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소리,푸른 빛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삼촌은 베짱이였다. 적어도 어린 내 눈에는 그랬다. 장발에 나팔바지, 늘 기타를 들고 밖으로만 나돌았다. 공부는 안 했다. 대학생이라는데 책을 펼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기타를 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나가거나, 아니면 방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꼼지락거렸다.
그 꼼지락거림의 중심에 오디오가 있었다. 삼촌의 방은 늘 어두웠다. 커튼을 치고, 형광등은 끈 채, 방 한쪽 벽을 차지한 오디오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삼촌의 일과였다. 전원을 올리면 앰프 전면의 긴 창에서 푸른 빛이 번져 나왔다. 나중에야 사람들이 '마란츠 블루(Marantz Blue)'라 부른다는 걸 알았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것은 그냥 삼촌의 방 색깔이었다. 어두운 방, 푸른 빛, 레코드판이 도는 소리.
삼촌은 그 빛 아래서 큼직한 튜닝 휠을 손가락 끝으로 살살 밀며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거나, 레코드의 음악을 카세트테이프에 옮겨 담았다. 바늘이 판에 닿는 소리조차 섞이지 않게 숨을 죽인 채 녹음 레벨을 조절하던 삼촌은, 세상을 제멋대로 누비던 그 사람 맞나 싶을 만큼 경건해 보였다. 물론 그 지극정성으로 만든 테이프들의 목적지가 여자 친구였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삼촌의 경건함에는 세속적인 목적이 있었던 셈인데,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온 우주가 푸른 불빛과 검은 레코드판 위에 멈춰 서 있는 듯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삼촌의 앰프가 정확히 어떤 모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2265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 그것은 이미 2285로 덮여 있고, 나는 그 기억을 굳이 정정할 생각이 없다. 기억이란 정확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면 된다. 중요한 것은 모델 넘버가 아니라, 어두운 방에 번지던 그 푸른 빛이니까.
그 푸른 빛의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난 것은 몇 년 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1986년이었을 것이다. 친구 생일 선물로 카세트테이프를 사러 학교 앞 레코드 가게에 갔다. 당시에는 원하는 곡 목록을 적어 가면 가게 주인이 레코드에서 카세트로 녹음해 주고 돈을 받았다. 지금 기준으로는 명백한 불법이지만, 그때는 저작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상에 닿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가게는 재즈와 팝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가게 안에서 음악이 울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다만 달콤하면서 어딘가 쓸쓸한 소리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스탄 게츠(Stan Getz) 같은 질감의 모던 재즈 연주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소리가 나오는 곳을 올려다보니, 작은 가게의 책장 위에 — 만행이었다, 그것은 — 투박하고 시커먼 스피커 한 쌍이 올라가 있었다. 하얀 우퍼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은색 턴테이블이 돌고 있었고 — 아마 테크닉스(Technics)였을 것이다, 은색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 그 아래에 긴 전면 창을 가진 앰프가 놓여 있었다.
그때 삼촌의 방이 겹쳐 보였다. 어두운 방, 푸른 빛, 레코드판 위에 내려앉는 바늘. 전혀 다른 공간이었는데, 같은 종류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에도 몇 차례 그 가게를 찾았다. 테이프를 사러 간 것인지, 그 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서 간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가게를 드나들면서, 시커먼 스피커와 푸른 불빛의 앰프가 내 안에 하나의 원형(原型)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소년 시절 삼촌의 방에서 시작된 풍경이, 대학 시절 레코드 가게에서 다시 한번 겹쳐지면서 — 이 오디오 세트는 내게 돌아가기 어려운 시절의 아이콘이 되었다.
JBL 4312. 남들은 궤짝이라 부른다. 틀린 말이 아니다. 시커먼 나무통에 하얀 우퍼가 박혀 있는 모양새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하이파이(Hi-Fi)의 기준 — 초고해상도, 광활한 사운드스테이지, 정교한 정위감(定位感) — 으로 보면 이 스피커는 낙제에 가깝다. 그러나 4312에는 그런 기준으로 측정되지 않는 것이 있다.
