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똑한 여자, 영리한 여자, 자기 의견을 말하는 여자, 당돌한 여자
두 눈이 서로 응시했다. 대각선 방향으로 앉아서 마주 보고 있는 그와 그녀, 그의 눈에도 그녀의 눈에도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녀의 일기를 다 읽은 그,
그가 다 읽을 동안 숨죽이면서 기다린 그녀,
그의 저음의 목소리, 비밀을 말하는 듯,
"이거는 일기를 쓴 거로."
그만의 방식으로, 그는 대답을 한다. 딱, 꼬집어서 '거절' 뉘앙스가 없는, 단지 어떤 이유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러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그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는 그녀의 일기를 읽은 남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는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이 응시한다. 그녀도 부끄럽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그를 응시한다.
"똑똑한 여자."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녀가 듣고 싶었던 말, 그녀의 두 눈동자가 그에게 집중한다. 그의 대답을 들은 그녀의 두 눈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온 얼굴로 맞다, 그게 답이다, 답을 맞혔다는 표정으로, 고개까지 끄덕였다.
그녀의 피드백, 그도 맞춘 게 기쁜 듯이 곧 이어서
"영리한 여자."
그녀는 또 기뻤다. 그녀가 추구하는 말들이 또 이어서 나와서,
이번에는 아주 낮게 조심스럽다는 듯이, 그녀의 일기를 읽어 봤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도,
"자기 의견을 말하는 여자."
이번에도 그녀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다. 그러나 제일 강도가 낮게 말한다. 아주 낮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면서 말한다.
"당돌한 여자!"
다 맞추었다. 그녀가 다 듣고 싶었던 말이다.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의 시선이 떨어지는 곳, 바로 그곳은 입술이었다. 웃고 있는 그녀의 입술로, 그의 시선이 옮겨졌을 때, 그녀는 그의 시선이 따가워서 그리고 또 좋아서 손으로 그녀의 입술을 가리면서도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눈가까지 웃고 있었다.
부끄럽다, 보지 말아요.
그녀가 그녀의 미술 도구와 가방을 챙기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그녀의 동작, 그녀의 입술에 시선이 얹혀 있었다.
"똑똑한 여자, 영리한 여자, 자기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여자, 당돌한 여자"
그가 그녀에 대해서 평가한 말들,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듣고 싶었던 그녀의 본질이었다. 그라는 남자는 어떻게 단숨에 그녀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단 말인가. 그녀가 듣고 싶었던 지적인 여자의 본체. 그녀가 추구하는 세계, 그녀 삶의 방향성을 그는 어떻게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단 말인가.
그의 욕망은 모르겠다. 어째서 '과외 수업'이라는 공적 장치에서 사적인 감정을 그렇게 흘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순전히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플러팅에서 시작된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문학적 탐색에서 피어난 감정이었고, 그 감정은 그의 감정 호흡에 의해 효모의 발효처럼, 치즈처럼, 그렇게 서서히 부풀어져 갔다. 언제 그만큼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문학적 분석, 맞다, 그 인물에 대한, 말과 행동을 분석해 가면서 그녀의 감정의 온도도 함께 올라갔다. 그것이 정확하다.
그의 중국 여행, 혼자 간다고 했다. 혼자 가니까 카톡을 해도 된다고 말하는 그.
"괜찮아, 나 혼자 가. 카톡 해도 돼."
"나도 리프레시를 해야지."
왜? 그가 말하는 톤은, 과외 선생님 같지가 않을까. 너와 나, 왜 그렇게 느껴질까? 뭔가 그와 내게 있는 이 미묘한 분위기는 뭘까? 왜 이런 자기장이 생긴 걸까. 안개를 걷는 이 기분, 뭐라고 꼬집어서 딱, 집어서는 말할 수 없는 이 분위기, 왜 생긴 걸까? 나의 착각인가?
그도 이런 말을 물은 적이 있다.
"왜, 수업이 끝나도, 우리는 더 남아서 이야기를 하게 돼지. 보통은 끝나면 딱 일어나고 가는데."
나는, 또 이렇게 답했지.
