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라디오

머릿속을 멈추지 못할 땐 비틀기자세를

by 기쁨


유산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임팩트가 너무 커서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마음도 힘들었지만, 몸까지 지쳐서 비로소 ‘심신이 지친다’는 표현을 알게 되었다.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첫째 때와 달랐던 유독 큰 피로감,
계속된 하혈, 주수보다 작은 아이.
모든 것이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쳐오니 상실감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길흉화복은 하나의 꼬인 새끼줄 같다고 하지만,
나는 매번 안 좋은 일들은 당연히 나를 비켜가야 한다고 믿었던 걸까.

그래서일까, 이번 일은 너무 당황스럽고 마음이 쓰리다.


실컷 울기도 하고, 잠만 자기도 했다.
사람들의 많은 배려와 위로도 받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머릿속에 고장난 라디오가 켜져버린 것 같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라디오는 하루 종일, 수많은 채널을 제멋대로 틀어댔다.
그 소란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상실감과 고요함이 두려웠던 내가,
스스로 라디오를 켜두고 있었던 것임을.


좋아하는 일들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요가, 책 읽기, 중국 드라마 보기, 산책하기, 디저트 먹기, 글쓰기 등

늘 나를 설레게 해서 아침에 벌떡 일어나게 만들던 취미들이

아무 재미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몸에서 근육이 계속 빠져나가고, 힘이 없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일상은 살아내야 했기에 억지로 매트를 펼쳤다.

“딱 10분만 하자.”


처음엔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늘어날 때나 힘을 쓸 때 호흡을 하지 않으면
곧바로 몸이 괴로워진다는 걸 알기에, 억지로라도 숨을 고르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호흡과 몸에 집중이 돌아왔다.
시끄러운 라디오가 아닌, 고요한 내 몸과 마음으로.


호흡을 이어가다 보니 놀라운 걸 발견했다.
그동안 어깨와 가슴으로만 숨을 쉬고 있었다.

임신을 하고 불안과 피로에 시달리면서,
숨은 늘 가쁘고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아예 호흡 자체가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물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던 걸까.

내가 그토록 불안했다는 증거가 바로 이 짧고 얕은 숨이었다


천천히 다시 배로 호흡을 불어넣었다.
그제야 임신을 알게 된 후 처음으로,
비로소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굳어 있던 몸에 비틀기 자세를 하자
완전한 집중이 찾아왔다.


비트는 자세는 몸의 유연성을 모두 사용하기에 시원함이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힘이 조금이라도 잘못 들어가면 다칠 것 같아
계속 호흡과 몸을 이완시키는 데 고도의 집중이 요구되는 자세다.

불편한 자세에 머물며 그 불편함을 바라보다 보니,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조금은 받아들이게 되었다.

머릿속 잡음은 줄어들고,
쌓여 있던 감정들은 밀려나가며 비워졌다.


전통적으로 비틀기자세는 장기를 자극해

노폐물을 내보내고 새 에너지를 받아드리는 정화의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처음으로 느꼈던 비워냄이였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

비워낸 자리엔 다시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다시 조금씩 회복하며 일상을 살아가려 한다.

호흡처럼 삶도 다시 이어지겠지.


ps. 오늘 산책을 하다 본 사람.

런닝 중이던 아저씨가 미화원분께 다가가더니
손에 돈을 꼭 쥐어주며 말했다.
“수고하십니다, 음료수라도 꼭 사드세요~!”

그리고는 쿨하게 자리를 떠났다.

나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좋아한다.
오늘 내 하루도 긍정으로 물들여준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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