이 스피커는 원래 스튜디오 모니터였다. JBL이 4310이라는 이름으로 녹음실에 공급하던 전문가용 장비를, 가정용으로 재구성한 것이 4312의 출발이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전용기 '리사 마리(Lisa Marie)'호에는 직계 선조인 JBL 4311이 십여 대 넘게 실려 있었다. 킹 오브 록이 하늘 위에서도 곁에 두고 들었던 소리. 팝 음악의 황금기를 만든 스튜디오의 거친 숨결이 바로 이 궤짝 안에 들어 있다.
그래서 4312는 음악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실어 나를 뿐이다. 클래식의 정위감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록의 드럼 킥 한 방, 재즈 베이스의 울림 한 줄이 가슴에 꽂히는 에너지 — 그것 하나만큼은 이 투박한 궤짝을 대체할 현대적 스피커가 마땅치 않다. 4312가 수십 년째 살아남은 이유는 음질의 문제가 아니다. 성격의 문제다. 그리고 그 성격이 나를 붙잡았다. 레코드 가게 책장 위에서 처음 본 순간부터.
그 스피커 옆에 늘 함께 있던 앰프가 마란츠(Marantz) 2285B다. 이 기기를 이해하려면 '리시버(receiver)'라는 물건의 성격을 먼저 알아야 한다. 리시버란 앰프와 튜너가 하나의 몸체에 담긴 기기다 — 음악을 증폭하는 기능과 라디오 방송을 수신하는 기능이 합쳐져 있어, 이것 하나면 소스 기기와 스피커 사이의 모든 것이 해결된다. 1970년대에 마란츠, 파이오니아(Pioneer), 산스이(Sansui), 켄우드(Kenwood) 같은 회사들이 더 높은 출력, 더 많은 기능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며 리시버 시장을 전쟁터로 만들었고, 2285B는 그 전쟁에서 마란츠가 내놓은 가장 빛나는 무기였다.
전원을 켜면 전면 창에 번지는 은은한 푸른 빛. 손가락 끝으로 밀면 부드럽게 돌아가는 자이로 터치 튜닝 휠(Gyro Touch Tuning) — 오디오 역사상 가장 손맛 좋은 인터페이스로 꼽히는 가로형 다이얼이다. 밤에 불을 끄고 이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소리가 두 배는 더 좋게 들린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오디오 성능의 영역이 아니라 시각적 서사의 영역이었다. 마란츠 블루 — 그 푸른 빛은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JBL 스피커에는 마란츠 리시버.' 이것은 거의 종교였다. 마란츠의 묵직한 출력이 JBL의 투박한 에너지를 받아 안고, JBL의 직선적인 성격이 마란츠의 따뜻한 색채를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다. 서로를 꾸미지 않는 조합, 격식 없는 궁합. 1986년 학교 앞 레코드 가게에서 나를 멈추게 했던 것도, 그보다 훨씬 전에 삼촌의 어두운 방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것도, 결국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공기였다.
그런데 이 두 브랜드의 뒤편에는 묘하게 닮은 두 사람의 그림자가 있다. JBL의 창업자 제임스 B. 랜싱(James B. Lansing)은 천재적인 음향 엔지니어였지만 사업에는 재능이 없었다. 자신이 세운 회사가 재정난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다, 1949년 47세의 나이에 캘리포니아 산마르코스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마란츠의 창업자 사울 마란츠(Saul Marantz)는 음악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발명가 — 완벽주의의 화신이었지만, 역시 경영에서 밀려나 1964년 회사를 매각하고 1968년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자기 이름을 단 회사가 일본으로 건너가 상업적 전성기를 맞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다, 1997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둘 다 천재적 창조자였지만 상업적 영광의 자리에는 없었다. 둘 다 자신이 만든 것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누리지 못했다. 2285B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울 마란츠는 이미 회사를 떠난 뒤였고, 랜싱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빌 토마스(Bill Thomas)가 JBL을 대중의 브랜드로 키워냈다. 만든 사람은 떠나고, 만들어진 것만 남아 전설이 된다. 그 사실이 묘하게 슬프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투박한 궤짝과 푸른 빛의 리시버 안에는 두 사람의 꿈이 — 그들 자신은 끝내 누리지 못한 방식으로 — 여전히 울리고 있다.
나는 이 세트를 갖고 싶었지만, 대학 시절의 우리에게 이런 기기는 꿈이었다. 가난했다. 음악은 좋아했지만, 음악을 제대로 울려줄 기계를 살 형편은 안 됐다. 졸업이 1990년이었고, 실제로 이것을 손에 넣은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뒤인 1995년쯤이었다.
