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ec · Western · Klangfilm · SPU
알텍 A5는 못생겼다.
15개의 셀이 붙은 혼은 정면에서 보면 건축의 단면 같고, 옆에서 보면 거대한 괴수가 큰 입을 벌린 것 같다. 거실 오디오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다. 처음 마주하면 당혹스럽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들여다보면 묘한 질서가 보인다. 쏟아질 것 같은 15개의 셀은 청취자가 앉은 단 하나의 지점을 향해 엄격하게 정렬되어 있다. 장식을 위한 단 1mm의 흔적도 없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음향 기사들이 요구한 스펙이 그대로 형태가 된 물건이다. 모더니즘 건축이 선언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명제를 이 스피커는 말이 아니라 철판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 투박함이 오히려 정직하다.
웨스턴 일렉트릭의 혼은 같은 시대,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전혀 다른 언어로 말한다. 알텍이 공학적 해결의 언어라면, 웨스턴의 혼은 소리의 운동을 형태로 고정해놓은 조각품이다. 나팔의 벌어짐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린다. 소리가 공기를 밀어내는 방식을 계산한 결과가 그 유려한 곡면으로 나타난 것이다. 바람의 단면을 그린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이 스피커들은 무대 뒤편에 숨어 있었다. 압도적인 미학이 관객에게 보일 필요가 없었다. 소리만 앞으로 나왔다. 그 사실이 내내 아깝다.
클랑필름의 유로딘을 정면에서 보면, 별로 보여줄 것이 없다. 웨스턴의 유려한 곡면도 없고, 알텍의 위압적인 셀 배열도 없다. 철판을 접어 만든 듯한 직선과 직각. 처음엔 밋밋하다. 그런데 오래 볼수록 이상하게 눈이 간다. 미화를 거부한 채 있어야 할 것만 남긴 그 무뚝뚝함이, 소리의 본질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볼거리가 없어서 오히려 더 오래 보게 되는 물건이다.
SPU는 1959년에 설계된 카트리지다. 지금도 거의 같은 형태로 생산된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보잘것없이 작다. 전기도 없이 바늘 하나가 홈을 긁는다. 그것으로 소리가 난다. 생각할수록 경이로운 물건이다.
알텍도, 웨스턴도, 클랑필름도, SPU도 — 단 한 번도 아름다워지려고 만들어진 적이 없다. 소리만을 위해 설계되었고, 소리만을 향해 형태가 결정되었다. 그런데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