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Blue Bayou

by 박물지 선생

작은 유리관이 빛을 내고 있었다. 피셔 장전축에서 떼어낸 진공관 앰프. 20대 후반의 나는 그 앰프 앞에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저 작은 유리관에서 소리가 날까. 막연한 동경이었다. '진공관'이라는 단어 자체가 낭만처럼 들리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나는 너무 피곤했다. 일도, 관계도,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고단했다. 그저 나를 위로할 무언가가 절실했다.


앰프를 켰다. 유리관에 온기가 돌며 불이 들어왔다. 린다 론스타드(Linda Ronstadt)의 <Simple Dreams>를 턴테이블에 올렸다. 바늘이 홈을 타고 들어가는 미세한 소리, 이내 'Blue Bayou'가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CD 플레이어의 매끄러운 소리와는 결이 달랐다. 린다 론스타드의 목소리가 방 안 어딘가에 살아서 떠다니는 것 같았다. 스피커가 아닌, 공기 속 어디선가 숨을 쉬고 있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절절한 노래.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로 30년이 흘렀다.


진공관 앰프 하나로 시작한 인연은 어느새 스무 개가 넘는 오디오 시스템이 되었다. 타노이, 쿼드, JBL, 알텍, 마란츠, 매킨토시…. 사고팔기를 반복하는 노련한 컬렉터였다면 내 곁엔 몇 개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보내는 재주가 없었다. 한번 인연을 맺은 오디오는 늘 곁에 머물렀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갔다.

쌓인 오디오 앞에 서면 생각한다. 1950년대 런던의 거실, 196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스튜디오, 1970년대 뉴욕의 원룸. 이 기기들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머금고 있다. 그 앞에 서면 인류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경외감이 밀려온다.


30년 동안 복원하고 조립하며 듣다 보니, 어느새 아는 것이 많아졌다. 30년 넘게 디자인을 가르치며 배운 진리는 하나다. 지식은 나누어질 때 비로소 살아난다는 것. 혼자만 아는 것은 죽은 지식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내 오디오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20대의 피곤했던 청년이 작은 유리관 앞에서 위로받았듯, 누군가도 이 오래된 기계 앞에서 위안을 얻길 바랄 뿐이다. 웨스턴 일렉트릭의 거대한 혼 스피커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거실 선반 위 작은 스피커를 보며 "나도 저렇게 살 수 있겠다"는 다정한 동경을 품는 것도 근사한 일이다.


오디오는 범접할 수 없는 제사장이 아니다. 그저 삶의 호흡이고, 선반 위의 책이며, 달력 속의 풍경화여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 조촐하지만 오래된 빈티지 오디오 하나가 놓인다면, 일상은 조금 더 풍요롭고 즐거워질 것이다.


'그날 밤, 'Blue Bayou'가 흐르던 방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이제 펼쳐보려 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