"왜, 안 가지? 내 이야기가 재미있나?"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카톡을 하지는 않으리라. 카톡 때문에 그와 내가 이런 미묘한 분위기가 된 것 같다. 카톡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가깝게 되지는 않으리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그와 나는 수업이라는 매개체 안에서 연애를 하는 느낌일까? 그와 수업을 한 지, 불과 얼마 되지는 않았다. 겨우 한 달 조금 넘었을 뿐이다. 미술 수업 4번, 영어 수업 4번 그리고 이번 달, 9번째? 아니 10번째? 어째서 이런 속도가 된 걸까? 그와 내가 말하는 것들은 문학적인 부분, 음악적인 부분, 예술적인 부분, 철학적인 부분인데, 왜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는가?
그가 중국 여행 가기 전, 수업하는 날, 대화가 문뜩 떠올려졌다. 새벽 일찍 일어난 그녀는 지금, 아델의 "Someone like you"를 들으면서 영어 가사를 노트에 적고 있다.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가 중국 여행 가서 수업을 못하고 있는 이럴 때, 좀 더 영어 공부를 혼자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새벽 열정을 쏟고 있다.
어떤 남자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이 그 앞에서만 생긴다. 왜일까? 그 남자가 거대한 산처럼 다가온다. 앉아 있는 그 남자의 몸 전체가 언어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 남자의 말뿐만 아니라, 눈빛, 미소, 얼굴 전체에서 흐르는 따뜻한 느낌, 그의 온기, 그의 몸 전체가 그녀에게는 언어다. 그의 눈빛, 따뜻한 깊은 눈빛, 그의 시선, 그의 몸 전체가 말하는 그것, 그것이 그녀를 긴장하게 만드는 건가? 왜 그 앞에서는 긴장을 하게 되는 걸까?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의 손이 그녀의 얼굴, 뺨을 가리킨다.
"뺨 밑에 그늘이 져 있다. 음영을 이렇게 넣으면 되겠다."
"아, 보지 말아요."
그녀는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이러니까 - , 미술을 한 사람이어서, - 관찰력이 좋으니까."
"선생님 앞에서는 긴장이 돼요."
그녀는 그에게 망설이는 법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느낌,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과감했다. 그런데 그녀가 다른 사람들, 즉 타인들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다. 솔직히 그에게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녀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게 된다. 왜, 그럴까? 그가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어서, 예술을 안다고 생각해서? 왜? 긴장이 되면서도,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이 묘하고 이상하다. 잘 모르겠다.
그녀는 대체로 그녀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 편이다. 주로 말이 없다. 그녀 주변의 지인의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신비롭다. 조용하고 차분하다. 안정감을 준다. 라틴라인댄스에서 6개월 이상 보고 있는 50대 초반인 아주 멋진 외모를 가진 해경 선생님, 그녀의 말은,
"선생님은 신비로워요. 세련되고 매력이 넘쳐요. 선생님은 이런 머그컵이 어울려요."
그녀가 고른 태양과 별, 달이 다채롭게 그려진 머그컵, 그녀가 좋아하는 금빛과 푸른빛이 어울려진 긴 머그컵, 영국 본차이나 그릇을 보러 세 사람이 백화점에 왔을 때, 그녀는 이런 평을 들었다.
"선생님은 이런 커피잔이 어울려요. 핑크빛이 도는, 아!, 이런 노란빛도 선생님한테는 어울려요. 사랑스럽고 귀여워요."
"선생님하고 있으면 나는 안정감을 느껴요. 나는 텐션이 높은데, 선생님은 차분하니까요."
최근에 가깝게 지내고 있는 그녀의 소중한 친구가 된, 11살 나이 차이가 나도 찰떡같은 티키타카의 친구 지혜선생님이 말한 그녀에 대한 평가.
한 사람은 신비롭다. 매력 있다.
또 한 사람은 조용하고 차분하다. 안정감이 있다.
그에게는 그녀 본연의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앞에서는. 어째서 그럴까?
그녀의 평은 그가 말한 것도 있고, 그녀와 함께 라틴라인댄스를 추는 동료, 친구들의 평도 있고 - 그녀는 카멜레온일까?
