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내 마음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기혐오, 질투, 수치심, 그리고 남들과의 비교.
이런 감정들이 많았던 나는
요즘은 그 감정들을 비교적 내려놓고 살아간다.
20대 때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진
왜 그렇게 내 인생이 형편없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나만 운이 없는 사람 같았고,
세상 모든 게 부러웠으며,
나는 하나도 가지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받아들이기엔 내가 받은 자원이 너무 없다는 생각에 억울했고,
그렇다고 그냥 살아내기엔
삶 자체가 벌처럼 따갑고 쓰라려서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그 당시에 내 내면은
어디서부터 복구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파괴된 공허 같았다.
사실 지금도 “저는 이렇게 극복했어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비결이나 방법은 없다.
그냥 살아내다 보니
조금씩 나아졌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가장 힘들던 시기에 어딘가에서 읽었던 문장 하나가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는 거다.
“인생은 파도여서, 가장 아래로 내려가야 다시 올라갈 수 있다.”
이 문장이 있어서,
내 인생이 바닥 같았을 때도
실낱같은 희망 하나는 품고 있을 수 있었다.
비교를 내려놓는 방법은
요가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나는 단체 수업이 싫었다.
요가할 땐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는데,
자꾸 옆사람이 얼마나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다 되는 건지,
나만 안 되는 건지,
나만 힘든 건지,
나만 버티지 못하고 있는 건지
머릿속이 시끄러워졌다.
내 몸과 아사나에만 집중해도 모자란 시간에
정신은 온 사방으로 흩어졌고,
수업이 끝나면 너무 지쳐서
집에 와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날마다
자기 비하와 혐오가 깊어졌다.
버티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다.
그 이야기를 정신과 선생님께 털어놨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기쁨씨!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기쁨씨한테 관심이 없어요!”
너무 충격적이었다.
진심으로 그 말이 너무 차갑게 들렸고,
순간 어안이 벙벙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꿔버렸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있는 것 같았던 착각,
비교와 수치심으로 가득했던 생각들이
갑자기 툭—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짜 내 몸, 내 마음,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건 아주 큰 자유였다.
그날부터 요가가 힘들지 않아 졌다.
생각해 보니, 나도 내 옆사람이 무슨 색 옷을 입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저 사람도 나만큼 남에게 관심이 없겠지?’라고 생각하자
쇠사슬에 묶여 있던 발이 풀린 것처럼
인생이 갑자기 자유로워지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진짜로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게 관심을 쏟자 삶이 훨씬 편해졌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오늘은 머릿속이 시끄러웠구나.
가만히 있는 것조차 힘들었던 이유를 알겠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은데도 끝까지 해냈구나.
정말 대견하다.’
내면을 바라보다 보니
어렴풋이 ‘명상’이란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한때 내가 질투하고 부러워했던 옆집 엄마가 있다.
그 사람은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고,
결혼할 때 양가의 도움을 받아 대출 없이 집을 마련했고,
주 1~2회 친정엄마가 와서 아이를 봐준다고 했고,
필라테스를 다닌다고도 했다.
예전의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왜 나는 저런 기본조차 갖추지 못했을까.
왜 나는 늘 이렇게 벅차게 살아야 하나.
그런데 내면을 들여다보니 알겠다.
좋은 직업이 없고 잘 나가는 가족이 없다는 생각은
결국 나 스스로를 비하하고 혐오하던 마음이었다.
그건 현실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바라보던 시선의 문제였다.
친정엄마가 와서 아이를 봐주는 모습이 부러웠던 건
사실 나도 어렸을 때 그런 돌봄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의 이름은 수치심이었다.
“나는 돌봄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나?”
그 질문이 마음 한구석에 늘 있었다.
그리고 필라테스를 다니며 아이와 떨어져
잠깐이라도 여유를 갖는 그 모습은,
질투도 시기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정말로 부러운 마음이었다.
나도 그런 여유를 갖고 싶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구나.
그걸 인정하자 마음이 조금 덜 아파졌다.
명상은 무(無)의 상태,
생각과 감정의 소음을 가라앉히고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명상은
나로서 내가 되어가는 여정이었다.
세상의 기준에서 잠시 물러나
타인의 시선과 비교에서 한 걸음 떨어져
흩어졌던 나를 다시 내 안으로 데려오는 시간.
그렇게 나는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