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는 생각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쓰기로. 볼품없이 누추한 자신을 묘사하는 일이 영 자신이 없었지만, 내 이야기도 못쓰면서 남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모순 같았다. 자신을 쓰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를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영주는 깨달았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글쓰기를 하는 25살의 영주. 딱히 뭐라고 자신의 브랜드를 내세울 순 없었다. 하지만, 노브랜드도 있지 않은가? 브랜드가 없어도 괜찮지 아니한가?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날것도 충분히 매력 있지 않은가? 나이, 직업 같은 기본적인 틀 외에도 얼마든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영주는 생각했다.
편의점에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에 처한 도시락을 먹을 때, 커피숍에서 커피 리필을 요구하던 손님과 마주할 때,
책을 읽다가 가슴을 치는 문장을 발견할 때, 영주는 그 모든 순간순간들이 자신 같았다. 자신이 지나온 사소한 일상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면서 글을 썼다. 그렇게 글을 쓰자니,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잊힌 순간들도 있었다. 때론 왜곡된 기억들을 쓰기도 했다.
'아,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거구나.' 영주는 잠시 기록을 중단했던 자신의 오만과 나태함을 깨달았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지나간 순간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곱씹을 수 있다. 기록은 자칫 삭제될뻔한 과거의 이력들을 보관해 준다.
영주는 가난한 자신을 원망했는지, 자신의 가난을 미워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쩌면 자신을 날것으로 살게 해 준 가난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감정은 변덕이 심해서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 영주는 지나간 가난과 가난했던 자신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과거의 가난을 쓰는데 자꾸 지금의 가난이 튀어나왔다. 과거의 가난과 지금의 가난은 결이 다르다.
지나간 과거의 경험들과 순간순간 변해가는 감정들을 세밀하게 기록하기로 했다.
'나'를 쓰는 일은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왜곡 없이 써내려 가는 일이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100%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록'이란 글쓰기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영주는 기록을 통해 지나간 자신을 더듬어가며 상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주한 자신과 이야기하며 조금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