자욱한 연기가 흐르는 듯한 영화 속 세트장 같다. A 커피숍의 소음 때문에 그의 낮은 중저음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그 카페의 공간 때문에 집중이 안 되었다. 그녀는 다음 주 수업의 몰입도를 위해 그에게 커리큘럼을 보냈다. 그녀는 국어언어논술강사로 인정을 받았는데, 그 첫 번째 근거는 계획성 있는 커리큘럼이 있었고, 그 커리큘럼은 단계성과 체계성, 그리고 지속성을 갖춘 계획이었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 근거는 수업의 몰입도와 강의 능력 그리고 세 번째 근거는 사후관리에 대한 철저한 피드백에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그것을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그의 실력을 믿고 그녀가 원하는 커리큘럼을 보냈다.
나는 수업을 이렇게 하고 싶다.
4월이 지나갔다. 5월에도 이렇게 헐렁한 수업을 한다면 1:1 개인과외를 하는 의미가 없다. 그녀는 고심 끝에 그에게 그녀가 받고 싶은 수업 커리큘럼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요청, 아니 요구를 하기로 결심했다.
나의 효율적인 수업 방식, 내가 받고 싶은 수업 방식에 대해서 카톡 보냅니다.
고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수업 ; 5월 ; B 커피숍에서
:: 주소 ;; 지번 ; ○○동 ○○○ (05○ㅡ○○○ㅡ○○○○)
1. 50분 수업 ㅡ 독해력 (오만과 편견(영화 대본 중 일부분 또는 소설의 한 부분) 스크립트 30분, 실용회화문 스크립트 20분 준비 ; 노트북 화면이 아닌 서면 자료로 13~15포인트로 준비하기)
*** 각자의 스크립트를 보면서 ○○선생님이 읽고, 독해하는 방식 보여주고, 그다음 문장은 내가 읽고 독해하고 ;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부분 설명해 주고 훈련시켜 주기 (지적할 부분 있으면 해 주기)
2. 10분 휴식 ㅡ
3. 60분 수업 ㅡ
ㆍ40분 ; 문법 공부 (영작, 회화에 필요한 부분 ; 시제 활용부터 합시다. ; 서면 자료 준비해 오기. 1~3장 정도 ; 수업 시간에 그 자료에 내가 영작해서 쓰고, 내가 읽어보면 ○○선생님이 수정도 해주고 억양, 발음 교정해 주고, 훈련해 준다.)
ㆍ10분 ; 프리토킹
ㆍ10분 ; 내가 써 온 영작문 교정해 주기
*** 미술수업 ; ○○선생님 방식대로 진행
^^ 월 ㅡ 미술수업 ; 11시 시작
^^ 금 ㅡ 영어수업 ; 10시 시작
ㅡ 10시 50분~10시 55분 만남 ; 인사
ㅡ 09시 50분~09시 55분 만남 ; 인사
(인사할 때 ; 오늘 수업 방향, 목표, 무엇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짚어주기)
*** 선생님이 항상 미안해하시니까
^^ 미술 수업 음료 준비 ㅡ 내가,
^^ 영어 수업 음료 준비 ㅡ ○○선생님이,
(같은 공간에서 각자 알아서 자기 거 계산 ; 한국 방식과는 맞지 않은 것 같아요. 우선은 그런 방식은 내가 좀 불편해요.)
;;; 수업 장소 ㅡ B 커피숍에서 해보고, 문제점이 있으면 다른 장소 조율합시다.
현재 A 커피숍 ; 음악 소리, 환경(잡음들) ; 집중이 잘 안 됩니다. 의자에서 앉아 있는 자세도 아주 불편합니다.
팝송 스크립트 ㅡ 에드 시런 곡으로 ; 서면 자료 준비, 부탁드립니다.
화면 띄우는 방식 ㅡ 잘 안 보입니다. 글자 크기, 빛에 따라 잘 안 보입니다.
집중이 안 돼요.
줄 간격은 160% 맞춰 주세요. 나한테는 그게 잘 보여서 집중이 잘 됩니다.
그가 먼저 와서 차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성격 나오더라."
그녀의 계획적인 삶, 공부하는 루틴을 이해했는 것 같았다. 노란 머그잔에 담긴 그가 준비한 차를 보면서 이 아침의 행복한 편안함을 느끼고 있을 때,
"아직도 소녀 감성이 남아 있어요."
그녀는 그의 생각지도 못한 칭찬을 들으면서 ; 좋으면서도 뜻밖이어서
"아, 사람들이 좀 그렇게 얘기를 해요. 남자든, 여자든."