앰프는 천리안과 하이텔 — 인터넷 이전의 인터넷이라 할 수 있는 PC통신 시절, 그 원시적인 전자상거래를 통해 찾았다. 사러 가보니 대학 후배였다. 닉네임 뒤에 숨어 있으니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야무지게 값을 깎겠다고 벼르고 갔는데, 찌질한 작업실에서 살고 있는 후배를 보는 순간 그 마음이 무너졌다. 달라는 대로 다 줬다. 45만 원. 후배에게 인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스피커는 다른 경로로 왔다. 단골 오디오 샵에 어느 날 매물이 들어왔는데, 팔러 온 사람이 내려놓자마자 내가 "제가 살게요"를 외쳤다. 사장님이 자기 물건으로 남기지도 못하고 내게 넘긴 셈이다. 1세대 4312, 우드 무늬목 모델. 그 사장님과는 지금도 친구처럼 지낸다.
이 세트가 내 곁에 온 경위는 그렇게 허겁지겁이었지만, 그 뒤로 한 번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요즘 레트로 바람이 불면서 4312의 인기가 높아졌다. 내 주변에도 "안 쓰시면 제가 살게요"라고 예약을 걸어둔 지인이 여럿 있다. 팔 마음은 없는데, 방출하면 무조건 자기가 가져간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아마 계속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스피커는 나에게 '스피커란 이런 것이다'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궤짝이지만, 내 눈에는 이것이 스피커의 원형이다. 소년 시절 삼촌의 방에서, 대학 시절 레코드 가게에서, 이 투박한 상자가 내 안에 새겨놓은 풍경은 어떤 하이파이 명기(名機)로도 대체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오디오 앞에서 나는 긴장하지 않는다.
나는 이 시스템으로 그냥 음악을 듣는다. 라디오를 틀기도 하고, 블루투스로 스트리밍을 연결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일을 하면서, 심지어 빨래를 하면서. 이 기기 앞에서 나는 음악과 신경전을 벌이지 않는다. 소리의 결을 분석하지 않고, 음장(音場)의 깊이를 따지지 않는다. 그냥 틀어 놓는다. 그러면 소리가 방을 채우고, 나는 그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산다.
가족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가. 격식도, 예의도, 준비도 필요 없는 사이. 츄리닝에 런닝만 입고도 식구들 앞에서 어슬렁댈 수 있듯이, 이 오디오 앞에서 나는 아무런 모양새를 갖추지 않는다. 매일 곁에 있되 그 존재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 그러나 없으면 방이 텅 비는. 이 세트는 내게 그런 오디오다.
4312에서 나오는 소리는 스탄 게츠도 아니고, 삼촌이 틀던 팝송도 아니고, 1986년 학교 앞 레코드 가게의 모던 재즈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그 어느 것도 아닌 소리. 돌아갈 수 없는 방들의 공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격식 없이 흘러나오는 소리다. 나는 그것을 매일 듣는다. 빨래를 개면서.
나의 레코드 장에서
LP — Elvis Presley · Blue Hawaii (1961)
나팔바지를 입고 기타를 들던 삼촌은 어딘가 젊은 엘비스를 닮아 있었다. 그 방에서 시작된 기억이 JBL 4312까지 왔으니, 이 스피커에서 엘비스를 듣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엘비스의 음반 중에 가장 낭만적인 음반을 고르라면 내게는 이것이다. 하와이의 햇살 아래서 사랑 노래를 부르는 스물여섯의 청년. 그런데 이 음반을 틀면 낭만보다 슬픔이 먼저 온다. 백발이 된 삼촌과 아버지가.
CD — Amy Winehouse · Back to Black (2024)
처음엔 와인이나 마시며 틀어볼까 했다. (와인하우스는 그녀의 이름이다, 오해 없기를.) 어느 날 후배의 추천으로 JBL 4312에 그 음반을 틀었는데 — 독특한 목소리로 음을 찍어 누르며 노래하고 있었다. 뭐지? 그녀를 알기 전의 이야기다. 에이미를 알고 나면 그 목소리가, 그 음악이 달라진다. 달콤한 선율 안에 잔혹동화 같은 서늘함이 있다. 이 스피커에서 울리는 에이미의 노래는 잔혹한 낭만에 대한 나의 헌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