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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비 Oct 28. 2022

#10. 걷히지 않는 안개는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난 영주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안개로 뒤덮인  산을 본 것이다. 무언가에 가려져서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었던 자신 같았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자욱한 안개 뒤에 산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면 아마 우리는 산의 정체를 몰랐을 것이다. 안개가 서서히 물러가고, 거대한 산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굽이굽이 뻗어있는 산등성이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올랐다.

 영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부시고 찬란했다.


지금 자신 앞에 놓인 모든 고난과 시련이 안개다. 자신도 언젠가는 저 거대한 산처럼 태양을 이고 형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영주는 생각했다. 안개는 순식간에 걷히지 않는다.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물러갈 준비를 한다.


'귀하의 귀한 원고를 검토한 결과 반기획 출판을 하기로 했습니다. ' 영주가 투고 메일을 보낸 소규모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반기획? 영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O월 O일 반기획 출판 권유 메일을 받은 영주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반기획 출판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영주가 천천히 또박또박 질문을 던졌다.

"아~~ 영주 씨! 원고는 잘 읽어봤어요. 독자층도 좋고, 꽤 신선한데 영주 씨는 베셀 작가도 아니고, 처음이잖아요? 이름 없는 작가한테 100% 기획출판은 우리 입장에서 리스크라서요. "

전화를 받은 편집장은 람 좋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영주는 기분이 상했다.

" 네. 잘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영주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출판사의 거절 메일을 수없이 받아봤던 영주지만, 편집장의 말에 살짝 멘털이 흔들렸다. '네 원고에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내 돈을 투자하기엔 네 능력을 완전히 믿을 수 없어!'라는 속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쓴  책이  잘 팔릴 것  같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출판사의 기획출판 제의를 받을 수 있다.  그 증명이란 지나온 작가의 이력이라는 것이 씁쓸할 뿐이다. 영주는 갑자기 눈앞에 안개가 자욱한 것처럼 답답했다. 안개, 의도치 않은 그것이 영주를 괴롭혔다. 우리 삶에는 꽤 여러 번 안개가 드리워지고 걷힌다. 걷히지 않은 안개는 없다. 우리 앞에 드리워진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자. 곧 안갯속 나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번 한번 안개가 드리워졌다 사라질 때마다 더 단단하고 섬세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영주는 그런 사람이 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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