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알찼습니다. [원래 일기는 안 쓰는데요. 왜인지 그러고 싶네요.]
새로움은 익숙함과 비교했을 때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요?
새로움 속에 살다가 익숙함을 만나면 반갑고,
익숙함 속에 살다가 새로움을 만나면 신이 납니다.
저 둘 사이에 우열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다만, 일상은 대체로 익숙함이 지배적이기에 우리들은 새로움을 조금 더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이번 휴가는 잃어버린 것을 찾는 여정이었어요.
[러닝]
입대를 하면서 새로이 생긴 취미 중 하나가 러닝입니다.
부대 안에서의 러닝은 충분히 재미있고 수려한 풍경을 보여주지만, 매일 똑같은 장면을 보다 보니 지루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 휴가의 목표 중 하나는 한강에서 러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코스 : 잠수교 -> 이촌동 -> 한강대교 -> 흑석동 약 10km]
러너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잠수교에서 시작하는 유명한 10km 코스를 달렸습니다.
초반에 잠수교의 업힐에 당황했지만, 군부대에서의 업힐에 익숙해진 저에게는 쉬웠습니다.
경관은 정말 끝내주더군요. 한강 다리에서 바라보는 한강은 뭐 묘사가 필요한가요.
바람이 적당해서 추위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늘이 적당해서 더위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환희라고 할까요.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웃으면서 완주했습니다.
페이스를 조절한다거나 시간을 확인한다거나
평소에 하던 행동들은 온데간데없고 주변의 배경에 파묻힌 달리는 '나'만 있었습니다.
10km는 도전적인 거리는 아니지만, 3km 정도나 6km 정도에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종종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없더군요. 이렇게 신이 나다니. 역치가 낮아진 것일까요?
너무 신난 나머지 러닝을 두 번을 더 뛰었습니다.
총 3번의 러닝에서 한강대교는 3번을 지나갔는데요.
이러다 시간이 더 지나면 서울에 있는 다리 이름을 다 외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강 근처라면 지도를 보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러너가 될게요.
사실 지금도 한강변 랜드마크는 다 외우고 있는지라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부동산 공부가 이럴 때 도움이 되네요.
[냉면]
'냉면을 좋아합니다.'
저는 평양냉면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진한 맛의 우래옥도 좋지만, 저는 맑은 맛을 내는 '을지면옥' 스타일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었죠.
누구랑 처음 갔을까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다만, 첫인상은 그냥 니 맛저맛도 아닌 '애매'한 맛에
"엥? 이런 맛을 뭐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먹는다고?"
당황스러운 마음뿐이었죠.
ㅋㅋ 그런데 지금은 평냉 없으면 못 살겠습니다.
왜 여름에 사람들이 그렇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빼곡히 들어차는지
이해해 버린 내가 밉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심심한 맛에 빠져버리면 헤어 나오지를 못합니다.
평양냉면을 본받고 싶습니다.
언제 스며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너 없으면 못 살겠다는 마음이 드는 그런 사람이요.
[술]
술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술이 좋은 것인지
술자리의 분위기가 좋은 것인지
함께하는 사람이 좋은 것인지는 구별하지 않을래요.
다만 내가 웃고 있을 때는 술을 먹고 있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많이 먹어보겠다고 객기도 부리고,
술을 빨리 먹는 게 멋있어 보여 이상한 존심도 부리곤 했는데요.
지금은 뭐 그런 거 없습니다.
이 나이 먹고 행동을 그렇게 하면
나이를 뭐 뒷구녕으로 먹었냐는 소리 듣기 딱 좋죠.
예전에는 소주와 맥주를 즐겼는데요.
싸고, 구하기 쉽고 먹기 쉬워서 그냥 먹다 보니 익숙해진 것이죠.
맛이 있어서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스파클링 와인과, 증류주를 즐깁니다.
돈이 많이 들 것 같죠?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
저 녀석들을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먹으려면 꽤 많은 돈이 깨지지만,
그냥 집에서 가볍게 즐기는 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요.
이번 휴가에는
샤도네이로 만든 브뤼(당도가 낮은 스파클링 와인)
피트 위스키(라프로익 10, 아드벡 10)를 먹었습니다.
사실 더 맛있는 녀석들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깜냥이 안 되기에 쳐다도 보지 않습니다.
위스키야 뭐 비싼 녀석을 사도 한두 잔씩 먹으면 1년 넘게 먹어서
분수에 맞지 않는? 녀석을 들일 수도 있지만,
샴페인은... 한번 따면 다 먹어야 하고,
너무 비싸기도 해서 저는 항상 마트에서 할인하는 녀석들로 구매합니다.
병당 2만 원 이하로 '브뤼'를 고르면 대개의 경우 중간 이상은 하더라고요.
물론 아무것도 안 보고 대충 골라도 소주보다는 맛있습니다.
소주는 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위스키는 보통 한 잔씩 마십니다.
한잔을 따르면 거의 30분씩 붙잡고 마셔요.
마신다기보다는 향을 즐긴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소주 한잔 분량을 30분 동안 마시는 게 잘 상상이 안 갈 수 있습니다.
'글랜캐런'이라고 하는 술의 향을 모아주는 잔이 있는데,
천천히 향을 음미하면서 조금씩 홀짝입니다.
안주도 딱히 필요 없어요.
그래서 두 시간 정도 바에 앉아있었지만,
마신 거라고는 고작 위스키 두 잔입니다.
하나도 취하지 않고, 속도 부대끼지 않죠.
음주는 전혀 안 하는 것이 건강에 좋겠지만,
아주 안 할 수가 없다면 이렇게 즐기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