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진공관 단상

by 박물지 선생

난 오래전에 Fisher 장전축에서 나온 작은 진공관 앰프로 빈티지 오디오를 시작했다. 아무런 진공관 앰프나 오래된 기계에 대한 지식 없이, 막연한 신기루 같은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진공관 앰프를 중고장터 개인 거래로 사 들고 오면서도 '과연 내가 빈티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시작했는데, 어느덧 나도 모르게 빈티지 오디오의 끝판을 거닐고 있다. 이런 오래된 빈티지 오디오로 음악 감상을 하면 생기는 이득은 끽해봐야 덜 빠지는 오디오 가격과 — 음, 살 때보다 비싸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 별로 쓸모없는 지식이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학창 시절 기술 시간에 플레밍의 법칙을 배우며 진공관의 원리도 배웠다. 당시에도 이걸 왜 배우는지 어린 생각에도 좀 한심했는데, 수십 년이 지나 낡은 회로도를 보고 진공관을 연구하니 사람 일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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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나의 오래된 진공관 오디오들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면 어김없이 무거운 앰프를 들고 세상에 숨은 고수들에게 불원천리 배움을 청하러 간다. 다 기억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진공관 모델과 브랜드들의 소소한 특성을 살피며, 오늘 저녁에도 남몰래 진공관 하나를 바꿨다.


인터넷을 뒤지고 낡은 기록을 읽고 지인들에게 귀동냥을 해서 얻는 지식으로 '이걸 끼우면 더 좋으려나?' 혼잣말을 되뇌며, 10대의 두근거리는 호기심 찬 눈빛으로 어제 듣던 음악을 기억하며 그 차이를 느껴보려고 밤을 지샌다.


오랜 시간 빈티지 오디오로 음악 감상을 하며 얻은 교훈은 역시 돈이 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구관, 고신뢰관 등 생소한 수식어에 혹여나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움찔하지만, 수리 고수들이 툭 내뱉는 한마디 — "이게 좀 나을 거요" — 이 한마디는 종종 놀라운 진가를 발휘하곤 한다.


참 이게 무슨 조화인지, 수십 년 세월을 보낸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진공관들이 묘한 재주를 부리는 걸 보면 그저 신묘할 따름이다.


요즘은 진공관도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모델이 많이 나오고 해상도나 대역폭 같은 현대적 하이파이 잣대로 소개하곤 한다. 하지만 이 진공관이란 물건은 탄생 시기의 기술적 한계나 재료의 한계로 사실 왜곡이 있는 것이지, 놀라운 기술이 숨어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왜곡이 상황에 따라 어제보다 훨씬 고아한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고, 한 단계 내려와 칼칼한 질감의 다른 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뭐 굳이 음색이라고 하면 음색이 달라지는 것이고, 때로는 나에게 더 좋게 들리는 법이다.

오늘도 어제의 가수는 분명 서서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 내 앞의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주머니 사정으로 작은 초단관을 한 조 바꾼 게 다인데 다른 가수가 와 있는 것 같다.

이래서 빈티지 오디오로 음악 감상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감상의 차원을 넘어 의외로 '창조적 영역' 안에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느 유명인의 이야기처럼 나도 점점 **'오디오 연주자'**라는 표현에 근접해 간다.


가끔 후배들이나 지인들이 본인도 진공관 앰프 하나쯤 가지고 싶다며 의견을 묻는다. 옛 어른들이 밭의 식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이 진공관 빈티지 오디오가 딱 그렇다. 오래된 아날로그 기기들은 확실히 애정을 가지고 보듬는 시간에 따라 그 보답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무서운 첨언 하나…


"고장을 무서워하고 수리를 귀찮아하면 안 돼요. 수리실 가는 것이 즐거워야 해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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