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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비 Oct 27. 2022

# 9. 나눔이란 여유의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잿빛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을 몰고 오더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카페 '사이'에 우산을 하나씩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 "큰일이네. 우산도 안 갖고 왔는데..." 영주가 문밖을 바라보며 상을 지었다.

그때였다. 장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뒤로 허리가 심하게 굽은 할머니가 따라 들어왔다.

"리어카는 제가 비닐로 덮어놓을게요. 잠깐 여기 앉아서 쉬었다 가세요."

사장이 할머니를 자리로 안내하더니, 곧바로 따뜻한 녹차라테 한 잔을 가져왔다.

"아이고, 뭘 이런 것까지... "

할머니의 얼굴에는 미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자, 비가 그다. 할머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비닐을 걷고 다시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다.


"언제 가셨지?"

사장이 할머니가 떠난 빈자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테이블 위에는 알사탕 3개가 놓여 있었다. 마치 할머니의 온기처럼 그렇게 놓여 있었다. 사장이 영주에게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아까 그 할머니가 주신 거야."

사장이 사탕을 입속으로 쏙 넣으며 말했다.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아서 폐지 줍는 일을 시작하게 된 할머니. 언제부터인가 폐지를 주워 모은 수익의 절반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굽은 허리로 하루 종일 상가단지나 시장을 돌며 폐지를 줍는 할머니. 그 고단한 삶 속에서도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이 영주의 가슴을 세게 흔들었다. 사장은 할머니를 알게 된 후 나눔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매달 소년소녀가장들에게 기부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내 가난을 원망했고, 내 일상의 안일함을 위해 동동거렸다. 내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을 위해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의 삶은 내 삶보다 더 고단하고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생각하고 나눔을 실천하다니. 영주는 자신의 삶이 이기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갈 때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닌가? 폐지 실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다니는 할머니. 그 누추한 행색이 위대해 보였다. 언제까지 내 안위만을 위해 동동거릴 것인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던 자신의 삶에 대해 자책했다.


영주는 그날 밤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가진 것을 누군가에게 나눠줄 방법에 대해. 지금 내가 가진 것, 그것은 글쓰기에 대한 작은 소질이었다. 다음날 집 근처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글쓰기 방과 후 수업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 물론 재능기부 같은 무료봉사였다. 학교 측에서는 문학을 전공했거나, 교사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유명한 작가였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뜻은 참 감사하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교감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의도는 좋았지만, 글쓰기 수업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격미달이었다. 꼭 유명한 작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영주였다. 누군가에게 글쓰기 수업을 가르칠 자격이 작가로서의 유명세라면 그 자격에 욕심을 가져보기로 한다. 세상 모든 것에는 규칙이 있고, 나름대로의 틀이 있다. 오늘따라 마음이 갈팡질팡 심란해지는 영주.

우선 한 달에 단돈 만원이라도 좋은 일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글쓰기 수업을 가르치기 위해 꾸준히 글을 쓴다.



선의의 의도가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영주는 다짐했다. 10을 가진 사람도 선의의 의도가 없으면 단 1도 나누지 않는다. 1을 가진 사람도 선의의 의도가 있다면 단 0.5라도 나누며 살아간다. 나눔이란 여유의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움푹 파인 주름살 위로 번지던 잔잔한 미소. 그 선한 얼굴이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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