그녀가 부끄러워 하자, 그가 이어서 그녀가 오해를 하지 않도록 말을 덧붙인다.
"좋은 쪽으로요."
"오늘은 아침부터 왜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을 하는 거지."
그녀는 얼굴을 가린다. 그는 그녀의 행복한 얼굴을 보고, 이어서 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키이라 나이틀리를 닮았다."
아니, 키이라 나이틀리를, 그녀가 아주 좋아하는 여배우다. 기품 있고, 지적이고, 강인하고ㅡ 독립된 자아를 가진 여성. 그녀는 너무나 기뻤다. 키이라 나이틀리에 비유하다니!
"아, 키이라 나이틀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이예요."
"나랑 나이가 똑같더라고요. 41살. 주말에 계속해서 '오만과 편견' 영화를 봤어요."
"아, 그래요. 나도 주말에 계속해서 '오만과 편견' 봤는데."
내가 생각하는 수업, 내가 생각하고 있는, '오만과 편견' 그가 신경을 꽤 많이 썼다. 괜히 기분이 더 좋아진다. 그가 나를 많이 생각하고 있었구나.
내가 그에게 소년의 끌림을 느꼈듯, 그도 내게서 소녀의 끌림을 느꼈나 보다. 그와 난, 서로가 서로에게 소년이었고, 소녀였나 보다. 그와 난, 58세, 41세의 남녀가 아니었고, 그와 난, 그저 소년과 소녀였나 보다. 그래서 순수했나 보다. 서로의 내면을 보았나 보다. 남아 있는 청춘의 잔향, 청춘의 색을 보았나 보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단숨에 말했다.
"난,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가 아니에요."
"난, 피카소가 만났던 그런 여자가 아니에요."
프리다 칼로, 자신을 불살랐던 화가.
피카소가 만났던 그런 시시한 여자들, 피카소의 사랑에 목매여서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그녀들,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제니처럼 현대적인 여성이었다. 독립된 자아, 독립된 개체, 독립된 자신만의 삶을 그리고 자유를, 당당함을 사랑하는 여자, 바로 그런 꿋꿋한 여자였던 것이다. 내면에서 강하게 빛나는 여자.
그날은 꽤 밀도 있는 미술 수업을 한 것 같다. 그녀가 준비한, 한 장의 그림 덕분이랄까.
"난, 분위기 있는 여자가 좋아."
"참, 분위기 있지. 매혹적이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은 표정. 손끝도 정말 신기해. 어떻게 이렇게 했지?"
"화가가 연출한 것 같아요."
제임스 티소의 '보트를 타고 있는 젊은 여인'을 그리고 싶다는 그녀, 아직은 이런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려울 텐데, 걱정하면서도, 그녀를 위해 가르쳐주려고 하는 그, 맨날 이것하고 싶다. 저것 하고 싶다면서 자신의 수업을 구상하는 그녀를 걱정 반, 타이름 반, 꾸중 반으로 점잖게 기분 나쁘지 않게 혼내고 있는 그,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를 위해 검색을 하고, 그녀를 위해 가르치고 있는 그. 그의 말에는 단호함도 있고 부드러움도 있고 따스함도 있다. 그런 그에게는 남자의 향기,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안정감과 평온함이 있다.
그 이유는 그녀의 남편과는 다른 점이 너무나 많았다. 오랫동안 그녀가 그녀의 남편에게 자세히, 구체적으로 말한 부분이 있다. 간단히 "네"라고만 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점을 이야기해라. 그래야 알아듣고 이해하죠. 의뭉스럽게 앉아 있는,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그래서 답답함에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남편과는 다른 그. 대화에서 불안감을 주는 남편과는 달리 그와의 대화에서 그녀는 안정감을 느꼈다.
