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아름다워도 되는 이유

by 기쁨


나는 지금은 종교가 있지만, 원래는 무교였다.

종교 없이도 꽤 오래, 나름대로 바르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마음이 쓰였으며,

남의 물건엔 손을 대지 않았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지켜야 할 것들이 마음속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마음속에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아주 단순하지만,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왜 선하게 살아야 할까?”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정직하려는 마음.
억울해도 꾹 참고 조용히 넘어가려는 자세.
내가 조금 더 힘들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태도.
이런 것들은 도대체 왜 지켜야 하는 걸까.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항상 부드럽고, 항상 착하고,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누가 봐도 참 좋은 사람인데,

동시에 늘 손해 보는 쪽에 서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마음이 울컥할 때도 있다.
안타까움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런 삶을 닮고 싶어 하기도 한다.

왜일까.
무엇이 나를 그렇게 이끄는 걸까.


한참을 고민하다 보니,
그 모든 행동의 출발점에는

아주 조용하고 작지만 분명한 존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바로 양심이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아도,
나 혼자 있는 공간에서조차도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또는 해야 한다고 속삭이는 목소리.
사회가 주입한 기준도 아니고, 법의 조항도 아닌,
내 안에서 스스로 생겨난 기준.
바로 그것이 양심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늘 따라붙었다.
“양심을 지키며 산들, 누가 알아줄까?

나만 손해 보는 거 아닐까?”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정직하게 살다가도,

억울하게 뒤통수를 맞는 순간이 생긴다.
배려했던 사람이 고마워하기는커녕,

그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선한 마음을 드러냈다가,

만만하게 보이거나 이용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차라리 그냥 이기적으로 살 걸 그랬나?’
‘나만 참지 말고, 나도 똑같이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선하게 살고 싶다.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이 별에 태어나 고작 100년도 못 살고 사라지는 존재다.
그러니 오늘 마주한 사람들은 모두,
이 짧고도 허무한 시간을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료들이다.”

우리는 다들 고군분투하며 이 짧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
겉으론 다 괜찮아 보여도, 속에는 누구나 슬픔 하나쯤은 품고 산다.
때로는 외로움에 울고, 때로는 사랑에 상처받고,
누군가는 고통 속에서도 하루를 살아내며 웃는다.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
자연스럽게 연민이 생긴다.
그리고 그 연민은,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도 결심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아프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인류애란,
결심한다고 해서 항상 유지되는 건 아니다.
때론 너무 이기적인 사람을 마주하거나,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고,
내가 지키려 애쓰는 선함이 너무 작고 보잘것없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하게 살아가고 싶다.


왜냐하면,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 때,
선한 사람이 51명이고 악한 사람이 49명이라면,
세상은 분명히 선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1’의 차이가,
세상의 흐름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실제로 그런 변화들이 있었다.

내가 처음 노동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도,
노동 환경은 분명히 나아졌다.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전 세계의 어린아이들이 위험한 공장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참혹한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마침내 ‘아동 노동법’이라는 보호막을 만들었다.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 방향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더 나은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 흐름을 가능하게 한 건,
아마도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옳음을 지키려 했던
수많은 ‘51번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51명 중 한 사람이 되고 싶다.

비록 어떤 날은 지치고,
어떤 날은 세상이 미워지고,
어떤 날은 마음이 다쳐서 눈물 흘리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길.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받은 선함을
또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낼 수 있기를.

그런 세상을 위해,
오늘도 나는 나의 양심을 따라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선함의 길을 걷고 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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