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더럽나, 돈이 더럽지
우리 남편은 직업 군인이다.
곧 부대를 이동하게 될 것 같아, 내 일도 정리했다.
여느 군인가족들이 그렇듯, 이동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없기에
그저 하루하루를 잘 지내려 노력하고 있다.
방학을 맞아 아이는 할머니 댁에서 일주일간 지내기로 했다.
그 사이 일을 그만둔 나는 통장 잔고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걸 보았고,
무더운 여름에 집 안에만 있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 곳에서 오래 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업주 입장에서 언제까지 일할지 모르는 사람을 뽑기는 쉽지 않다.
나라도 그럴 거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쿠팡 일용직’이었다.
생각보다 신청은 간편했다.
신청한 당일, 바로 “내일 출근하세요”라는 문자를 받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악명 높은 여름 쿠팡 알바가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일하는 곳인데, 설마 죽기야 하겠나.
아침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섰다.
주간조 근무 시간은 8시부터 6시까지.
하지만 셔틀은 6시 55분에 왔다.
6시에 눈을 떠 아침을 대충 먹고, 부랴부랴 이동했다.
셔틀을 타고 도착한 쿠팡.
신규 사원 등록을 마치니,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구나.”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시스템은 간단했고, 작업도 단순했다.
내가 배정받은 건 ‘반품’ 업무였다.
제품이 개봉됐는지 아닌지,
개봉됐다면 상태는 어떤지, 재판매가 가능한지 판단해
재포장하거나 폐기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내가 버린 쓰레기를 누군가 자꾸 가져가는 것이다.
“저 사람은 왜 내 쓰레기를…?” 순간 당황했지만,
알고 보니 그것만 전문으로 처리하는 파트가 따로 있었다.
분류가 끝난 상품을 또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거대한 공장의 부품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징어게임이나, 일하는 세포 속 세계에 들어온 듯한 기분.
밥도 나름 맛있었다.
그중 제일 좋았던 건, 아무도 나에게 말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저 묵묵히, 내 일만 하면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로 받은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는지 말이다.
쿠팡의 더위는 정말 어마무시했다.
나는 한 자리에 서서 일했고, 앞에는 선풍기가 배치돼 있었다.
하지만 바람은 너무 뜨거웠고, 잠시라도 선풍기에서 벗어나면
땀이 주르륵 흘렀다.
물건도 어떤 건 꽤 무거워서 금세 진이 빠졌다.
안전화는 꼭 신어야 했는데, 발가락을 조여 발이 너무 아팠다.
그래도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셔틀을 타고 집에 오니
저녁 7시 30분.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한 하루 수당은 약 98,000원이었다.
솔직히 이 돈을 받고 이 강도로 일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원할 때 일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는 건
꽤나 큰 장점이었다.
다다음 날, 너무 더워서인지 지원자가 없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내일 출근하면 인센티브로 하루치 일급을 더 준다”는
문자가 왔다. 낼름 신청했고, 새벽에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쿠팡으로 출근했다.
그날은 관리자가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이 관리자가, 정말 나를 힘들게 했다.
처음 보는 문제라 도움을 요청했는데,
“왜 이렇게 했어요?”, “이게 맞아요?”
말투가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금 위축됐다.
그러다 큰 실수를 하나 했다.
고객이 보낸 포장지에 있는 바코드를 찍고,
안의 상품을 검수했더니 전혀 다른 물건이 들어 있었다.
다시 그 관리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이걸 왜 이렇게 했어요? 이거 사원님이 어떡하실 건데요?
이렇게 자기 멋대로 하시고 저한테 뭘 해달라는 건데요?
눈이 잘 안 보이시나? 상품이 안 보이셨어요?”
마치 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한 사람처럼
10분 넘게 거듭 몰아붙였다.
나는 지금까지 참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전전했다.
그 시간 동안 고객과 관리자들에게서
거친 말과 비난을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그 말들이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는지,
그리고 스스로 그 화살을 다시 내 가슴에 꽂지 않는 방법도
조금은 알게 됐다.
내 나름의 생존 팁이 있다면,
어느 직장에 가든 한 달 안에 겪는 ‘나만의 신고식’ 같은 게 있다.
바로, 억울하고 속상해도 꾹 참고 화장실에 가서 혼자 펑펑 우는 것이다.
그렇게 울고 나면 신고식은 끝난다.
그 뒤로는 이상하게도, 그냥저냥 버틸 만해졌다.
그날도 날카로운 말들이 이어지자 잠시 생각했다.
화장실에 가서 울고 올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마음속으로 ‘YES or NO 테스트’를 해봤다.
이 일이 나에게 중요하고, 앞으로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는가? No
내가 한 실수가 이렇게까지 날 깎아내릴 일인가? No
이 스트레스가 오늘 일급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No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만하세요.”
관리자가 되물었다.
“뭘 그만해요? 제대로 배우셔야죠.”
“안 배울 거니까 그만하시라고요. 이제 안 옵니다. 지금 조퇴하겠습니다.”
순간, 관리자의 표정이 굳더니 어버버하며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때부터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일용직일 때는 그들이 ‘갑’이지만,
일을 그만하는 순간 우리는 그냥 동등한 사람이 된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센티브 못 받으셔도 괜찮아요?… 아고, 더우셨나 보다.”
“안 받아도 괜찮아요. 더워서가 아니라, 기분 나빠서 갑니다.”
조퇴서를 쓰고, 일한 지 4시간 만에 현장을 나왔다.
쿠팡 물류센터는 외진 곳에 있어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배도 고프고, 스트레스도 받아서 결국 돈가스를 시켜 먹었다.
그렇게 4시간 동안 몸과 마음을 혹사하며 번 돈은
금방 사라졌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부터의 고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날 들었던 말들이 떠올라 속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나 스스로를 지켜낸 첫 경험이
대견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더럽나, 돈이 더럽지.
그 관리자도 하루 종일 여러 일용직을 챙기느라 지쳤을 것이다.
내가 계속 도움을 요청해서 본인 일을 마무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날 무슨 힘든 일이 있었거나,
더 윗사람에게 크게 혼이 났을 수도 있다.
그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거다.
나 역시도 애 학원비라도 벌어보겠다고 새벽부터 나와
그 고생을 하고, 인센티브도 못 받고 돌아온 허무하고 쓰라린 하루였다.
우리는 아무리 잘났어도, 언제나 누군가의 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순간 바로 박차고 나올 만큼 부유하거나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잠시 망설였고, 그 사실이 나를 더 속상하게 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최소한 나 자신에게는 ‘갑’이 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지킨 선택,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인생이 지루하다면,
퇴사를 고민하고 계시다면,
이 업무가 나의 적성에 맞는지 고민 중이시라면..
쿠팡 알바를 추천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