년쯤 지났을 때였다. 둘째가 대학 4학년 때 겨울이었던 것 같다. 우리 둘째는 별로 돈이 안 들었다. 대학 학자금도 용돈도 둘째는 알아서 했다. 그래도 나는 엄마로서 돈이 들어가는 첫째와 똑같이 용돈을 주었다. 첫째는 근교의 도시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이유로 교통비를 포함해서 조금 더 얹어주었다. 큰애와 달리 작은애는 돈을 규모 있게 쓰고, 돈을 잘 모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써야 할 자리는 잘 썼었다.


남편은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그런 남편에게 둘째가 말했다.

"아빠, 택배로 뭐 시켰어요. 청소기 두 개 올 거예요."

오잉, 이게 무슨 말이지? 둘째가 무선 청소기, 유선 청소기를 주문했다고 한다.

"아빠, 청소 열심히 하라고요."

오잉, 이게 무슨 말일까? 엄마가 집에 있는 청소기는 너무 무거워서 돌리는 게 힘들다고 하니, 아빠가 유선 청소기와 무선 청소기를 교대로 잘 사용하여서 쓰라고 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출근을 하고, 일을 해야 하니 청소하고 집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다. 없었다. 사업을 하고부터 점점 집이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잘 정돈되고 정리된 집이 점점 난장판이 되어갔다. 사업 때문에 우울해지고 피폐해지고 화가 나고 싸움이 잦아질 때 둘째가 한탄하던 내 말을 들었다.

"집이 점점 엉망이 돼 가고 있어."

"원래 집이 더러웠어."

남편은 사실과 다른 말로 우겨됐다. 화가 치밀었다. 또 말이 험악해지고 다투게 되었다. 

"언제 그랬어? 집이."


둘째가 대청소하듯이 집을 말갛게 쓸고 닦고 욕실까지 호텔 청소하듯이 깨끗이 해놓고는 말했다.

"엄마, 청소 다 해놨어. 집이 깨끗해."

어떤 날은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것 해놨어."

둘째는 야무지게 썰기도 잘했고, 요리도 잘했었다. 

"아빠는 뭐 먹고 싶어요."

남편이 대답을 하자마자 둘째는 툭탁 빠르게 솜씨를 발휘했다.

그런 우리 둘째에게 나는 둘째가 기대한 것과는 달리 기뻐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 너무 우울해있었다. 아마 둘째는 점점 상심이 커졌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우울만큼 괴로움만큼 커져 갔을 것 같다. 


자꾸 울먹이고 있는 나에게, 자꾸 우는 나에게 둘째는

"엄마, 할머니 집에 며칠 가 있다가 올래요?"

그렇게 내 마음을 달래려고 했었다.

"아니, 할머니까지 힘들게 안 하고 싶어."


또, 어떤 날은 퇴근했을 때 소파에 큰 종이가방이 있었다. 

베이지색 원피스였다. 어깨가 살짝 둥글려져 있고 팔꿈치 바로 위까지 아치처럼 내려오는, 허리에는 이탈리아 여자같이 보이는 벨트가 있는 너무나 마음에 드는 원피스였다.

"엄마, 입어보세요. 옷을 잘 입는 친구 둘이나 같이 가서 2시간이나 계속해서 돌았어요. 그러다가 이 옷이 눈에 들어왔어요. 엄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입어보니, 얼굴이 환해 보이고 나에게 너무 잘 어울렸었다. 그 여름에 그 원피스를 입고 가서 둘째가 사주었다는 자랑을 했었다. 직원들이 부러워했었다. 그리고 가을이 되자, 이번에는 블랙트렌치코트가 소파에 있었다. 엄마한테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만 있어서 엄마한테 없는 거로 샀다고 했다.


그런 둘째 사랑을 먹고, 나는 그 우울하고 암담했었던 2년을 견뎠다. 아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경기도로 직장을 구해서 독립을 했다. 나는 한쪽이 허전했었다. 그리고 둘째한테 마음의 짐을 주기가 싫어서 점점 전화를 안 하게 되었다. 아들이 편안히 생활하기를 바랐다. 아들은 엄마가 걱정되어 2주에 한 번씩 내려와서 저녁을 같이 먹고 다음날 오후에 올라가고 했었다. 


아들 목소리가 갑자기 듣고 싶어 아들이 출근하기 전에 전화를 했을 때 나중에 들었는데 큰애가 그런 말을 했었다.

"형, 무슨 일 있어? 엄마가 아침에 전화를 했어. 엄마한테 무슨 일 있어? 아빠가 또 엄마 힘들게 했어?"

내 걱정을 늘 했었나 보다. 경기도로 올라가기 전에는 나를 꼭 안아주고 

"엄마, 행복하게 될 거야."

"응, 나 행복해. 걱정하지마."

웃어주었다. 그리고 아들을 배웅했다. 아들은 나를 한 번 더 뒤돌아보았다. 고마웠던 아들.


그런 사랑을 준 우리 둘째에게 이제는 아들이 힘들어할 때 나는 응원과 격려의 문자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참 다행이다. 이제는 둘째에게 내가 응원과 격려를 보낼 수 있는 만큼 되어서, 내 안이 자라나게 되어서. 내 속에서 나올 수 있을 만큼 되어서, 참 다행이다.


둘째가 보고 싶다. 경기도로 올라간 지 이제 3년째다. 자주 보지 못한다. 같이 살고 있지 않으니, 또 아들은 크고 나니 말이 별로 없어진다.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른다. 그냥 잘 있다고 한다. 아들들은 크니 아빠하고 더 대화를 많이 한다. 속에 있는 생각도 아빠하고 더 잘하는 것 같다. 때로는 서운할 때도 있고 때로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남편 옆에 아들이 둘이나, 든든하게 있어서, 나는 그런 아들 둘이나 당신 옆에 준 여자다, 라면서 큰소리를 때때로 한다. 남편은 아무말이 없다. 인정할 때는 대꾸를 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까지 둘이 한 번도 말다툼도 싸움도 하지 않았다. 나는 늘 아이들을 똑같이 공평하게 대하려고 했었다. 이 말을 들으면 거짓말인 줄 안다. 흔치 않은 일이어서. 우애가 좋다. 내게는 큰 복이다.) 


살가운 딸을 하나 더 낳았더라면 내 공부를 덜하고 내 꿈을 덜 꾸고 딸을 하나 낳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가끔 들 때가 있다. 부질없는 아쉬움이지만. 내 아들들이 잘 자라주었지만, 딸이 좋아 보일 때가 있다. 딸만 있는 사람들은 아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딸처럼 살가울 때도 많고 아들이어서 딸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둘째가 오늘따라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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