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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비 Jul 31. 2022

# 6. 사람을 삼키고 소화해요.

'귀하의 옥고 같은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 출판사와는 결이 맞지 않아 출간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정중한 거절 내용의 메일이 영주를 실망시켰다. 오래 공들여 쓴 소설 한 편을 평소 좋아하는 출판사에 투고했었다. 처음 투고한 출판사에서 거절 메일을 받은 영주는 다른 출판사에 몇 차례 더 투고했다. 거절 내용의 문장은 조금씩 달랐지만, 팩트는 거절이었다. 

'차라리 거절의 이유, 그러니까 작품에 대한 비평을 좀 말해주지.'

영주는 자신의 소설을 출판할 수 없는, 읽히지 않을 것 같은 그 소견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출판사에서도 영주처럼 아마추어 작가에게 그런 친절을 베풀 곳은 없었다.

출판사의 에디터들이 그렇게 한가한 직업이 아니니까.


'하' 

영주는 긴 호흡이 필요한 소설이 서랍 속에 처박힐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왔다. 

'하긴, 쓴다고 다 잘되면 프로지. 아니지. 프로도 다 잘되진 않아.'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야 또 쓸 힘이 생기니까. 여기서 포기한다면...... 영주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쓰기'는 영주 자신에 가까웠다. 더 이상 쓰지 않는다면 텅 빈 껍데기처럼 공허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있는 존재. 그것처럼 허한 게 없을 것이다. 

며칠씩 글쓰기를 하지 않는 날은 허기가 졌다. 영주는 끼니를 챙겨 먹듯 글을 썼다. 글쓰기는 허기를 달래기 위한 밥 같은 거였다.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픈 것처럼 글을 쓰지 않으면 뭔가가 고팠다. 그 '뭔가'의 정체를 정확히 모르지만, 확실한 건 쓰지 않으면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영주가 노트북에 저장된 거절 메일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현이가 그만두고 일하게 된 남자가 들어왔다.

"현수 씨, 일찍 나왔네요?"

노트북을 닫으면서 영주가 대답했다. 

현수가 들어오자 갑자기 손님들이 몰려왔다. 현수는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여러 가지 차들을 만들어냈다. 영주는 손님들이 일어난 테이블을 치우고, 책장을 정리했다.

그렇게 한참 피크 타임이 지나고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밀물처럼 거침없이 밀려 들어왔다가 어느새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마치 바다 같았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현수가 영주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물었다.

"네? 티 났어요?"

영주가 살짝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조금요."

현수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영주는 투고 거절 메일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그 원고가 곧 서랍 속에 처박힐 거라는 말도 했다. 

"어차피 서랍 속에 버려질 원고라면 저 한번 읽어봐도 돼요?"

현수가 영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내 원고를?"

영주는 갑작스러운 현수의 말에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출판사에서 퇴짜 맞은 쓸모없는 원고지만,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게 마냥 좋진 않았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니 이대로 묻히는 것보단 한 사람에게라도 읽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후로 이틀이 지났다.

"작품 속 인물하고 '찐친'이 아닌 것 같았어요."

현수가 영주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찐친?"

영주가 현수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네. 진짜 친한 친구요. 작가가 작품 속 인물하고 많이 친해져야 진짜 인물이 탄생하는 것 같아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찐 친이면 더 자세히 깊이 알고. 그냥 그저 그런 친구면 대충 조금만 알고."

현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주는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이 컸다.

자전적 작품을 많이 쓰는 작가들의 작품은 인물의 묘사가 뛰어나다. 그 누구보다 인물을 섬세하게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을 작품 속 인물로 선정한다면 누구보다 잘 소화할 수 있다. 

영주는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쓴 적이 없었다. 

가난하고 누추하고 초라한 인물을 그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사실,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없었다.

가난하고 누추하고 초라한 자신을 삼키지 못하고 항상 목구멍에 걸쳐 놓았다.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그렇게 볼품없는 자신이 걸리적거렸다. 그리고 가끔은 통증에 시달렸다. 


현수의 말처럼 작품 속 '지숙'이와 영주는 거리가 멀었다. 지숙이는 부잣집에서 태어난 외동딸로 유명한 화가다. 그런 지숙이를 영주가 제대로 묘사할 리가 없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삼키고 소화하는 것' 이 아닐까? 영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완전히 흡수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배우들이 작품 속 인물로 살다가 작품이 끝나도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다. 그만큼 작품 속 인물과 일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 완벽하게 잘 소화해서 작품 속 캐릭터를 쉽게 뱉지 못하는 것이다. 

영주는 목구멍에 자꾸 지숙이가 걸렸다. 제대로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않는다. 

'바보같이! 충분히 소화시킬 자신도 없으면서 아무거나 집어 먹고!'

영주는 원고에 쓰인 지숙이라는 글씨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원고 파일을 삭제했다. 

이 원고는 영원히 소생될 리 없는 글씨들의 집합체에 불과했으니까.

바닥에 뱉어놓은 지숙이가 나뒹굴었다.

영주는 생각했다.

쓰고 싶은 급한 마음에 아무거나 먹지 않기로.

삼키고 소화시킬 것을 천천히 탐색하기로.

쓰기로 한 인물과 찐친이 되기로.


영주는 천천히 자신을 꼭꼭 씹어보기로 했다. 잘 삼키고 소화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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