그는 자세하다. 구체적이다. 그는 자신의 의견, 생각을 표현한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까? 불안에 떨 필요도 없고 불확실성에 초조해할 필요도 없다. 질문을 잘하는 그, 대답을 잘하는 그, 그와의 대화는 핑퐁 같다. 의지를 갖고, 참고 애쓰면서, 대화를 이어가려고 꾹 참으면서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원하는 대화법, 눈을 보고, 온몸을 다해 집중해서 말하는 대화법, 그리고 편하게 물어보고, 대답하고, 생각해 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대화법, 유유히 흘러가는 대화법, 그의 강점이다. 그녀가 남자에게 원하는 대화법, 그가 갖고 있다. 그녀에게 그녀가 가장 원하고 있었던 '안정감'을 주는 이 남자, 대화에서 전혀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는 이 남자, 그런데 그녀는 기혼자이고, 17살 나이차가 나고, 이 남자는 과외 선생님, 나는 수강생, 이 남자와 앞으로 어떤 관계로 규정을 만들어 가야 하나? 어떻게 관계가 흘러갈까? 그녀는 큰 숙제 앞에서 고심이 깊어지는 것 같았다. 얼마 되지도 않은 기간 동안인데도 그녀는 이 남자 앞에서는 긴장도 하면서도 그녀의 내면 깊숙이 있는 그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감 없이 나온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 앞에서는. 25살 이전의 순수했었던 본연의 모습으로 서게 된다.
그녀의 내면을, 그녀 자신도 들여다보게 된다. 그녀의 남편도 보지 못했던 그녀의 아름다움을, 내면을 그는 이야기해 준다. 어느 날 그가 빛으로 와서 그녀를 빛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들으면서 젊은 날의 낭만을 찾게 되었던 그녀, 소녀 시절에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설렘과 연애에 대해 생각했었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그녀 내면의 다채로움이 표현되게끔 하는 그. 41살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그를 분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기심? 흥미? '그'라는 사람은 소설 속 인물로 매력적이다. 매혹적이다.
"오늘은, 꼭, 고등학생 같다. 나를 만나기 전에, 당신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세모 머리, 그녀의 베이지색 스트라이프 티셔츠, 발목까지 오는 청바지 차림, 경쾌한 느낌을 보고 탄복하는 그녀의 남편, 베트남 여행을 위해서 남편의 옷을 사기 위해, 오늘은 그들이 잘 가는 아웃렛에 가려고 한다. 남편이 요즘은 표현이 풍부해졌다. 남편은 변했다. 전보다 표현을 많이 하고, 또 자세히 말한다. 신기하다. 기분이 좋다.
그와 영작 카톡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남편은,
"나랑, 놀자. 카톡, 그만해."
"나도 영어 배워야겠다."
왜? 남편은 그를 의식할까? 그가 41살이라서, 나하고는 나이차가 17살 나는데, 그는 과외 선생인데 _
그와 처음 공부했었던 팝송, "When I dream" 이 생각난다. 한 때, 그녀가 많이 들었던, 아침부터 들었던 그 팝송. 아침부터 거실에서 흘러 넘쳐흐르던 그 팝송, 지금은 듣지 않고 있다. 오묘한 그 구절이, 그와 그녀를 만든 것 같아서. 그리고 지금은 그를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힘들어서, 멀리 하게 된 팝송. "When I dream" ---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 그때, 그 순간은,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추억의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렷이 각인된, 어떤 누군가가 나를 제대로 봐준, 나의 외양만이 아닌, 나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봐준, 그러나 그날조차도, 가슴이 에이는 건, 왜일까? 그날의 그는 베이지색 잠바에 베이지색 라운드 니트, 블랙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크림색의 카라가 있는 라운드 니트, 연그레이 색상의 트위드 미디 H형 스커트, 살구빛과 연한 오렌지 색상의 중간 정도 되는 아사 카디건, 밑단과 손목둘레, 깊게 파인 목선둘레에는 연한 오렌지 색상의 손뜨개질 레이스가 있는 카디건, 샤넬 느낌이 나는 낮은 굽의 화이트 메리제인 구두. 그날, 그녀는 올림머리를 했었다. 베이비핑크 중간 크기의 집게 핀으로 한 번만 살짝 틀어 올려, 그녀의 긴 구불한 머리카락을 조금은 늘어뜨린 올림머리. 사실 주변 평가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헤어 스타일은 올림머리였다.
그날 단 하루만 그녀는 올림머리를 했었는데, 꽤 고전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아주 말랐었다.
* 소설에게 이 기억을 전하니, 그녀의 기억 속에서는 - 이 기억이 온전히 사라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