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 맘 때면 '춘천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영주는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곧잘 했다. 특히 장거리 마라톤을 잘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대표로 육상대회에 출전한 영주는 도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반 친구들은 겉으로 축하를 해줬지만, 뒤돌아서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없이 사는 애들이 악착같은 데가 있긴 하지." 영주가 화장실에서 들었던 말이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고 생각했다. 앞뒤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진저리가 났다.
'근성' 어쩌면 가난해서 얻어진 건지도 모른다. 영주는 그래서 더 이상 가난을 원망하지 않는다. 살아감에 있어서 근성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근성이 있어야 글도 쓸 수 있다. 만약 영주에게 근성이 없었다면 진작에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오래 쓰게 하는 힘, 근성은 영주의 큰 재산이다.
2022년 춘천마라톤, 영주는 42.195km 풀코스에 도전하기로 했다. 대회를 앞두고 한동안 달리기 연습을 했다. 오랜만의 달리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그 고통을 참고 목표 지점까지 달리면서 희열을 느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을 지나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
드디어 마라톤대회 날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출발선에 섰다. 10대에서 80대까지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다양했다. 달리고 싶은 욕망과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은 나이를 불문한 우리의 공통점이었다. 뜨거운 열기, 영주는 그곳의 분위기에 가슴이 후끈 달아올랐다. 드디어 수많은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했고, 영주도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10km, 20km... 달릴수록 가슴이 터질 것처럼 힘들었다. 골인지점을 2km 앞두고 체력이 방전되었다. 그냥 주저앉고 싶었다. 한걸음 한걸음 걷거나 기어서라도 완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영주를 스쳐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 대회에 참가한 목적은 오로지 완주였으니까.
'근성' 은 자신의 유일한 장점이자, 재산이었다. 그런 영주는 자신의 근성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이 악물고 달리다가 걷기를 반복했다. 4시간 32분 만에 드디어 완주를 하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난 해낼 줄 알았어. '영주는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유명한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고달프고 외로운 일이다. '근성' 은 그렇게 계속 글을 쓰게 했다. 영주는 오늘 그런 근성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앞으로도 계속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설레었다. 마라톤처럼 자신의 페이스대로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무엇이라도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무엇이 화려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괜찮다. 지금의 자신보다 더 섬세하고 깊게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렇게 세상을 보는 눈은 작가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번져오는 깊은 통증이 참 달게 느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