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녹음을 위하여

Tandberg model 6

by 박물지 선생

나는 릴 데크로 음악을 들었던 세대가 아니다. LP는 잠깐, 카세트 테이프는 길게, 그리고 CD. 릴 데크는 그냥 영화 속 장면이었을 뿐, 내 음악 풍경 어디에도 릴 데크는 없었다. 그런 내가 커다란 눈망울에 홀려 릴 데크를 두 번이나 샀다.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기 위한 오디오였다.


첫 번째는 오래전, 리복스(Revox) G36을 샀을 때다. 고장난 기계였고 진공관도 없었는데, 그런데도 샀다. 이유는 단 하나, 정말 예뻤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얼마 전, 탠드버그(Tandberg) 모델 6를 충동으로 사들였을 때다. 이것도 릴이 돌지 않아 수리가 필요하다. 지금 내 서재에는 그렇게 두 개의 침묵이 나란히 앉아 있고, 나는 탠드버그를 먼저 살려보기로 했다.

이 두 기계는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삶을 선택했다. 1960년대는 전쟁이 끝나고 서구 중산층이 처음으로 풍요를 실감하던 시절이었다. 냉장고와 텔레비전이 거실로 들어오고, 음악을 틀어놓는 것이 교양의 표시가 되던 때. 오픈릴 테이프 레코더는 그 시대의 첨단이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냇 킹 콜의 목소리를 붙잡아 두고 싶은 사람들, 가족의 웃음소리를 어딘가에 새겨두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이 기계는 마법 상자였다.


그 마법 상자를 만드는 방식이 두 회사는 달랐다. 스위스의 리복스는 불독처럼 만들었다. 육중하고 차갑고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서, 소리 하나를 왜곡 없이 담겠다는 집념으로 설계된 이 기계는 스튜디오 엔지니어의 책상 위에 어울렸다. 반면 노르웨이의 탠드버그는 젠틀하고 영민한 집사처럼 만들었다. 따뜻한 나무 마감, 가구 옆에 두어도 어색하지 않은 크기와 형태. 이 기계는 처음부터 거실을 위해 태어났다.


어머니가 요리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저녁, 식탁 곁에서 조용히 음악을 틀어주는 집사. 탠드버그가 지향한 것은 완벽한 소리가 아니라 삶의 배경이었다. 리복스가 테이프를 빠르게 돌려 압도적인 소리를 뽑아낼 때, 탠드버그는 테이프를 아끼면서도 고음을 살리는 영리한 기술로 그만의 길을 찾았다. 거실의 살림을 헤아린 기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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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순수하게 소리만을 위해 녹음한 적이 언제였던가. 요즘의 녹음은 대개 두 가지인데, 누군가의 말을 증거로 남기거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소리를 딸려 보내는 것이다. 소리는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도구이거나 영상의 그림자일 뿐이다. 탠드버그 앞에 앉아 나는 문득 청소년 시절, 좋아하는 여자애를 위해 라디오를 녹음하던 그 저녁이 떠올랐다.


릴은 아직 침묵 속에 있다. 그 시절 라디오 앞에 앉아 녹음 버튼을 누르던 손처럼, 나는 다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돌기 시작하는 날, 나는 가족의 노랫소리를 담을 것이다. 음정이 맞지 않아도 좋고, 웃음이 섞여도 좋다. 언젠가 그 테이프를 다시 틀었을 때, 영상 한 컷 없이도 선명하게 펼쳐질 그 겨울 저녁의 소리 풍경. 나는 그것을 보이지 않는 영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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